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부의 ‘뒷배’가 된 중국의 탐욕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20 07:30
  • 호수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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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도시 루이리를 교두보 삼아 미얀마 자원 광물 대거 사들여
미얀마 군부, 정권 안정 위해 중국에 손 내밀어

“여기 사는 미얀마인들은 미얀마 군경이 저지르는 만행에 분노하고 있다.” 3월16일 중국 윈난(雲南)성 루이리(瑞麗)시에 사는 펑조는 필자와의 통화에서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펑조는 루이리의 미얀마인 상인회장이다. 1990년대 초 중국으로 넘어와 비취 거래로 성공했다. 비록 미얀마로부터 탄압받는 로힝야족이고 무슬림이지만, 누구보다 미얀마를 사랑한다. 펑조는 “중국 언론은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자세히 보도하지 않는다. 미얀마인들이 즐겨 쓰는 페이스북·트위터 등 SNS도 중국에서는 접속이 차단되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해외에 거주하는 미얀마인들이 운영하는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미얀마 각지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루이리는 미얀마의 무세와 맞닿은 국경도시다. 또한 중국이 미얀마에서 소비되는 원자재와 생활용품을 공급하는 전진기지다. 실제로 지난해 루이리의 대(對)미얀마 무역액은 764억8000만 위안(약 13조3000억원)이었다. 이는 2015년 295억 위안보다 무려 2.7배나 급증한 수치다. 3월12일 중국 상무부가 발표한 ‘대미얀마 경제무역합작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과 미얀마의 전체 무역액은 전년보다 1% 늘어난 188억9000만 달러(약 21조3457억원)였다. 이 중 62.5%가 루이리를 통해 거래된 것이다. 

❶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의 중국인 소유 공장들에서 3월14일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있다. 이날 중국인 소유 공장들이 방화 및 약탈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❷ 중국의 루이리에서 자유롭게 국경을 오가는 중국과 미얀마 국민들ⓒepa 연합·모종혁 제공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의 중국인 소유 공장들에서 3월14일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있다. 이날 중국인 소유 공장들이 방화 및 약탈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EPA 연합

중국과 미얀마의 밀착 현장 ‘루이리’

과거 루이리는 중국이 미얀마와 극도로 밀착된 상황을 여러 면에서 보여준 곳이었다. 수만 명의 미얀마인이 거주한다. 미얀마인들은 1980년대부터 국경을 넘어 루이리로 왔다. 첫 번째 부류는 미얀마 군사정권에 반대했던 버마족이었다. 1962년 쿠데타로 집권한 미얀마 군부는 오랫동안 중국에 적대적이었다. 특히 군부 최고지도자였던 네윈은 반중(反中) 소문을 퍼뜨려서, 당시 미얀마의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던 화교에게 국민들의 불만이 쏠리도록 했다. 그 결과가 1967년 반중 폭동이었다. 폭동으로 화교 수백 명이 살해당했고, 10만 명이 추방됐다.

이에 분노한 중국은 미얀마 내 반군 세력인 버마공산당에 인력과 무기를 지원했다. 필자가 2009년 루이리에서 만났던 미안 마오는 버마공산당원이었다. 미안은 양곤대학을 졸업한 버마족 엘리트였다. 그는 “중국과 인접한 밀림지대에서 활동하면서 중국산 무기로 미얀마 정부군과 대등하게 교전했다”고 말했다. 버마공산당이 소수민족 반군과 손잡고 세력을 넓히자, 군부는 위기감을 느꼈다. 결국 네윈은 중국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고 덩샤오핑은 이를 받아들였다. 1978년 중국은 버마공산당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결국 버마공산당은 1988년 미얀마군에 항복했다. 이런 과정에서 버마족이 대다수였던 버마공산당원은 중국 루이리로 넘어와 정착했다. 미안 마오는 그들의 리더로 활동하며 미얀마의 반군부 세력을 지원했다.

두 번째 부류는 미얀마에서 박해받던 소수민족 이슬람교도들이었다. 네윈은 집권 후 철저하게 버마족과 불교도 위주의 정책을 펼쳤다. 이에 무슬림들이 반군을 조직해 저항하자, 1978년과 1991년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토벌작전을 벌였다. 그로 인해 적지 않은 이슬람교도들이 방글라데시와 중국으로 탈출했다. 그들이 바로 지금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로힝야족이다. 펑조도 2차 토벌작전이 벌어지던 와중에 루이리로 넘어왔다.

중국이 자국 내 위구르족 이슬람교도는 탄압하면서, 로힝야족 무슬림을 환영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보석인 비취의 원석을 그들이 가져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루이리의 상업거리인 볜마오제(邊貿街)는 로힝야족의 천국이 됐다. 펑조는 “볜마오제 보석상점의 3분의 1은 미얀마인이 주인이거나 미얀마인이 중국 사람 명의만 빌려 운영하고 있다”면서 “이 중 열에 아홉은 무슬림”이라고 밝혔다. 볜마오제에 이슬람사원이 두 곳이나 있을 정도다. 펑조는 맨손으로 중국에 와서 집·가게·자동차 등을 장만했고, 아들을 양곤에 있는 대학에 보냈다.

이렇듯 중국은 과거부터 자국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미얀마 군부든, 반군부 무슬림이든 가리지 않고 손잡았다. 정치적 동지도 한순간에 저버렸다. 그렇기에 루이리를 통해서만 2019년 1700만 명이 넘는 중국인과 미얀마인이 오갔다. 중국은 미얀마를 더욱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2015년 쿤밍(昆明)에서 루이리에 이르는 752km의 고속도로를 완공했다. 또한 내년 12월 개통을 목표로 철도를 부설 중이다. 지난해 1월에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 최고지도자로는 19년 만에 미얀마를 방문했다. 시 주석은 방문 중 ‘중국-미얀마 경제회랑’ 프로젝트와 관련해 33건의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이 미얀마에 심혈을 들이는 이유는 자원 개발과 확보에 있다. 2019년 말 미얀마의 천연가스 매장량은 2832억㎥이고, 원유 매장량은 5000만 배럴이다. 천연가스와 원유는 2014년 미얀마의 짜욱퓨항에서 루이리를 거쳐 쿤밍까지 건설된 송유관을 통해 중국으로 옮겨진다. 또한 미얀마에는 우라늄 등 광물이 많고 비취 원석은 전 세계 매장량의 94%나 된다. 그동안 중국이 미얀마에 쏟아부은 돈은 수백억 달러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54억1000만 달러의 엔지니어링 협력계약을 맺었다. 투자를 통해 거둔 이익은 지난해 18억6000만 달러였다.

❶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의 중국인 소유 공장들에서 3월14일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있다. 이날 중국인 소유 공장들이 방화 및 약탈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❷ 중국의 루이리에서 자유롭게 국경을 오가는 중국과 미얀마 국민들ⓒepa 연합·모종혁 제공
중국의 루이리에서 자유롭게 국경을 오가는 중국과 미얀마 국민들ⓒ모종혁 제공

중국, 미얀마 군부에 자신감의 원천 제공

따라서 3월14일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벌어진 중국계 공장에 대한 대규모 방화 사건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국이 목적과 이익을 위해 미얀마 군부를 지원하고, 로힝야족 무슬림을 받아들이는 행태를 미얀마 국민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 직후 국수주의 성향이 강한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서구의 반중 세력과 홍콩 분리주의자의 영향을 받은 현지 주민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는 미얀마인의 뿌리 깊은 반중 감정에 주목했다. 쉬리핑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한 매체 기고를 통해 “일부 미얀마인들은 중국의 적극적인 투자가 자원 약탈의 성격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미얀마에서 자국 공장이 습격당하고 날마다 군부가 시민들을 학살하자, 중국인들조차 미얀마 사태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포털사이트의 뉴스에는 “왜 미얀마 같은 쓰레기 나라에 돈을 쏟아붓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댓글마저 달렸다. 하지만 3월15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얀마와의 경제무역 협력은 상호번영 원칙에 기반하고 미얀마 경제사회 발전에 도움이 된다”며 협력관계를 강화할 뜻을 내비쳤다. 결국 이런 중국의 입장이 미얀마 군부 지도자들에게 “우리는 제재에 익숙하다. 소수의 친구와 함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자신감의 원천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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