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화장실도 못 가게 해…참을 만큼 참았다”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1.03.1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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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광주 기아차협력사 ‘호원’ 노조 사흘째 공장점거…현장 가보니
노사 협상 교착…“손배소 가압류 집행여부 정리 안 돼” vs “대화로 풀자”

“노-노 갈등 조장하는 악랄한 노무관리 ㈜호원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나?”

“화장실도 못 가게 하는 현장 내 감시 통제…노조탄압 중단하라!”

광주 광산구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주)호원 하남공장 노조원들이 공장 점거농성 투쟁에 나서면서 정문 등 공장 주변에 내건 현수막에 담긴 사측의 노동탄압과 인권유린을 비판하는 문구다. 3월 17일 오전 광주 하남산단 내 호원 하남공장 정문 앞. 이곳에서 열린 집회에서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와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진보당 등 참가자들은 날선 규탄 목소리를 쏟아냈다. 경찰들은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었다.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찰은 경력 180여 명을 농성 현장 주변에 배치해 만일의 충돌에 대비하고 있다.

공장 정문 앞에 세워진 민주노총 버스 벽에는 ‘화장실 좀 가자’라는 펼침막이 눈길을 끌었다. 주·야간 교대로 200명씩이 일하는 하남공장 3개 동엔 화장실 4개 정도 밖에 없다. 한 조합원은 “2시간 일하고 10분씩 쉬는데 화장실에 한꺼번에 갈 수 없었다. 작업 중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눈치가 보이고 화장실에 가면 기계가 멈추니까 납품을 맞추지 못한다. 사람을 위주로 하는 게 아니라 로봇(기계)에 사람을 끼워 맞추는 셈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호원 측은 오해에서 빚어진 일이라는 입장이다. 호원 관계자는 “더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작업환경은 점차 개선하고 있다”며 “굳이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데 공장점거 등 ‘실력행사’를 하면 되느냐”고 했다. 호원은 “작업 중에 화장실에 가면 보통 20~30분씩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대체 작업자’를 세울 수 있도록 조·반장에게 말하고 가라는 것이었지 못 가게 한 게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광주시 광산구 하남산단 내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주)호원 하남공장 후문에 걸린 사측의 노동탄압과 노동자 인권 유린을 규탄하는 현수막 ⓒ시사저널 정성환
광주시 광산구 하남산단 내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주)호원 하남공장 후문에 걸린 사측의 노동탄압과 노동자 인권 유린을 규탄하는 현수막 ⓒ시사저널 정성환

호원 노동자 50명, 16일 새벽 현장서 농성투쟁 돌입

민주노총 금속노조 호원지회 조합원 50여 명은 16일 오전 6시께부터 공장 1개 동 생산라인 1개를 점거하고 농성투쟁에 돌입했다. 18일 현재 공장 점거가 사흘째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나머지 150여 명의 조합원들은 연대 노조단체와 함께 공장 정문 앞에서 밤샘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노·사 간 협상은 원청인 기아차의 생산라인 가동 중단 패널티에 따른 노동자에 대한 손배소송 가압류 부분에 막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 호원지회 조합원들은 노조 탄압 중단과 작업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사측이 지난해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설립되자 어용 노조인 호원노조를 만들고 노조원들에게 가입하라고 회유, 협박했다”며 “지회장은 노동조합을 설립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집진시설이나 환풍기 시설이 안 된 공간에서 작업하고 있다”며 작업환경 개선도 촉구했다. 이들은 이어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선 양진석 회장이 직접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3월 17일 오전 광주 하남산단 내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호원 하남공장 정문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 등 규탄 집회 ⓒ시사저널 정성환
3월 17일 오전 광주 광산구 하남산단 내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호원 하남공장 정문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 등의 노동탄압 규탄 집회 ⓒ시사저널 정성환

“법·행정기관 노동자의 편이 아니었다”

이날 호원지회 노동자들과 집회 참가자들은 “노동조합 활동을 한다는 이유 하나로 그동안 호원지회 조합원에게 가해진 차별과 탄압은 노동조합을 용납할 수 없다”며 “지금 당장 (주)호원 양진석 회장이 책임지고 노동자의 요구를 수용하고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법과 공공기관에도 화살을 돌렸다. 행정과 노동, 사법기관이 사측이 모진 탄압을 자행함에도 노동자의 편에 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광산구청은 150명의 조합원이 버젓이 있는데 겨우 9명이 총회를 한 것을 노조라고, 조합원이 아닌 자가 부위원장 직으로 선출되었는데도 사측이 만든 임의 단체를 노조라고 인정해주었고, 법원은 압수수색을 3번이나 기각해가며 회사와 양진석 회장에게 시간을 벌어주었다”고 규탄했다.

수사를 1년 넘게 이어오다 최근에서야 호원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광주지방노동청과 불법 행위가 밝혀졌음에도 광주형일자리 선도기업을 취소하지 않고 각종 지원을 철회하지 않는 광주시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명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따르면, 호원은 지난해 1월 5일 민주노총 소속 호원지회가 결성된 지 하루 만에 한국노총 산하 호원노조가 설립되면서 노조 무력화 논란과 사측 개입 의혹이 불거지는 등 극심한 노사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영옥 호원지회장은 지난해 9월 사규를 위반한 노조 활동으로 회사에 피해를 줬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이에 호원지회는 지난해 2월 사측 경영진을 부당노동행위로 광주고용노동청에 고소했고, 1년 만인 지난달 23일 광주고용노동청은 호원의 신모 대표이사 등 임직원 9명을 노동조합법의 지배개입 금지 조항을 어긴 혐의로 기소 의견을 달아 광주지검으로 송치했다.

광주 하남산단 내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호원 하남공장 정문 앞에 세워진 버스차벽에 걸린 사측의 인권유린을 규탄하는 현수막. ⓒ시사저널 정성환
광주 하남산단 내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호원 하남공장 정문 앞에 세워진 버스차벽에 걸린 사측의 인권유린을 규탄하는 현수막. ⓒ시사저널 정성환

“결자해지양진석 회장이 직접 해결하라”

노사 협상은 현재까지 별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양 측간 협상의 최대 난제는 기아차 생산라인 가동 중단에 따른 농성 노동자에 대한 손배소 가압류 집행여부다. 원청인 기아차는 협약에 따라 1차 협력업체인 호원의 생산라인이 정지될 때마다 페널티를 물리게 된다. 호원 산하 3개 공장이 멈췄으니 1분당 120만원씩, 360만원의 페널티 부과가 예상된다.

이와 관련, 정준현 민주노총 금속노조 광주전남 지부장은 “회사 측이 노조에 수십억원의 손배소송 가압류를 집행하다면 1인당 1억 수천만원씩을 짊어져야 하는 노조원들에게 죽으라고 하는 것에 다름없다”며 “쌍용차 사태 때도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은 묻지 않았다. 그때처럼 사측이 다 털고 가야 하는 데 아직 그 부분이 정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노조는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무기한 점거 농성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등도 지역 노동자들과 함께 호원지회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연대해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호원 공장 후문에서 만난 연대노조 한 조합원은 “구시대적 노무관리, 악랄한 노조탄압에 분노해 호원 공장 앞에 모인 노동자의 연대를 끊을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 지부장은 “민주화의 도시, 인권의 도시라는 광주에서 노조탄압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시민사회 진영의 발길을 멈춰 세울 수 없으며 갈수록 늘어나는 연대의 행렬을 막을 수 없다”면서 “이제 호원의 결단만 남았다”고 밝혔다.

정준현 민주노총 금속노조 광주전남 지부장이 "양진석 호원 회장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정준현 민주노총 금속노조 광주전남 지부장이 "양진석 호원 회장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기아 광주공장도 사흘째 멈춰…250여개 협력업체에 영향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1차 벤더(협력업체)로 차체를 생산해 납품하는 호원은 광주형 일자리 자동차공장 광주글로벌모터스에 주주로 참여하고, 광주형일자리 선도기업으로 지정된 중견기업이다. 호원 사태로 기아차 생산라인 가동 중단은 사흘째 계속되고 있다.

기아 광주공장은 공급선이 다른 대형버스와 군용트럭을 제외한 셀토스, 스포티지, 쏘올, 봉고트럭 등의 생산이 중단된 상태다. 광주공장의 하루 차량 생산량은 2000대 가량이다. 기아 광주공장 가동이 멈춰서면서 50여개 1차 협력업체를 비롯해 2, 3차 협력업체 등 250여 개 업체가 조업 차질 등 직간접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17일 “광주 지역 중견기업인 ㈜호원의 노사 갈등으로 기아차와 자동차부품 협력사 수십 개의 생산라인이 멈춰서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며 “호원 노사는 상생의 광주정신으로 일자리와 지역경제를 지켜줄 것”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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