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박주민의 위선, 민심의 법정에 서다
  • 김태일 전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06 07:30
  • 호수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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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소리 곧은 소리] 진보파 그들은 왜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가

우리나라 보수파는 ‘자유’의 깃발을 들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자유는 부자들의 자유였다. 이들과 싸워온 진보파는 ‘민주’의 깃발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민주는 엘리트들의 민주였다. 부자들을 위한 자유, 엘리트들을 위한 민주, 이것이 우리나라 현실정치의 씁쓸한 풍경이다. 모든 국민을 위한 자유와 민주는 찾아보기 어렵다.

보수파의 자유가 부자들의 자유라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보수파는 오랫동안 그랬기 때문이다. 국가 주도 산업화 과정에서 정치·행정·언론·종교와 결탁한 부자들이 온갖 특혜를 누리며 비리를 저질러온 것을 늘 봐왔던 터이다. 부패는 오롯이 보수파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근자에 와서는 진보파의 위선이 문제가 되고 있다. 진보파는 부패한 보수파와 싸우면서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 왔다. 국민들에게 자신은 정의롭고 깨끗한 공적 이익의 수호자라고 말해 왔다. 그런데 최근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장면들은 황당하다. 정의롭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공적 가치를 추구하기는커녕 사적 이익에 골몰하고 있는 진보파의 모습 때문이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3월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퇴임 인사에 앞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3월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퇴임 인사에 앞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민심의 평결에선 범법 이상으로 엄중한 게 ‘위선’

교육의 공공성을 주창하면서 모든 이에게 좋은 교육 기회를 부여해야 하고 그것은 평등해야 한다고 하던 진보파의 지도자들 가운데 자기 자식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이가 있다. 그들은 자식의 성공을 위해 온갖 방편을 동원할 수 있으며 그 수단이 정당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보통사람들의 상심은 말로 다 하기 어려울 정도다.

여기에서 ‘정당하지 않은’이라는 말은 법을 어겼느냐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 일에 당사자가 된 진보파의 어느 지도자는 자기는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에게 그런 말은 의미 없다. 부모가 가지고 있는 사회·경제적 자원을 기반으로 좋은 기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난 부모의 네트워크로 내로라하는 기관에서 연수 기회를 얻고 번듯한 증명서를 받아 그것으로 또 다른 기회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보통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런데도 법을 어기지 않았으니 정당하다고 말할 것인가? 민심의 법정에서는 범법 이상으로 ‘위선’이라는 평결이 엄중하다는 사실을 진보파 지도자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부동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집값·전셋값이 다락같이 오르고 있고 그 원인의 하나로 눈총을 받고 있는 다주택 소유자들에게 따가운 시선이 가고 있는데도 청와대 참모그룹에서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어떤 청와대 고위 참모는 다주택을 처분하라는 요구를 무안하게 만들며 집을 지키기 위해 사표를 던지고 나갔다.

부동산 투자와 투기는 종이 한 장 차이이고, 부동산의 경우도 교육 문제와 마찬가지로 법을 어긴 것이 아닌데 뭐가 문제인가라고 하지만 보통사람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온갖 잘난 소리를 하던 진보파도 다를 바 없다고 본다. ‘다를 바 없구나’ 정도가 아니라 민심은 진보파에 대해 더 괘씸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진보파는 이른바 보수파의 부패와 싸우면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았고 자신들은 보수파에 비해 도덕성에서 우위에 있다고 늘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부동산 문제에서도 진보파에 대한 민심의 평결은 ‘위선’이었다.

최근 바뀐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경우는 ‘위선’ 중에서도 그 끝판왕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는 부동산 임차인을 보호하는 임대차 3법 시행을 코앞에 두고 자기가 임대한 집의 전세금을 왕창 올렸다고 한다. 임대차 3법은 임대료 인상을 5%로 제한하자는 것인데 그 시행 직전에 김 전 실장은 자기 소유 강남 아파트 전세보증금을 14.1% 인상했으니 ‘부동산 대책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실수요자 보호’라는 그의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임대차 3법이 부작용을 일으켜 전세난이 일어났을 때도 김 전 실장은 안정을 장담하며 좀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이런 과거의 발언들이 재소환되면서 김 전 실장은 설 곳이 없어졌다. 약삭빠른 행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김 전 실장의 처신은 공분을 사게 되었고 결국 그는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김 전 실장의 퇴진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각종 미디어는 그의 ‘위선’에 대해 얘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가 공직사회에 등장할 때 30년 묵은 낡은 가방을 들고 나와 검소하고 청렴한 이미지를 만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도 다 상징 조작의 도구가 아니었나, 그런 모습 때문에 더 가증스럽다는 비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재벌 저격수인가, 세입자 저격수인가” 조롱

그런 지적들을 지나쳐 들을 수 없는 것이, 김상조라는 이름은 우리나라 경제 개혁, 그 가운데서도 재벌 개혁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에서, 재벌기업의 주주총회장에서 그가 보여온 말과 실천은 무게감이 있었다. 그랬던 터라 김상조라는 이름은 더 큰 위선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그를 향한 “재벌 저격수인가, 세입자 저격수인가”라는 조롱이 그런 처지를 말해 주고 있다. 세월호 변호사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싸움에 몸을 사리지 않았던 박주민 더불어민주당의원도 김상조 실장과 똑같은 이유로 놀림거리가 되고 있다. 그가 거지 변호사, 거지 국회의원으로 불렸던 만큼 그의 ‘위선’에 대한 지지자들의 실망도 크다.

사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위선에 쏟아지는 조롱과 비난은 모두 다 그가 감당해야 할 일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전체가 져야 할 몫이다. 가깝게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사태와 관련해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 ‘윗물은 맑은데 아랫물은 아직 문제다’라는 말이 국민들의 부아를 돋우기도 했다. 또한 길게는 적폐 청산 작업이 늘어지면서 정치구도가 오랫동안 선과 악, 정의와 불의라는 이분법적 틀로 굳어졌고, 거기서 민주당은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고 개혁을 추동해 왔다는 점도 지금의 조롱과 비난을 자초한 요인이다.

도덕적 우월감은 개혁을 주도하는 진보파에게 저항을 관리할 수 있는 힘을 주었고, 개혁의 에너지와 속도를 높일 수 있게 했던 동력이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 지금은 다 부메랑이 되고 있다. 민주당 정부는 개혁을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옳음을 천명하면서 밀어붙였다. 결과보다는 동기를 중요시했다. 그 성적표가 ‘위선’이라는 민심의 평결이다.

김상조 전 정책실장의 전격 경질과 박주민 의원의 선거캠프 하차는 ‘위선의 퇴장’이라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결정인데, 그래도 질문은 남는다. 우리 공동체를 지탱하고 있는 두 가지 가치, 자유와 민주는 아직도 부자의 자유, 잘난 사람들의 민주에 머무르고 있다. 언제 우리는 국민의 민주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우리나라를 공화국이라고 하는 이유는 부자의 나라도 잘난 사람들의 나라도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이 소동이 자유 보수파의 부패와 민주 진보파의 위선을 넘어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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