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전 패배는 ‘감독 경질’ 타이머 누르는 신호인데…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03 11:00
  • 호수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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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참패로 번지는 벤투 감독 불신론…월드컵 2차 예선 앞두고 불안감 커져

한·일전은 대한민국 스포츠에서 패배가 용납되기 가장 어려운 성격의 경기다. 특히 축구는 더더욱 그렇다. 3월25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 한·일전은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바뀌어도 그 성격과 국민적 몰입도는 변함없음을 보여준 한판이었다. 0대3이라는 대패에다, 경기 내용이 주는 체감에서도 완패가 분명하자 며칠 동안 스포츠를 넘어 우리 사회의 큰 이슈가 됐다. 2011년 삿포로에서 당했던 0대3 완패의 치욕이 되살아났고, 반대로 일본은 완승의 의미를 분석하고 한국의 전력을 깎아내리며 축제를 이어가는 중이다. 

대한축구협회가 안일한 인식으로 이번 한·일전을 치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손흥민·황의조·황희찬·이재성 등 유럽에서 뛰는 주력 선수 다수가 소집 거부로 빠진 탓에 전력이 온전치 않았고, 그 힘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게 이번 한·일전 완패에 대한 대체적 분석이다. 코로나19 불안감 속에 확진자 없이 안전하게 국제 교류전을 마친 것은 아무런 훈장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일본의 도쿄올림픽 개최에 대한 안전을 홍보하고 돌아온 격이라는 날 선 비판을 받았다. 최근 수년간 A매치 때면 엠블럼 밑에 의례적으로 넣던 양국 국기와 경기 정보도 이번 한·일전 패배 앞에서는 “왜 일본은 하지 않았는데 우리만 자존심을 굽히며 했느냐”는 갑론을박을 낳았다. 

3월25일 일본 요코하마 닛산스타디움에서 열린 80번째 한·일전에서 대한민국 파울루 벤투 감독이 생각에 잠겨 있다.ⓒ연합뉴스
3월25일 일본 요코하마 닛산스타디움에서 열린 80번째 한·일전에서 대한민국 파울루 벤투 감독이 생각에 잠겨 있다.ⓒ연합뉴스

벤투 감독의 고집과 불통, 히딩크의 ‘마이 웨이’와는 다르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파울루 벤투 감독에 대한 불신론이 번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일전을 추진한 것은 대한축구협회의 무리수였다는 전제에도 벤투 감독이 경기에서 보여준 전술과 선수 기용은 실망 그 자체였다는 회의적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이번 완패로 그동안 제기되던 벤투 감독의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전술론 외에 선수 선발을 둘러싼 소통 부재가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축구계에서 “한·일전 패배는 곧 감독 경질의 타이머를 누르는 행위”라는 얘기가 있는데, 그동안의 우려와 의문이 의심과 불신으로 커진 모습이다.

전술적인 면에서 벤투 감독은 일본의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에게 완패를 당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대성보다는 오히려 자충수에 가까웠다. 황의조·손흥민이 빠진 상황이었지만 최전방에서 일본 수비수들과 치열하게 싸워줄 수 있는 이정협이 있었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이전에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던 이강인의 제로톱(공격형 미드필더를 스트라이커 대신 투입하는 전술)을 가동했다. 벤투 감독은 “이강인이 상대 수비를 끌고 나오는 공간을 2선에 있는 이동준·남태희·나상호가 공략하려는 의도였다”고 설명했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이강인은 전반 내내 고전하다 교체됐다. 

후반에 선수 교체를 통한 전술 변화를 기대했지만, 후방에서의 빌드업에 집착하다 일본의 압박과 속도에 밀려 반전에 실패했다. 점유율은 51대49로 한국이 앞섰지만, 전체 슈팅과 유효 슈팅은 각각 6대19, 1대8로 처참하게 뒤졌다. 후방에서 차근차근 만들어 결정을 짓겠다는 벤투 감독의 빌드업 축구 비효율성이 드러난 경기였다. 1990년대 일본의 유명 미드필더였던 나나미 히로시는 “한·일전에서의 한국은 공 쟁탈전을 펼칠 때면 복싱 선수처럼 격렬하게 들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극적이었다. 이런 한·일전은 처음”이라고 평론했다.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직선적인 전개와 치열한 2차 공격 경합을 통해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었지만, 과거 한·일전과 달리 그런 박력과 투지도 없었다는 지적이다.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전술에 집중하다 한국 축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까지 잃어버린 선수들이 돼 간다는 얘기다. 

한·일전 명단 구성 과정에서부터 문제 제기가 많았다. 벤투 감독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홍철을 뽑았다가 소속팀인 울산 현대 홍명보 감독의 반론에 부딪혔다. 공교롭게 홍철은 이번 한·일전에 왼쪽 측면 수비수로 선발 출전했는데, 전반 2실점이 모두 그 위치에서 발생해 홍 감독의 지적은 현실이 됐다. 코로나19로 인해 귀국 후 자가격리가 필요해 소속팀의 희생이 불가피한데 특정 팀에서 너무 많은 선수를 차출하는 배려 부족도 문제였다. 울산에서만 무려 7명을 데려갔다. 3명을 내준 FC서울의 박진섭 감독도 조율과 소통이 없었음에 아쉬움을 표현했다. 

소속팀에서 코로나19에 감염돼 한·일전 소집 명단 발표 후 제외하는 촌극이 발생한 주세종(감바 오사카)의 선발, 허벅지 근육 부상을 인지하고도 명단에 넣었다가 5일 후에야 대체 선수 김인성(울산)으로 교체한 손흥민 선발은 벤투 감독의 시야가 근시안적이라는 지적을 듣기 딱 좋은 논란거리였다. 김영권(감바 오사카)과 박지수(수원FC)도 경기 감각이 올라오지 않았는데 한·일전에 선발 투입됐다가 수비 불안을 야기했다. K리그를 비롯한 현장에서는 “분명 더 좋은 경기력의 선수가 그 포지션에 있음에도 벤투 감독이 새로운 선수 선발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벤투호의 선수 선발 시스템이 고착화된 모습이다.

과거 히딩크 감독 역시 ‘마이 웨이(My Way)’라는 명곡에 빗대 자신만의 소신과 철학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 방식이 너무 완고해 고집으로 비칠 시점에 국내 코치진과 기술위원회(현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가 한국적 특성에 기인한 적절한 의견을 제시하고 조율하며 성공의 길을 열었다. 현재 벤투호는 감독의 전술 고집이나 일방 소통에 문제 제기를 걸어줄 인물이 내외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권한이 권력으로, 소신이 독선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몽규 3기’ 쇄신과 맞물린 축구협회 지원 체계도 불안 요소

벤투호와 건강한 긴장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도 보이지 않는 문제다. 벤투 감독 선임 당시에는 김판곤 전력강화위원장이 축구협회 부회장을 겸직하며 책임에 비례하는 권한을 가졌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각급 대표팀 감독 선발을 체계화하고, 다양한 문제 제기에 빠른 피드백을 보여주며 투명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각급 대표팀 감독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정기적인 평가를 통해 냉정한 조언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3선 확정 후 인적·조직적 쇄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벤투호 지원 체계를 둘러싸고 필요 이상의 변화가 발생했다. 김 위원장은 부회장직에서 물러나고 전력강화위원회만 맡았다. 권한은 사라지고, 벤투호에 대한 책임만 무한대로 커진 셈이다. 김 위원장을 지원하던 홍명보 전무가 울산 감독으로 떠나자 곧바로 벌어진 일이다. 그 외에 벤투 감독과 축구협회 간 가교 역할을 하던 지원 담당 직원도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 새 집행부 출범에 맞는 변화는 필요하지만, 연속성이 중요한 대표팀 운영 등은 굳이 손댈 필요가 없었다. 결국 한·일전을 앞두고 대체 선수 발탁 때는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 대표팀과 대화 없이 이동경(울산)을 데려가는 등 내부 소통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벤투호는 당장 6월부터 카타르월드컵 2차 예선을 치른다. 이후에는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위한 최종예선을 넘어야 한다. 이번 한·일전을 통해 본격적으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실전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 실패가 이어질 수 있다. 한·일전 후 대한축구협회는 정몽규 회장의 이름으로 A매치 단일 경기 패배 후 이례적으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적극적인 지원과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대화를 통해 월드컵 예선부터는 다른 모습을 보이겠다는 다짐을 지키려면 대한축구협회는 벤투호뿐만 아니라 조직 점검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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