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언니’ 양희은의 에세이 《그러라 그래》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25 11:00
  • 호수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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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타인의 평가로 엉망되고 좌절하다 다시 일어나는 것”

한 사람의 인생을 책으로 만든다면 가장 다양하고 포근한 이가 누굴까. 탤런트라면 최불암, 김혜자, 이순재처럼 과도하지 않은 느낌으로 시청자들에게 편안함을 주던 이들일 것이다. 중년의 경우 많은 이가 양희은을 생각할 것이다. 처음에는 포크송 가수로 다가와 다정한 음색으로 사람들을 찾아왔지만 《아침이슬》 등 길항적 민중가요를 통해 항상 우리 편이 되어줄 것 같은 사람이었다. 또 《하얀목련》 등 불후의 명곡들을 남겼다. 지금도 양희은이 《엄마가 딸에게》를 부르면, 많은 사람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노래를 듣는다.

《그러라 그래|  양희은 지음| 김영사 펴냄 | 244쪽 | 1만4500원》
《그러라 그래|  양희은 지음| 김영사 펴냄 | 244쪽 | 1만4500원》

그런 그녀가 1999년 6월 이효춘, 손숙에 이어 MBC 라디오의 간판 프로그램 MC로 발탁된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올해 칠순을 맞는 시간까지 22년을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청취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런 삶의 과정을 편안하게 담은 책이 이제 나왔다는 것은 오히려 의외라고 할 수 있다. 어릴 적 음악에 영향을 준 김민기, 송창식 등과 함께 한국 대중음악사를 썼고, 군부정권 시절에는 내놓는 곡마다 금지곡이 되는 풍파도 겼었다. 또 30대에는 난소암으로 사경을 헤맨 순간들이 있었다. 이번 책은 그녀가 독자들에게 조그맣게 던지는 위로다.

“삶이란 게 타인의 평가에 엉망이 되고, 좌절하고 일어서는 것이다. 그런 흔들림을 지나서 갖게 되는 초연함을 나는 ‘그러라 그래’라고 말한다. 냉소적인 느낌이 아닌 남들의 시선에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간다는 의지의 표현인데, 후배 송은희가 그 말에 힘을 얻었다는 것을 알고 좋았다.”

5장으로 꾸며진 이번 책은 시간과 상관없이 그녀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따뜻한 위로다. 노년 준비부터 치매, 장례 등에 대해 말할 때 갖는 그녀의 여유는 서른에 만난 죽음을 앞둬본 기억일 것이다.

“서른에 암수술을 할 때 의사가 가족에게 3개월 시한부를 말했다는 것을 들었다. 이후 죽고 사는 것도 내 소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파도가 밀려오고 집채보다 큰 해일이 덮치고, 그 후 거짓말 같은 햇살과 고요가 찾아오기도 한다. 내 힘으로 해결하지 못할 때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가 하늘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지금 닥친 코로나라는 초유의 상황으로 무대 앞에 설 수 없어서 노래 대신 글로 위로하기 위해 책을 만들었다.”

책은 일상에서, 혹은 여성시대 사연에서,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느꼈던 부분들을 가볍게 전달하듯이 들려준다. ‘마음이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황혼 재혼을 거절한 여의사, 잠시 귀국한 동창과의 추억담, 반려동물 미미의 이야기까지 편안한 이야기지만 삶에 대한 관조가 묻어나는 글들이다. 

그녀와 콜라보로 많은 감동을 준 작가 아이유는 그래서 “선생님의 목소리로 듣는 그 인생은 너무나 고된데, 희한하게도 지레 겁먹어 도망가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더 씩씩하게 맞서고 싶어진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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