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혼 인정’ 둘러싸고 두 갈래로 쪼개진 일본열도
  • 박대원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01 07:30
  • 호수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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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삿포로 지방법원 “동성혼 불인정은 헌법 위반” 판결
정부·여당과 보수언론 등에서 반발

3월17일 일본에서 동성 간 혼인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혼인의 자유 등을 보장하는 헌법적 가치에 반한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일본 사회가 크게 들썩이고 있다. 홋카이도에 거주하는 동성 커플 3쌍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다. 이 소송에서 삿포로 지방법원은 “법률상 동성 간 혼인이 불가능한 것은 헌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민법 및 호적법상 ‘부부’의 개념을 남성인 남편과 여성인 아내의 결합만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해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법 아래의 평등을 규정한 헌법 제14조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헌법 제24조에 “혼인은 양성(兩性)의 합의에 의해서만 성립”한다고 명확히 규정되어 있으며, “동성 간 혼인은 상정하고 있지 않다”는 일본 정부의 견해와도 명확히 배치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삿포로 지방법원의 판결은 일본 내 5개 지방법원에서 진행 중인 동성혼 관련 소송 가운데 첫 번째로 나온 것이어서 더 크게 이목을 끌고 있다. “동성 커플이 혼인에 의한 법적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것은 합리적 근거가 없으며 차별적인 대우에 해당한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구별을 해소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고려해야 하는 사정이다” “성적 지향은 사람의 의사로 선택하거나 변경할 수 없음에도, 동성 커플에게 혼인에 의한 법적 효과의 일부조차도 부여하지 않는 것은 입법부의 재량권을 넘는 것이다”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단 법원은 “동성혼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이 일본 국내에 확산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 규정이 위헌이라는 것을 국회가 즉시 인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면서 “국가가 동성혼을 인정하는 입법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을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손해배상 요구(1인당 100만 엔)는 기각했다.

“동성혼을 인정하라”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원고 측 변호인과 지지자들이 3월17일  법원 판결 후 삿포로 지방법원 앞에서 ‘위헌 판결’이라고 쓰인 피켓과 무지개 깃발을 들고 있다.ⓒ뉴시스
“동성혼을 인정하라”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원고 측 변호인과 지지자들이 3월17일 법원 판결 후 삿포로 지방법원 앞에서 ‘위헌 판결’이라고 쓰인 피켓과 무지개 깃발을 들고 있다.ⓒ뉴시스

정계·언론계 및 학계의 반응 크게 엇갈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삿포로 지방법원의 판결 직후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로서는 혼인에 관한 민법의 규정이 헌법에 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하며 “타 법원에서 계속되고 있는 비슷한 종류의 소송의 판단에 대해서도 주시하겠다”고 말했다. 여당인 자민당의 정무조사회장인 시모무라 하쿠분 의원도 “한 번에 동성혼이나 파트너십 제도까지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의 혼란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하며, 성소수자들에 대한 이해 촉진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 대표는 “대단히 획기적이며 중요한 판결”이라고 평가한 뒤 “많은 사람이 대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고생해 왔다. 입법부가 제대로 대답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통감한다”고 밝히면서 서둘러 관련 법안을 정비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일본공산당 국회대책위원회장인 고쿠타 게이지 의원도 “획기적인 판결”이라고 평가하며 “혼인에 동반되는 법적 문제에 대해 정리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획기적인 판단에 기반해 우리들이 (현재의 법 제도를) 고쳐나가야 한다. 그것이 입법부로서의 책임이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신문은 3월20일 ‘동성혼 소송 판결, ‘위헌’ 판단에는 의문이 남는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헌법 24조는 혼인은 양성의 합의에 의해서만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중략) 현행 민법이나 호적법상 동성혼에 관한 규정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 법률이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헌법 14조에 위반된다는 것은 해석에 무리가 있는 것 아닐까”라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서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폭넓은 동의가 불가결하다. 시대의 변화를 따르면서도 전통과 국민 감정을 포함한 사회 상황에 기반해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소수자 가족 문제 전문가인 와타나베 야스히코 교토산업대학 교수는 “(이번 판결은) 사법부가 적극적으로 판단한 영향이 크다”고 평가하며 “판결에 의해 논의가 활성화되어 (일본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분위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니구치 히로유키 가나자와대학 교수는 “성적 지향을 성별이나 인종에 준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국제법적 해석과도 일치한다”고 평가했다.

 

올림픽 헌장과 전통적 가치관 사이에서도 고민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동성 간 혼인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2015년 11월부터 도쿄의 시부야구와 세타가야구를 시작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동성 커플의 파트너십을 인정하기 시작했으며, 동성 커플의 관계 증명서를 발급하는 ‘파트너십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중앙정부 차원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파트너십은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으며, 증명서를 발급받더라도 부부로서의 상속권이나 배우자 공제와 같은 세금 혜택, 자녀의 공동친권 같은 권리는 인정되지 않는다.

지바현 지바시에서는 2019년 1월부터 동성 커플 및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성 커플에 대해 호적상 혼인관계와 동등한 관계에 있음을 인정하는 공적 증명서인 ‘파트너십 인증서’를 교부하기 시작했다. 이는 동성 커플과 이성 커플이 동일하게 신청할 수 있는 제도로서, 일본 국내에서 성별에 대한 구분 없이 파트너십을 인정하는 공적 증명서를 발급하는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이에 대해 지바시의 파트너십 인증서 담당자는 “성별과 관련 없는 제도이므로 인증서에 성별 표기란이 없으며, 파트너십이 곧 동성혼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발급자들이) 성소수자임을 밝힐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성소수자들의 관계를 인정하는 파트너십 제도는 커플 2명이 같은 지역 내에 거주하거나 동거하지 않으면 이용이 불가능하며, 지자체 간 연계가 충분히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해당 커플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할 경우 기존 관할구청에 파트너십 증명서를 반납한 후 전입 지역에서 다시 파트너십 증명서를 신청해야 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 지자체 차원의 파트너십 제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입헌민주당·공산당·사회민주당 등 야당은 2019년 동성 간 결혼을 인정하는 ‘민법개정안’과 성적 지향과 관련된 ‘차별 해소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자민당의 찬성을 얻지 못해 법안은 심의되지 못했다.

일본은 이번 여름,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앞두고 있다.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기대하는 일본 정부가 ‘성적 지향을 포함하는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을 권리와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 올림픽 헌장의 기본 원칙과, 여당 및 일본 사회 내의 전통적인 결혼관·가족관을 어떻게 양립해 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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