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비리’ 때도 전수조사 꺼냈던 정치권…‘투기 검증’은 다를까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3.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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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전수조사 제안했지만 野 “민주당 먼저 하라”
2019년 ‘자녀 입시비리’ 조사 무산 재현 우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오른쪽)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3월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원내대표 회동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오른쪽)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3월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원내대표 회동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회의원 부동산 전수조사를 둘러싼 여야의 대립이 본격화하고 있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불거진 대형 이슈에 여야 모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전략적 태세에 돌입한 양상이다. 예상대로 전수조사 진행을 위한 여야의 1차 협상은 불발됐다. 여당은 현 정권 차원에서의 비리가 아닌 '뿌리깊은 부패'라는 점을 강조하며 국회의원 300명에 대한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부동산 투기 행위가 근절돼야 한다면서도, 더불어민주당의 '솔선수범'이 우선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여론이 민감하게 움직이는 이슈를 앞에 두고 국회의원 전수조사가 떠들썩하게 진행되다 불발된 것은 정치권의 '고질적 관행'이다. 불과 2년 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비리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여야는 전수조사 필요성을 외치며 '비리 척결'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을 불러왔다. 그러나 조사는 진행되지 못했다. 당시 민주당은 즉각 조사를 주장했지만, 야당은 시기와 절차 등에 이견을 보였고 변죽만 울린 채 빈 손으로 끝났다. 이 때문에 이번 부동산 투기 검증도 여야의 복잡한 셈법 속에 보궐선거를 전후로 유야무야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녀 입시비리' 줄다리기만 하다 빈손 

2019년 9월 국회에서는 의원 자녀입시 관련 전수조사가 급물살을 탔다. 당시 조국 전 장관 자녀의 입시비리 의혹이 불거졌고,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자녀 문제까지 거론되면서 여야가 동시다발로 전수조사 카드를 들고 나왔다.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 자녀들에 대한 입시비리나 특혜 제공 의혹이 커지며 여론이 악화하자 전수조사를 통해 공격적인 돌파구를 찾겠다는 것이 여야의 공통된 계산이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자녀입시 비리 전수조사 움직임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당시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가 모여 전수조사 시기와 방안, 절차를 논의했지만 입장차만 드러낸 채 끝내 무산됐다.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등 당시 민주당 지도부는 즉각 조사에 돌입하자고 했지만,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과 바른미래당은 반발했다. 조 전 장관에 대한 국정조사를 먼저한 후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 자녀 입시 비리 조사에 들어가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야권에서는 여당이 전수조사를 빌미로 조 전 장관과 가족에 대한 의혹을 덮고 가려한다며 '정치적 꼼수'라는 비판도 나왔다. 

당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시기적으로 조국 사태가 정리된 이후에 (전수조사를)하는 게 맞다. 조국 사태에 관한 국정조사를 하루빨리 해야한다"는 입장을 반복하며 여당에 퇴짜를 놨다. 

여당은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민간 위원을 참여시키는 방안 등을 제시하며 조사 속도를 높이고 객관성을 담보하겠다고 했지만 야당은 '정국 블랙홀'이었던 조 전 장관 가족 관련 각종 의혹을 집중 공략하며 끝까지 반대했다. 국조를 조건으로 내건 야당의 거센 반발에 여당도 더 이상 전수조사에 힘을 싣지 못하고 맥없이 물러났다. 

당시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 자녀 입시비리 전수조사에 대한 찬성 여론은 압도적이었다. 관련 여론조사에서 국민 4명 중 3명에 해당하는 75%가 넘는 찬성한다고 했지만 국회는 결국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데 실패했다. 

3월3일 오후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앞에 빨간 신호등이 켜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LH 직원들의 100억원대 광명·시흥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 ⓒ 연합뉴스
3월3일 오후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앞에 빨간 신호등이 켜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LH 직원들의 100억원대 광명·시흥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 ⓒ 연합뉴스

국민적 공분샀는데…이번에도 변죽만 울리다 끝날까

의원들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번에는 진행될 수 있을지 촉각이 모이지만, 현재까지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여야는 12일 LH 신도시 투기 의혹 사태와 관련한 특별검사 도입과 함께 전수조사 실시 방안을 논의했지만 '예상대로' 합의에 실패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회동을 갖고 LH사태와 관련한 국회의 추가 대응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

홍정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특검에 대해 "합의되지 않았다"며 "전수조사는 주 원내대표가 '여당이 먼저 하면 알아서 하겠다'고 발언했다"고 전했다. 배현진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특검과 전수조사를 수용하자는 입장"이라면서도 "민주당부터 하자는 의견을 민주당이 용기 있게 받아줬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국회는 평행선을 달리며 또 한번 과거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 대형 이슈가 터지면 약속한 듯 여야가 부패와 비리를 척결한다며 움직이지만, 전수조사 시기나 방법 등 부차적인 문제를 두고 줄다리기를 벌이다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에도 여야의 엇갈린 분위기 속 '불발'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김 대표 대행과 만나기에 앞서 열린 회의에서 '국회의원 전수조사' 방안에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이라며 "민주당 안에서 투기 의혹이 불거져 나오는 마당인데, 민주당은 자기 당 소속부터 솔선수범해서 전수조사한다고 하면 될 일"이라며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후보는 전수조사 실시에 대해선 찬성한다면서도 "신도시 투기와 관련해 여당 의원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자 전수조사를 들고나와 물타기에 나섰다"고 의구심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청와대 대변인직에서 물러났던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최근 비례대표 의원직을 승계받은 것을 지적하며 "대통령이 설득해 돌아가게 해야 한다. 국회에서 사기꾼, 투기꾼의 악취가 나는 것을 국민은 더 참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김 대표 대행은 "민주당은 (전수조사가) 준비돼 있다. 국민의힘도 참여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그러면서 전날 발표된 정부의 LH 투기 의혹 1차 전수조사와 관련해 "이제 첫걸음을 뗐을 뿐이고, 특수본 수사를 통해 가족 포함 차명까지 다 밝혀낼 것"이라며 "부동산 투기 세력을 부동산 적폐로 규정하고 발본색원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 대행은 야당을 향해 "한 가지 유감스러운 점은 국민의힘이 LH 투기 의혹을 권력형 게이트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며 "야당은 사건만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권력형 게이트를 갖다 붙이는데 정말 고질적이다. 선거 전략이긴 하겠으나 국민 분노, 허탈감을 정쟁 수단으로 삼아선 안 된다"고 날을 세웠다.

시민단체들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국회의원 전수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인 하승수 변호사는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늦었지만 이번 (국회의원 및 고위공직자 전수조사) 기회를 놓쳐선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 변호사는 현직 의원 300명 가운데 76명이 농지를 보유하고 있는 점을 언급하며, 전수조사를 통해 투기 용도의 토지나 부동산을 보유 현황을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변호사는 "농지라는 것은 농민이 아니면 원칙적으로 소유할 수 없게 돼 있다. 국회의원이 농지를 많이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불법의 소지가 굉장히 많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국회의원 재산 신고 범위를 배우자만 의무로 해놓은 것을 다른 가족으로 확대하는 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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