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층의 반란에 프랑스 정치권도 흔들
  • 김중회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27 07:30
  • 호수 164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30세대가 극우정당 지지로 몰리는 이유
“공정·정의롭지 않은 마크롱 정부에 분노”

정치 무관심층으로 여겨졌던 청년층의 정치권을 향한 반란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다. 최근 한국에선 4·7 재보선에서 정부·여당을 심판하려는 2030세대의 표심이 매서웠다. 흥미로운 건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5일 프랑스여론연구소(Ifop)가 르몽드(Le Monde)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극우정당인 국민연합(RN)이 청년층으로부터 가장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5~34세의 29%가 RN을 지지하며 1위로 기록됐다. 중도 성향의 여당 ‘전진하는 공화국(LREM)’이 20%, 좌파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당(LFI)’이 19%, 녹색당이 10% 등으로 뒤를 이었다. 평소 청년층은 부동층이 가장 많고 실제 투표율도 낮은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선 20대 중 무려 80%가 다음 대선에 참여하겠다는 응답을 함께 내놨다.

지난 1월  마르세유 한 거리에서 프랑스 청년들이 정부의 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AP 연합
지난 1월 마르세유 한 거리에서 프랑스 청년들이 정부의 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AP 연합

“청년층 소외시킨 마크롱 정책이 주 원인”

이러한 현상은 ‘중도 실용주의 정치’를 표방한 채, ‘반(反)극우 대연합’을 통해 지난 2017년 66%라는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됐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실망으로 풀이된다. 이번 여론조사를 의뢰한 르몽드는 그 원인을 마크롱 대통령의 정책에서 찾았다. 마크롱 정부는 프랑스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청년층에 대한 주거지원 정책을 대거 축소하고, 비정규직 확대를 통해 고용보험 혜택을 줄이는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한편으로는 재산세 폐지, 규제 완화 등을 통해 부유층 및 대기업에 이익을 주는 듯한 정책을 폈다. 이러한 마크롱의 모순적 정책에 청년층이 분노했다는 분석이다.

이 외에도 프랑수아 드 뤼지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2018년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하기 위해 비밀리에 국민의 세금으로 자신의 친지들과 ‘디너파티’를 벌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등 정치인들의 부패 스캔들이 끊이지 않은 탓도 작용했다. 최근엔 코로나19로 정부의 대책 없는 락다운(Lockdown)이 이어지자 많은 청년의 소득이 줄어들고 일자리도 잃었다. 이러한 복합적 요인들로 인해 청년층의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는 것이 다수 프랑스 정치평론가의 분석이다.

여기서 잠시 극우정당에 대해 살펴보면,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의 독재를 겪고,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이웃 나라 독일의 나치에 의한 군국주의화를 지켜보았던 프랑스인들에게 극우 성향은 오랫동안 금기의 대상이었다. 더욱이 결선투표제 등 프랑스 정치 시스템으로 인해 의회와 대통령궁은 매번 기성 정당의 차지였다. 극우정당은 당연히 존재감이 없었다.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프랑스의 제조업 붕괴, 그리고 잇따른 테러 등으로 인해 극우정당은 점차 지지 기반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특히 국민연합은 2대 당 대표 마린 르펜 체제를 거치며 청년층의 지지를 받는 기성 정당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극우정당은 과거와 달리 신진 여성 정치인 르펜이 당을 이끌면서 기성 정치인들의 비리와 엘리트주의를 비판하고, 기성 정치인들이 말하지 못했던 ‘프랑스 사회의 금기’를 지적하는 ‘사이다 정당’의 이미지로 변모했다.

르몽드 의뢰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연합을 지지하는 청년의 50%는 국민연합이 ‘정직한 정당이기 때문에 지지한다’고 밝혔다. 다수의 정치평론가는 극우정당의 부상을 막아온 현재의 프랑스 정치제도가 도리어 국민연합의 ‘정직하지 못한 기성 정치에 도전하는 정직한 신진 정당’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최근 프랑스 청년 사이에선 한국의 ‘N포 세대’(사회·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연애·결혼·주택 마련 등 많은 것을 포기한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로 포기한 게 너무 많아 셀 수도 없다는 뜻)와 유사한 ‘희생당한 세대’란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사회의 모든 희생 요구가 자신들에게 가장 크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SNS에선 해시태그(#희생당한 세대)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고,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분노한 청년들이 연일 거리로 나서 마크롱 정부에 반발하는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정치권에서 나타나는 극우정당 지지 분위기에 대해 이러한 사회적 반발 이후 발표된 결과이기에 더욱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내년 대선에서 청년들의 심판 이뤄질까

여론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건 청년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주간지 르주르날뒤디망슈(JDD)와 르푸앙(Le point)의 의뢰로 프랑스여론연구소가 실시한 극우정당 지지 관련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35%가 국민연합 후보를 지지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 중 40%는 국민연합을 지지하는 주된 이유를 ‘기성 정당에 실망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주요 지지자는 블루칼라 노동자나 농민 계층을 비롯한 서민(36%)이 대다수였다. 또 고졸 이하 저학력층(30%), 월 소득 3000유로(약 450만원) 이하 저소득층, 중산층 지지자(75%)가 가장 많았다.

동시에 83%의 지지자가 비수도권 주민들로 나타났다. 프랑스의 제조업 벨트였던 프랑스 북동부는 경제위기로 몰락했다. 프랑스 동남부는 지중해를 통한 막대한 이민자 유입에도 중앙정부의 수도권 중심 정책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려 ‘상시적인 갈등 상태’에 처했다는 불만이 나온다. 

최근 여러 발표에 따르면 프랑스 북동부와 동남부 지역의 청년 실업률은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마크롱 정부는 파리 시내 대학들의 경쟁력 강화에 힘썼고, 지방대학의 사정은 갈수록 나빠졌다. 심지어 복지 혜택마저도 수도권 지역 청년들과 비수도권 지역 청년들 사이에 차등이 생겼다. 어쩔 수 없이 청년들은 지역을 떠나 수도 파리로 몰려든다. 이런 상황이 출구 없이 계속 벌어지자 청년층을 포함해 지역과 계층에서 소외되는 비기득권 유권자들이 큰 불만과 함께 심판에 대한 의지를 품으며 극우정당에 표심을 몰아주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한 흐름이 극우정당에 표심이 쏠리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관측이다.

4·7 재보선에서 한국의 유권자들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 부동산 가격 불안정 등으로 정부·여당에 매서운 심판을 가했다. 특히 20대 청년들이 분노했다. 정부·여당이 강조했던 ‘공정’과 ‘정의’가 어디로 갔느냐는 메시지였다. 국경을 넘어 프랑스 청년들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내년에는 한국과 함께 프랑스에서도 대선이 치러진다. 기존의 기득권에 질려 극우정당에 기대를 던지고 있는 이 흐름이 내년 대선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