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사건’ 칼 빼든 박범계…“불공정·비합리” 검찰 직격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3.1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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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효 만료 앞두고 역대 4번째 수사지휘권 발동
朴 “한동수·임은정 의견 듣고 입건·기소 여부 결정”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월18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 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 ⓒ 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검찰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 박 장관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의혹에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며 '법원-검찰 갈등' 재현에 불씨를 당겼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주요 판단과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행태를 지적한 박 장관의 이번 결정은 보궐선거를 앞둔 정치권으로까지 파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7일 박 장관은 한 전 총리 사건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의혹과 관련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은 이번이 역대 네 번째다. 

박 장관은 대검찰청의 모든 부장이 참여하는 '대검 부장회의'를 열어 한 전 총리 재판에서 허위증언을 했다고 지목된 재소자 김아무개씨의 혐의 여부와 기소 가능성을 심의하라고 조남관 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했다. 또 대검 부장회의에서 한동수 감찰부장과 허정수 감찰3과장, 임은정 감찰정책연구관에게 사안 설명을 듣고 의견을 청취하며 충분히 토론하라고 지시했다. 

박 장관은 이 같은 회의 결과를 토대로 오는 22일 공소시효 만료일까지 김씨에 대한 입건과 기소 여부를 결정하라고 했다. 검찰이 최종 기소 여부를 재판단 해보라는 것이지만, 박 장관은 수사지휘 공문에 "처리과정의 공정성에 의문이 든다"고 적시하며 앞선 검찰 결정에 불신을 드러냈다.

박 장관은 수사지휘 근거로 대검이 해당 사건을 감찰부가 아닌 인권부로 재배당 한 점, 대검이 사건 조사를 맡은 임은정 대검 연구관에게 검사 직무대리 근무명령을 내지 않은 점, 법무부가 임 연구관에게 수사권한을 부여했음에도 대검이 반대 의견을 낸 점, 임 연구관이 기소 계획을 밝힌 뒤 대검이 주책임자를 변경한 점 등을 지목했다.

박 장관은 "위 일련의 조치들을 볼 때 대검찰청이 실체 진실 발견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임에도 그동안 사건 조사를 담당해온 감찰부장과 임 연구관이 최종 판단에 참여하지 않은 채 결론을 내렸다는 점에서 처리 과정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결론의 적정성마저 의심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구체적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는 검찰 수사의 자율성과 중립성을 고려할 때 가급적 자제돼야 한다"면서도 "이 사건은 검찰 직접수사와 관련해 그간의 잘못된 수사 관행과 사건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자의적 사건배당, 비합리적 의사결정 등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장관은 이와 별개로 법무부 감찰관실과 대검 감찰부에 한 전 총리 사건 수사 당시 벌어진 위법·부당한 검찰의 행태에 대해서도 합동 감찰을 지시했다. 법무부는 한 전 총리 사건에 대한 기록을 검토한 결과 인권 침해 등 검찰 수사 관행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며 이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3월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이정수 법무부 검찰국장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과 관련한 박범계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3월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이정수 법무부 검찰국장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과 관련한 박범계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법·검 갈등' 재현 불씨…수사팀 감찰도 동시 진행

박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법무부와 검찰은 또 한번 갈등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한 전 총리 수사팀에 이른바 '윤석열 패밀리'로 분류된 인물들이 포함돼 있는 등 파장은 검찰을 넘어 정치권으로까지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모해위증교사 의혹은 지난해 4월 한 재소자의 폭로를 통해 불거졌다. 그는 당시 한 전 총리 사건 수사팀이 금품 공여 혐의를 받는 고(故)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구치소 동료 재소자들을 사주해 한 전 총리에 불리한 증언을 하도록 압박했다는 진정을 법무부에 냈다.

진정 사건을 넘겨받은 대검은 "한 전 총리의 재판과 관련해 증인 2명과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사건은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며 사실상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검 감찰부에서 한 전 총리 사건을 검토해 온 임은정 감찰정책연구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자신을 이 사건에서 배제한 뒤 미리 정해진 결론을 내린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후 대검은 임 연구관의 주장을 재반박하며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검찰 내부에서는 박 장관이 논의 주체로 언급한 대검 부장회의에서 과연 객관적인 결론을 낼 수 있겠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신성식 반부패강력부장이나 이정현 공공수사부장, 이종근 형사부장, 한동수 감찰부장 등이 대표적인 친정부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정수 법무부 검찰국장은 브리핑에서 "장관의 입장은 '기소하라 말라'가 아니라 다시 한 번 판단해 달라는 취지"라며 대검 부장회의에서 무혐의 판단이 나오면 박 장관도 이를 수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역대 네 번째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7월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사건 당시 윤 전 총장에게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중단하고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하라며 임기 중 첫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이후 지난해 10월 라임자산운용의 로비 의혹과 윤 전 총장 가족 의혹 사건의 수사 지휘에서 빠지라는 수사지휘권을 추가로 발동했다.

추 전 장관 이전엔 2005년 당시 천정배 장관이 '6·25는 통일전쟁' 발언으로 고발된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며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은 천 장관의 지휘를 수용하고 사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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