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경남교육감님! ‘서당’보단 ‘학폭’입니다
  • 이상욱 영남본부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21.04.0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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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교사노동조합 “경남교육감은 하동 서당 학폭에 책임 통감해야”

‘험프리’라는 이름의 검정과 흰색 점박이 고양이가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 살고 있었다. 험프리는 긴 세월 세 명의 총리와 주소를 공유했는데, 그 중 보수당원 마거릿 대처와 노동당원 토니 블레어도 있었다. 어느 실험에서 영국의 유권자들에게 험프리의 사진을 보여주고 험프리가 좋은지, 싫은지 물었다. ‘대처의 고양이’라고 설명하자 험프리는 보수당 유권자들의 44%, 노동장 유권자들의 21%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블레어의 고양이’라고 설명했을 때는 보수당 유권자들로부터 27%, 노동당 유권자들로부터 37%의 지지를 받았다. 맥락이 달라졌을 뿐, 똑같은 고양이다. 

2월 2일 방과후학교 자원봉사자의 공무직 전환 방침을 발표하고 있는 박종훈 경남교육감. ©경남교육청
박종훈 경남교육감 ©경남교육청

어느 물건에 대한 물리적 설명이 하나의 ‘진실’이라면, 해당 물건에 붙일 수 있는 다양한 맥락은 그와 경합하는 진실들이다. 그리고 이 경합하는 진실들이 사람들에게 아주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처럼 물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물건 자체보다 맥락에 더 많이 의존한다. 

사실 맥락은 사람들이 이해하려고 하는 복잡한 세상의 일부다. 어떤 행동이나 사건을 평가할 때 맥락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정작 어려운 것은 어느 맥락이 관련성을 가진 ‘적절한 맥락’이냐 하는 점이다. 같은 이야기도 이 맥락에서 들으면 저 맥락일 때와는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 현실을 재구성할 때 어느 맥락은 강조하고 어떤 맥락은 축소할지 결정하는 것을 정치인과 사회운동가는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지난해 2월 경남 하동의 한 서당 기숙사에서 학생들 사이에 밤마다 집단 폭행·학대 사건이 발생했고, 결국 피해학생은 서당을 나왔다. 검찰은 가해 학생 2명을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지난해 12월 기소했다. 지난달에도 경남 하동 한 서당에서 체액을 먹이는 등 또래 남학생들로부터 상습적 구타와 성적 학대를 당한 학생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학동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을 게재했다. 학교폭력이 학교와 서당 측의 관리 소홀로 사실상 방치돼온 셈이다. 

이 사건에서 박종훈 경남교육감의 발언을 주목해보자. 박 교육감은 3월29일 기자간담회에서 "서당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집단수련(거주) 시설로, 교육청 지도·감독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이들 서당이 학원과 유사하게 운영되지만, 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집단거주시설로 등록해 교육청의 지도·감독을 회피하고 있다. 또 청학동 서당을 특색사업으로 포장하고 제대로 된 관리를 하지 못한 하동군에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 이후 일부 언론은 ‘서당’에 맥락을 강조했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2조를 주목해보자.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런데도 ‘학폭’은 축소되고, ‘서당’의 문제점이 더 부각되는 상황이다. 서당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 중 101명(초등61, 중등 40명)이 공립 초·중학교 학생이 아닌가. 

교묘하게 맥락을 깔아 진실을 편집하려는 경남교육감의 발언에 경악한다. “학교 밖에서 일어난 사건도 관리책임 있음에도 경남교육감은 일정부분 하동군에 책임을 떠넘기며 학교 밖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방관·방치한 책임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학생의 원적은 경남교육청 소속임을 인식하고 이들 학생의 관리책임을 피할 수 없다. 경남교육감은 하동 서당의 지속적인 폭행·가혹 행위 발생의 책임을 통감하고 관리·감독 대책을 수립하라”는 경남교사노동조합의 논평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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