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와 공생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따듯한 동물사전]
  • 이환희 수의사·포인핸드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31 11:00
  • 호수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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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R 사업 통해 무분별한 증가 막아야

반려동물만큼이나 우리 동네 길거리에서 자주 마주치는 동물이 있다면 바로 길고양이일 것이다. 길고양이는 한번 길들여지면 보호자에게 의식주 대부분을 의지하는 반려동물과 다르다. 도심이나 주택가에서 자생적으로 살아가며 스스로 먹이활동을 포함한 의식주를 해결한다. 하지만 도심이나 주택가가 길고양이들에게 쾌적한 환경은 결코 아니다. 먹이활동을 할 만큼 충분한 먹거리가 존재하지 않고 무엇보다 신선한 물을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환경은 더욱더 아니다. 더군다나 이런 길에는 차들이 항상 지나다니기 때문에 차에 치여 사망하는 고양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런 고양이들의 보호자는 아니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 놓여 있는 길고양이들을 돌보고 공생하려고 노력하는 ‘캣맘’ ‘캣대디’가 늘어나고 있다. 

캣맘, 캣대디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길고양이의 밥을 챙겨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곳에 밥자리를 만들고 밥을 주기적으로 챙겨주면 그 영역을 지키고 살아가는 고양이들은 ‘그 밥자리에 가면 어렵지 않게 배고픔을 해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이렇게 밥과 신선한 물을 챙겨주는 것은 실제로 길고양이의 생존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시사저널 우태윤
ⓒ시사저널 우태윤

임시방편은 ‘진공효과’만 발생시킬 뿐  

하지만 길고양이와 사람의 궁극적인 공생을 위해서는 더 많은 역할이 요구된다. 고양이는 교미배란하는 동물로, 관리하지 않으면 무분별하게 개체수가 늘어날 수 있다.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 이미 길고양이의 무분별한 증가로 인해 개체수 조절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개체수 조절은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길고양이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러 나라에서 도입하고 있는 것이 바로 TNR 사업이다. 

TNR 사업은 포획(Trap)한 뒤 중성화 수술(Neuter) 후 포획한 장소에 다시 방사(Return)하는 것으로, 한 영역을 지키고 살아가는 길고양이의 습성을 이용한 방법이다. 보통 길고양이가 한 영역에 자리 잡고 살아가면 다른 새로운 고양이가 그 영역에 들어와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TNR 사업은 중성화 수술을 해서 번식할 수 없는 길고양이가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살아가도록 함으로써 번식 가능한 고양이가 유입되어 개체수가 증가하는 것을 막는 것이 핵심이다.  

길고양이 개체수 증가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마다 TNR 사업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매년 할당된 사업량에 맞게 TNR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TNR 사업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길고양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민원 해소용으로 신고하는 사례가 있다. 이런 민원인의 등쌀에 못 이겨 길고양이를 포획해 중성화한 뒤 원래 영역을 지키며 살아가던 곳이 아닌 인적이 없는 곳에 방사하는 일들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이는 당장 내 눈앞의 고양이만 사라지면 괜찮다는 이기적이고 임시적인 방편일 뿐이다. 영역이 비어 있으면 또 다른 길고양이가 그 영역을 채우는 일명 ‘진공효과’로 인해 길고양이 개체수 증가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길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길고양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람이든 길고양이의 무분별한 개체수 증가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TNR 사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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