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실업을 방치할 건가, 거품을 방치할 건가
  •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02 17:00
  • 호수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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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일자리가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이다. 그러다가 경기가 좋아지면 불경기 때문에 사라졌던 일자리가 다시 생겨난다. 경기 변동이란 일자리가 늘었다가 줄었다가 다시 늘어나는 흐름의 반복을 의미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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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과거의 불경기와 요즘 불경기에는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다. 과거에는 불경기에 일자리가 사라졌다가 경기가 좋아지면 그 일자리가 다시 회복됐지만 요즘에는 사라진 일자리가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는다. 경기가 좋아지면 일자리가 늘어나긴 하지만 위기 이전의 수준은 결국 회복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2000년 이후 미국의 고용률(15세 이상 인구 가운데 취업자 비율) 수치를 보면 서서히 내리막을 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불경기를 겪고 다시 회복될 때마다 그 이전 수준의 고용률을 회복하지 못한 채 다시 새로운 불경기를 맞곤 했기 때문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불경기가 닥치면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위기를 치유하는 게 새로운 관행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유력하다. 불경기가 닥쳐도 부실기업들이 구조조정되는 경우가 많지 않고 그러다 보니 불경기에서 회복되더라도 새로운 기업들이 나타나지 못하는 악순환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그렇다고 불경기가 올 때마다 기업들이 쓰러지도록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런 현상이 계속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요즘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기 논쟁도 결국 이 점을 두고 벌이는 토론이다. 고용률이 높아지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금리를 올리느냐는 미국 연준의 입장과 그럼 물가가 계속 오르고 경기가 과열되는 것을 방치할 것이냐는 시장의 질문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자니 아직 일자리를 못 찾고 있는 저소득층이 많고, 그렇다고 그들이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저금리를 유지하며 기다리자니 그 사이에 경기가 과열되면서 거품이 커지고 그게 더 큰 위기를 잉태하게 된다는 걱정이다.

이 두 가지 선택지는 실업을 방치할 것이냐 아니면 거품을 방치할 것이냐로 압축되기도 하는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반드시 겪게 되는 고통이 있다. 바로 양극화다. 일자리가 충분히 생기지 않았는데 거품이 생기는 게 두려워서 금리를 올리면 경기는 다시 가라앉기 시작하고 불경기에 일자리를 잃은 서민들의 일부는 영영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빈곤층이 된다. 그렇다고 금리를 올리지 않고 계속 거품을 방치하면 자산 가격이 급등해 역시 저소득 서민층은 상대적인 빈곤을 더 심하게 겪게 된다.

둘 중 어떤 상황을 선택할지 고민스러웠던 미국은 두 번째가 차라리 좀 더 낫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아마 많은 나라가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실체적 빈곤은 상대적 빈곤에 비해 훨씬 고통스럽다.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첫 번째 변화는 고소득층이나 자산가들 또는 우량한 기업들에 집중될 강력한 세금 인상이 될 것이다. 그들이 내는 세금이 꼭 필요해서가 아니더라도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을 치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증세는 매우 유효한 선택지가 될 것이다.

그 이후에 닥칠 두 번째 변화는 민간 투자의 위축이다. 투자의 위축은 세금을 올리기 시작하면 나타나는 일상적인 변화이므로 생소하지는 않지만 그 투자 결손에 따른 성장 부진을 정부가 재정 투입으로 메울 수 있느냐가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과연 정부의 재정 투입이 민간 투자의 부진을 커버할 수 있을까가 앞으로 경기 흐름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대체로 비관적인 쪽에 가깝다. 우리의 고민은 거기에 있고 그 결과는 다시 양극화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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