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는 어떻게 집창촌을 문화공간으로 바꿨을까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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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성공한 전주 ‘서노송예술촌’
도시 이미지 개선엔 성공했지만 종사자 자활엔 무심
집창촌의 도시재생 사업이 벌어지고 있는 전주시 서노송동. 옛 성매매 업소를 생활사박물관으로 조성하는 등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김지나
집창촌의 도시재생 사업이 벌어지고 있는 전주시 서노송동. 옛 성매매 업소를 생활사박물관으로 조성하는 등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김지나

전주시청 앞에 자리 잡고 있던 집창촌이 사라졌다. 아니,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선미촌’이라고 불렸던 이곳을 ‘서노송예술촌’이란 문화예술마을로 탈바꿈시키려는 전주시와 민간의 노력들이 이뤄낸 성과다. 한때 선미촌에서 영업하던 성매매 종사자가 250여 명이나 됐다고 하는데, 지금은 겨우 한 블럭 정도만 남았다고 했다. 특유의 통유리창으로 이루어진 가게들이 일렬로 늘어선 풍경은 여전했지만, ‘폐업’이란 글자와 함께 창 너머로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집기들이 집창촌의 내리막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선미촌을 검색하면 긍정적인 기사들이 가득하다. 음침하고 불결했던 집창촌이 문화예술마을로 변신했다는 찬사들이 쏟아진다. 일시에 강제적으로 철거하는 대신, 시간을 두고 변화를 유도하는 ‘도시재생’의 방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더욱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여성인권센터에서 ‘성평등전주’라는 공유공간을 이곳에 연 점도 인상적이었다. 성을 착취하던 장소가 성평등 실현의 거점이 된다는 스토리가 이 지역의 변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서도 안성맞춤이었다.

주민들의 쉼터로 조성된 ‘시티가든’과 업소 건물을 재건축한 전시관. ⓒ김지나
주민들의 쉼터로 조성된 ‘시티가든’과 업소 건물을 재건축한 전시관. ⓒ김지나

강제 철거 대신 점진적 재생으로

옛 성매매업소가 정원이 되고, 책방이 되고, 생활사박물관이 됐다. 시에서 사들인 건물에 지역의 활동가나 예술가들이 새로운 콘텐츠를 채워 넣은 것이었다. 번듯한 전시관도 들어서 개관을 앞두고 있다. 우리가 통상 떠올리는 성매매업소의 유리방 형태는 90년대에 등장한 것이고, 이전에는 더 폐쇄적인 형태였다고 한다. 그 옛날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 있던 건물을 ‘기억공간’와 ‘시티가든’이라는 장소로 재탄생시키기도 했다. 성매매 여성들이 쉴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했던 것을 반영한 결과물이었다.

서노송동에 위치한 전주시청은 원래 1929년부터 1981년까지 전주역이 있던 자리였다. 사실 선미촌은 전주역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생겨난 것이었다. 집창촌은 역 주변에 생기는 경향이 있다. 서울의 용산역, 대전역, 원주역, 평택역 등등 그 사례도 다양하다. 예전에는 ‘선미촌’이 아니라 ‘뚝너머’라고 불렸다고 한다. 철도 둑 너머에 있다는, 집창촌을 은밀히 부르기에 적절한 이름이었다. 그러다 전주역이 전주시청으로 바뀌면서, 선미촌은 관공서 앞에 불법 성매매의 온상이 떡하니 자리 잡은 형세가 되고 만 것이었다.

선미촌은 전주시 입장에서 하루빨리 정비해야 할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동안의 집창촌 철거사업들과 달리, 긴 시간을 두고 민간과 협력해서 점진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성매매업소가 문화공간으로 바뀌는 변화가 눈으로 보인다는 것도 좋은 성과였다.

‘선미촌 관련 종사자 모임’의 이름으로 붙어 있는 대자보들. 소통과 생계보호를 호소하는 내용이다. ⓒ김지나
‘선미촌 관련 종사자 모임’의 이름으로 붙어 있는 대자보들. 소통과 생계보호를 호소하는 내용이다. ⓒ김지나

집창촌 여성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지만 여전히 과거의 그림자는 짙었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옛 업소들이 비어 있는 채로 방치돼 있었다. 업소 종사자였던 여성들이 써놓은 듯한 대자보가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보여주는 듯했다. 시티가든은 그 여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정작 그들은 소통과 생계 보호를 호소하고 있었다.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의 취지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모양새가 안타까웠다.

원래 이곳에 있던 여성들은 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흔히 집창촌을 인생의 종착역이라고들 한다. 집창촌 정비사업을 다루는 기사마다 종사자 여성들의 자활과 업종 전환을 함께 추진했다고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선미촌 옛 종사자들의 목소리는 대자보에서만 읽을 수 있을뿐, 알 방법이 없었다. 거리에서 만난 한 건물주 아주머니로부터 ‘다시 들어오면 안 되냐’고 부탁하던 것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단 이야기를 들은 게 전부였다.

집창촌 정비의 목적은 무엇이 돼야 할까. 당연히 도시 경관과 이미지 개선,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재교육이다. 하지만 후자의 것은 제대로 달성된 사례를 찾기 어렵다. 그 이유는 관행 탓으로 돌려지고, 말끔하게 단장된 겉모습에 가려져 점차 잊힌다. 전주시 역시 속도만 늦춰졌을 뿐, 첫 번째 목적에 보다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중간점검이 필요해 보였다. 빈 가게들을 빨리 채울 필요는 없다. 다만 다음번에 이곳을 찾았을 땐 적어도 대자보 대신, 소통과 자활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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