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김하성의 최대 적은 ‘조급함’이다
  • 이창섭 야구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30 15:00
  • 호수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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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경기에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탓에 부진 이어져…샌디에이고, 충분한 출장 기회 보장할 듯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가 가지는 의미는 선수마다 다르다. 입지가 확실한 주전들은 말 그대로 정규시즌을 대비하는 기간이다. 몸 상태를 끌어올리고, 겨우내 준비했던 변화를 실전에서 적용해 본다. 이 선수들에게 스프링캠프 시범경기 성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입지가 불안한 선수들은 상황이 다르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경쟁이다. 눈도장을 찍기 위해 매 경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선수들에게 스프링캠프 시범경기는 이미 정규시즌이나 마찬가지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계약한 김하성(26)은 첫 스프링캠프를 보내고 있다. 야구는 똑같다고 하지만, 모든 환경이 낯설고 어색할 수밖에 없다. 메이저리그는 규모가 큰 만큼 선수도 많기 때문에 상대하는 투수도 다양각색이다. 김하성에게 스프링캠프는 이러한 미국 무대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유격수 김하성이 3월6일 LA 다저스와의 시범경기에서 상대 타자가 친 땅볼을 잡으려다 3루수 닉 타니엘루와 충돌해 넘어졌다.ⓒAP 연합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유격수 김하성이 3월6일 LA 다저스와의 시범경기에서 상대 타자가 친 땅볼을 잡으려다 3루수 닉 타니엘루와 충돌해 넘어졌다.ⓒAP 연합

빅리그 투수들의 빠른 공에 대처하는 능력 키워야

김하성은 함께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양현종보다는 그래도 여유가 있다. 양현종이 마이너리그 스플릿 계약을 맺은 반면, 김하성은 메이저리그 계약을 받아냈다. 보장된 계약 규모 4년 2800만 달러(약 316억원)는 샌디에이고 야수 전체 5위에 해당한다. 5년 차 옵션과 타석수에 따른 보너스, 여기에 키움에 준 포스팅 비용까지 감안하면 샌디에이고가 김하성에게 투자한 금액은 결코 적지 않다.

김하성은 분명 충분한 기회를 받을 것이다. 샌디에이고는 자신들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김하성을 최대한 활용할 예정이다. 다만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주전 자리를 확보하려면 경쟁은 불가피하다. 김하성은 메이저리그를 비롯해 마이너리그에서도 보여준 것이 없다. 미국 무대에서 기록한 성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스프링캠프 시범경기 성적에 유독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공교롭게도 김하성은 스프링캠프에서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1할대 타율(0.125)에 장타 없이 단타만 4개를 때려내고 있다(3월24일 현재). 잘 맞은 타구들도 야수들에게 가로막히면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중이다. 타격이 잘 풀리지 않다 보니 스스로도 위축된 모습이다.

문제는 단연 빠른 공 대처다. 김하성은 빅리그 투수들의 빠른 공에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시카고 컵스 카일 헨드릭스의 빠른 공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지난해 헨드릭스의 직구 평균 구속 87.4마일(140.5km)은 메이저리그 선발투수 중 가장 느렸다(물론 헨드릭스의 빠른 공은 움직임이 심하다).

타자가 빠른 공을 놓치면 타격 기회는 급격히 줄어든다. 투수를 상대할 때 기본은 빠른 공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메이저리그는 갈수록 투수들의 빠른 공 평균 구속이 높아지고 있다. 2010년 92.2마일(148.4km)에서 2020년 93.3마일(150.2km)이 됐다. 100마일(160.9km)을 던지는 투수가 과거에는 희귀했지만, 지금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투수들의 평균 구속이 KBO리그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타자 입장에서는 체감하는 차이가 크다. 현재 김하성이 고전하는 최대 이유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유격수 김하성이 3월6일 LA 다저스와의 시범경기에서 상대 타자가 친 땅볼을 잡으려다 3루수 닉 타니엘루와 충돌해 넘어졌다.ⓒAP 연합
2019년 7월13일(현지시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강정호가 시카고 컵스와의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홈런을 친 후 환호하고 있다.ⓒAP 연합

강정호도 시범경기 땐 부진했다가 정규시즌에서 펄펄

현지에서는 김하성의 타격폼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유의 레그킥(한쪽 다리를 드는 타격 자세) 동작을 버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유지해 온 타격폼을 전면 수정하는 건 위험한 도박이다. 빈대 잡으려다 자칫 초가삼간을 태울 수 있다.

일본리그를 평정했던 스즈키 이치로는 2001년 메이저리그 진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타격폼을 바꿨다. 투수들의 빠른 공에 대응하기 위해 전매특허였던 진자 타법(마치 시계추가 움직이듯 무게중심을 앞뒤로 옮기는 타격폼)을 축소했다. 일본에서는 정확성과 파워를 모두 안고 갈 수 있었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강점인 정확성에 중점을 두기로 한 것이다. 이치로의 전략은 대성공을 거뒀다.

이치로와 달리 자신의 방식을 그대로 밀어붙인 선수도 있었다. 2015년 강정호다. 김하성과 KBO리그 같은 팀(히어로즈) 출신인 강정호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그리고 강정호 역시 첫 스프링캠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시범경기 타율이 0.200에 그쳤고, 타석당 삼진율이 무려 34%였다. 그러자 강정호에게도 레그킥 동작을 없애야 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하지만 강정호는 시범경기 부진을 딛고 보란 듯이 정규시즌에서 대활약했다. 타율 0.287, 15홈런으로 리그 신인왕 투표 3위에 올랐다.

강정호는 우려했던 빠른 공 상대 성적도 대단히 뛰어났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강정호에게 평균 구속 94마일(151.3km)의 빠른 공을 던졌다. 강정호는 이 빠른 공을 상대로 타율 0.408과 장타율 0.697을 기록했다.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강정호보다 빠른 공 상대 타율이 높았던 타자는 아무도 없었다(100타수 이상).

이처럼 타격폼을 변경하는 것이 반드시 능사가 아니다. 조금 흔들린다고 해서 수정하는 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타자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 한다. 이치로 역시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의적으로 바꾼 것이었다.

무엇보다 김하성은 이제 막 미국 무대에 발을 들였다. 당장의 성과를 요구하기보단 시간을 두고 기다려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벌써부터 압박감을 주는 건 선수가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그 누구도 시범경기 성적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지난해 시범경기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친 타자는 밀워키 브루어스 유격수 올랜도 아르시아였다. 12경기에서 무려 6개를 쏘아올렸다. 그러나 이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시범경기에서 펄펄 날았던 아르시아는 막상 정규시즌이 되자 기세가 꺾였다. 아르시아의 정규시즌(59경기) 홈런 수는 시범경기보다 오히려 하나 적은 5개였다.

김하성의 가장 큰 매력은 ‘나이’다. KBO리그 경력이 풍부한데도 아직 20대 중반이다. 이 부분 때문에 많은 메이저리그 구단이 눈독을 들였다. 샌디에이고도 김하성이 메이저리그에서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내다본 팀이다. 현재보다 미래의 가치에 투자한 것이다. 장기계약 선수를 두고 첫 시범경기 성적으로 성공과 실패를 논하는 건 시기상조다. 시범경기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건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다. 김하성에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는 충고가 이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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