프랑스를 둘로 쪼갠 리옹시의 ‘채식 급식’ 논란
  • 김중회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17 14:00
  • 호수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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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야권 리옹 시장 “학교 급식에 고기 빼”
마크롱 대통령까지 반대 측에 가세하며 정쟁으로 비화

지난해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대이변이 발생했다. 2017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줄곧 고배를 마셔왔던 전통 진보 야당 사회당과 유럽의회 선거에서의 약진을 통해 성장을 계속해 온 녹색당의 ‘진보 야권’이 압승을 거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경제위기’라는 범세계적 충격 앞에서, 1980년대 복지국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 사회당은 수도 파리에서 시장 당선자를 배출했다. 또한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 현상과 가뭄 등으로 타격을 입은 프랑스 남부에서도 환경 이슈에 집중한 녹색당이 제2·제3의 도시 마르세유와 리옹 시장을 석권했다. 이들 진보 야권은 ‘정권 심판론’을 내세우며 마크롱 정부에 큰 타격을 안겼다.

그런데 최근 녹색당 소속인 그레고리 두세 리옹 시장의 ‘초등학교 채식 급식 정책’이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앙리 4세에 의해 16세기부터 ‘일요일은 닭고기 먹는 날’로 정할 만큼, ‘고기를 먹는 것’이 유구한 전통인 프랑스에서 ‘초등학생 식탁에서 고기를 뺀다’는 리옹시의 정책이 지역 내 갈등을 넘어 정치권의 정쟁, 프랑스 사회 전체의 갈등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낙농업자들이 2월22일 프랑스 리옹시에서 ‘채식 급식’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

거리로 나선 축산업자, 옹호 나선 환경론자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신예 정치인이었던 두세 후보는 진보 야권 단일화를 통해 63%라는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됐다. 당시 두세 후보는 ‘리옹 시내의 모든 학교에 지역에서 자란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급식으로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두세 시장은 2월22일부터 해당 공약을 2주의 시범기간 동안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공공 급식에 지역 유기농 농산물을 제공하는 것에 더해 육류를 모두 제외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반발이 일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학교 통학에 차질이 생긴 틈을 타 꼼수를 부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두세 시장은 “청소년들의 건강과 코로나19 감염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조리 과정과 유통 과정에서 안전한 채식만 급식하기로 결정했다”고 해명했으나, 축산업자들과 시민들의 반감은 컸다. 지역의 축산업자들은 직접 리옹시청 앞에 트랙터와 소를 끌고 나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밭으로부터의 고기는 건강한 아이를 뜻한다’ ‘고기를 막는 것은 미래의 바이러스로부터의 약점을 만드는 것’ 등이 적힌 현수막을 내세우며 “고기를 먹어야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란다”고 구호를 외쳤다.

반발이 더 큰 것은 지역적 특성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리옹은 프랑스 농축산업의 중심지다. 아울러 ‘유럽의 식량창고’로 불리는 프랑스엔 세계 30대 유제품 가공업체 중 6개가 위치해 있다. 더욱이 유로존 통합 이후 농산물 가격 하락 및 유럽연합의 여러 농축산업 규제 정책 이후 줄어든 수입에 불만이 많았던 프랑스 농축산인들의 불만에 ‘기름을 끼얹은 결정’이었다는 산업계의 평가도 나온다.

반면 리옹시 결정을 옹호하는 견해들도 나오며 양측의 입장은 첨예하게 갈렸다. 다수 환경 전문가들이 주요 언론을 통해 “낙농업이 온실가스 배출에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며, 프랑스는 온실가스 15%를 감축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들은 “축산업 생산이 환경 파괴에 미치는 영향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라며 채식 급식을 옹호했다. 동시에 영양학자들 또한 “98%의 프랑스 청소년들이 ‘섬유질이 부족한 식사’를 하고 있다”는 소견을 내며 논쟁에 가세했다. 현재 온라인 등에선 이 문제를 놓고 찬반 토론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레고리 두세 시장·제라르 다마낭 내무부 장관 등이 트위터를 통해 ‘채식 급식’ 논란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다.ⓒ트위터 캡쳐

내년 대선 앞두고 좌우 진영의 새 충돌점 돼 

지역 내 정치인들은 물론, 중앙의 유력 정치인들까지 직접 리옹시의 정책에 대해 비판 및 옹호에 나서며 프랑전 전체의 정쟁으로 번지는 조짐도 보였다. 보수 성향의 제라르 다마낭 내무부 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녹색 엘리트주의자들이 정치적 결정으로 서민 계층을 소외시키고, 프랑스의 축산업자들을 매도했다”고 두세 시장을 비판하고 나섰다. 아울러 다마낭 내무부 장관은 시위 현장을 방문해 참석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줄리앙 드노르망디 농림부 장관도 “우리 아이들 식사에 사상교육을 하려는 짓은 그만둬야 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 바바라 퐁플리 환경부 장관은 공개적으로 리옹시 결정을 옹호하고 나섰다. 퐁플리 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지금 프랑스를 둘러싼 채식 논쟁은 구시대적 논쟁”이라며 다른 장관들의 비판에 문제를 제기했다. 퐁플리 장관은 “육식을 해야 건강하다는 것은 선입견에 불과하며, 생선 섭취 등을 통해 충분히 단백질 보충을 할 수 있다”고 채식 급식에 적극 찬성했다. 

그러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입장을 표명하며 가세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학교는 영양소가 균형 잡힌 급식을 학생들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다”며 반대 입장에 손을 들었다. 이후 퐁플리 장관은 자신의 입장을 담은 트위터 글을 삭제하기도 했다.

다만 여전히 정치권에선 이 문제가 더 큰 논쟁으로 번질 수 있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최근엔 마크롱 정부의 초대 내무부 장관이자 전임 리옹 시장인 제라르 콜롱브도 락다운(봉쇄령) 기간에 비슷한 정책을 시행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아울러 렌 등 몇몇 다른 도시에서도 추후 같은 정책이 펼쳐질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옹시에서 시작된 채식 급식 논란은 최근 프랑스의 유명 프로그램인 《투슈 파 아 몽 포스트(Touche pas à mon poste)》의 토론 주제로 오를 정도로 사회의 주요 갈등 요소로 떠오른 모습이다. 단순한 ‘육류 제외 급식’ 문제에서, 축산업자들에 대한 생존 문제와 환경 문제, 환경 정책과 규제의 중추인 유럽연합과 관련된 문제로까지 번지면서 논쟁의 범위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아울러 내년 대선을 앞둔 프랑스에서 좌우 진영이 건건이 충돌하는 가운데 이 문제는 또 하나의 정치적 뇌관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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