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하면 걸크러시, 남자가 하면 범죄?
  • 하재근 문화 평론가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1.04.03 16:00
  • 호수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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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래 논란으로 촉발된 여성 예능인 性 표현 문제

얼마 전 박나래가 성희롱 논란으로 큰 곤욕을 치렀다. 스타 유튜버 헤이지니와 함께 진행한 유튜브 예능 《헤이나래》 때문이었다. 유행하는 장난감 체험 코너에 남성 모양의 인형이 나왔다. 박나래는 그 인형에게 ‘암스트롱맨’이라는 이름을 붙인 후, 인형 팔을 사타구니 쪽으로 밀어넣는 등 성적인 행동을 했다. ‘암스트롱맨’이라는 이름에도 성적 뉘앙스가 있었다. 그것이 성희롱 논란으로 번진 것이다. 

만약 남성 연예인이 여성 인형을 만지면서 성적인 뉘앙스의 이름을 붙이고 성적인 행동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퇴출될 정도의 사안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그런 장면을 내보낸 프로그램과 제작진도 온전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헤이나래》 제작진과 박나래는 이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건 초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다 큰 질타를 받았고 결국 프로그램 폐지로 귀결됐다. 

유튜브 예능 《헤이나래》에 출연한 박나래ⓒ스튜디오와플 유튜브 캡쳐
유튜브 예능 《헤이나래》에 출연한 박나래ⓒ스튜디오와플 유튜브 캡쳐

박나래는 그동안 수위 높은 개그로 인기를 모았다. 당당한 여성이 부각되는 걸크러시 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하지만 그 자신감이 과도했던 것 같다. 박나래는 또, 탁자 다리에 성적인 행위를 하기도 했다. 

제작진도 문제다. 문제의 장면에 프로그램은 ‘방금 25금 아니에요?’라는 식의 자막을 달았다. 영상 썸네일 이미지에도 해당 인형을 전면에 내세우며 ‘39금 못된 손 감당불가 수위조절 대실패’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 장면을 그저 웃기는 개그 퍼포먼스 정도로 인식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만약 남성 연예인이 여성 인형에 성적인 행위를 했어도 제작진이 개그로 전면에 내세웠을까? 

유튜브 예능 《헤이나래》에 출연한 박나래ⓒ스튜디오와플 유튜브 캡쳐
박나래와 유튜버 헤이지니가 《헤이나래》를 진행하는 모습ⓒ스튜디오와플 유튜브 캡쳐

미주·김민아의 성희롱 논란 

이 사건은 우리 방송가에서 통용되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잣대가 완전히 다르다는 걸 말해 준다. 하지만 이제 시청자가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것도 공정의 문제다. 남녀 성 표현의 잣대가 다르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성 표현의 공정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해졌다. 

러블리즈 멤버인 미주도 유사한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6월 공개된 웹예능 《미주픽츄》에서 남대생을 인터뷰하던 미주는 “너 여자친구 있었어? 어디까지 갔어 여자친구랑?”이라고 물은 뒤 “끝까지 갔겠지”라고 단정했다. 사귄 지 200일 됐다고 하자 “무조건이네”라고 하더니, 남대생이 아니라고 하자 “웃기지 마, 너 남자 맞아?”라며 남대생의 아래쪽을 쳐다봤다. 만약 남성 연예인이 여대생에게 카메라 앞에서 이것과 똑같은 행동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 프로그램도 남대생의 하체 쪽을 쳐다보는 미주의 시선을 그래픽까지 곁들여 그대로 내보냈다. ‘예쁜 얼굴에 그렇지 못한 시선 처리’ ‘시선이 왜 내려가는지’ 등의 자막도 달았다. 개그 코드 정도로 인식했다는 이야기다. 결국 제작진과 미주는 뒤늦게 사과했다. 

거침없는 표현으로 인기를 얻은 김민아는 또 다른 웹예능에서 남중생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민아는 “엄청 에너지가 많을 시기인데, 그 에너지는 어디에 푸냐”고 물었고, 학생이 말없이 웃자, “왜 웃냐?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냐”고 했다. 학생이 “집에 있으면 엄마가 잘 안 계셔서 좋다”고 하자 김민아는 “그럼 집에 혼자 있을 때 뭐 하냐”고 하며 음흉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이 경우는 심지어 미성년자가 대상이었다. 만약 남성 연예인이 미성년 여학생을 대상으로 성적인 뉘앙스의 인터뷰를 진행했다면 어떻게 됐을 것인가? 당연히 큰 파문이 일고 해당 연예인은 퇴출되거나 심대한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미주, 박나래 사건과 유사한 일을 남성 연예인이 벌여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을 것이다. 

하지만 박나래는 문제의 웹예능이 폐지되었을 뿐 그 밖의 TV 프로그램에 그대로 등장했다. 미주도 그대로 활동했고 김민아만 잠시 자숙했을 뿐이다. 복귀한 김민아는 유흥업소에서 성적인 일탈을 묘사하는 듯한 몸짓으로 또 논란을 일으켰다. 아예 경각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방송가 내에 문제의식이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을 저지르고도 계속 방송활동을 이어갈 수 있고, 제작진은 문제의 행동을 개그 코드 정도로 부각시키는 것이다. 

유튜브 예능 《헤이나래》에 출연한 박나래ⓒ스튜디오와플 유튜브 캡쳐
‘성희롱’ 논란에 자필 사과문을 발표한 박나래ⓒ박나래 인스타그램 캡쳐

여성의 표현도 성찰해야 하는 시대 

그동안 남성은 성적인 표현을 거침없이 하는 반면 여성은 성적으로 억압된 존재라는 시각이 많았다. 남성들의 성적인 표현이 여성들의 불쾌감을 초래하는 성희롱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래서 방송가에 남성의 성적인 표현을 엄격하게 바라보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 

반면 여성의 성적인 표현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관점에서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주류였다. 통쾌한 금기 깨기, 당당한 자기표현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김혜수의 노출 드레스가 사회적 찬사를 받은 이후 여성의 성적 표현이 멋지고 쿨하고 당당한 일이라는 인식이 강화됐다. 

최근 걸크러시, 페미니즘이 대두하면서 여성 예능인들이 부각됐는데, 이들 중 과거의 조신한 여성상을 깨는 거침없는 캐릭터들이 있었다. 박나래, 안영미 등이 대표주자고 김민아도 그런 흐름 속의 인물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여성의 성적인 표현이 이어지고 제작진들은 그걸 재미 요소로 부각시켰던 것이다. 

《세바퀴》 같은 예능에서 남성의 몸을 여성들이 거침없이 만지거나 노골적으로 바라보고 품평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과거에 곽정은이 토크쇼에서 옆자리에 앉은 연하의 남가수들에게 “침대 위가 궁금한 남자” “어리고 순수하게 보이는데 키스 실력이 궁금하다”고 했던 적도 있다. 당시 비판이 일자 곽정은은 “나는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냈는데 우리 사회가 여성의 욕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식으로 해명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식의 해명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역차별에 대한 인식이 커졌다. 남성이 하면 퇴출당할 일인데 왜 여성은 해도 되느냐는 것이다. 자라면서 남성 특혜를 별로 받아보지 못한 요즘 젊은 세대에게서 이런 인식이 크게 나타난다. 미투 운동을 거치면서 남성들은 큰 질타를 받았는데, 여성 연예인은 사각지대에서 성적 표현으로 걸크러시 행세를 한다는 인식도 생겨났다.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성적 표현에 대해서도 전면적으로 돌아봐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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