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띄운 ‘코인거래소 9월 폐쇄설’…현실성 따져보니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1.04.2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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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 분노, 부메랑으로 돌아오나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이미지 ⓒ연합뉴스

가상화폐 ‘광풍’이 사그라들지 않는 가운데 정부가 코인거래소 폐쇄라는 ‘특단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가상화폐가 투기와 범죄자금 은닉처로 활용돼 그로 인한 부작용과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란 판단에서다. 하지만 정부의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가 실효성을 거둘 지는 미지수다. 3년 전 가상화폐 열풍 당시에도 뚜렷한 대책을 만들지 못한 채 투자자들의 반발에 속절없이 물러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26일 가상화폐 업계에 따르면, 최근 가상화폐 관련 부정적 발언을 쏟아낸 은성수 금융위원장을 향한 투자자와 관련 기업의 분노가 점차 거세지고 있다. 지난 2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합니다’라는 게시글은 나흘 만에 12만5000명이 넘게 동의하는 등 정부 규제에 대한 반발이 갈수록 커지는 분위기다.  

앞서 은 위원장은 가상화폐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를 예고했다. 지난 22일 국회 국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은 위원장은 “가상화폐는 인정할 수 없는 화폐다.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들까지 정부에서 다 보호할 수는 없다”며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까지 언급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상화폐 부정한 정부, 거래소 폐쇄 줄 잇나

은 위원장 등 정부 주요 당국자의 발언과 별개로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업계는 이미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암호화폐를 ‘가상자산’으로 정의하고 사업자에게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지우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안이 지난달 25일부터 시행되면서다. 개정안에 따라, 가상화폐 거래소는 금융당국이 요구한 조건을 갖춰야만 실질적인 영업이 가능하다. 

또 가상자산 사업자는 오는 9월24일까지 당국에 신고를 마쳐야 하며, 신고하지 않고 영업할 경우 처벌 대상이 된다. 그러나 현재까지 가상자산 사업자를 신고한 거래소는 한 곳도 없다. 개정안에 대한 계도기간이 종료되면 거래소의 90% 이상이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은행을 통해 실명계좌 개설 확인을 거쳐야 하는데 중소 규모의 거래소는 이 문턱조차 넘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만일 정부가 제시한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가상화폐 거래소는 영업 중단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때문에 올 하반기를 기점으로 가상화폐 거래와 관련한 투자자와 관련 기업의 대혼란이 펼쳐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정부 안팎에선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앞서 2018년 1월 가상화폐 광풍이 불던 시절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거래소 폐쇄를 추진했지만 투자자들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그로부터 3년 간 국내에서 가상화폐 거래소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가 투자자들에 대한 재산권 침해라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하고 공공필요에 의해 재산권의 수용, 사용 또는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재산권을 제한할 수 없다는 뜻이다.

26일 오전 서울에 위치한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강남센터 시세 전광판에 비트코인 실시간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오전 서울에 위치한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강남센터 시세 전광판에 비트코인 실시간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분노 폭발한 투자자들…정치권엔 부담

특금법에 근거해 가상화폐 거래소가 폐쇄돼 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경우 “정부가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특금법을 강행하기 위해선 공공복리를 위한 최선의 방안이라는 합리적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단순히 거래소의 자금세탁 방지 목적 등으로 제정된 특금법이 헌법 제소에서 당위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로 인한 투자자들의 피해도 정부에게 큰 부담이다. 현재 정부는 “가상자산 투자자까지 보호하기 어렵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자 투자자 보호는 뒷전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에 부담을 느낀 정치권에서는 가상화폐 열풍을 글로벌 흐름으로 인정하고 시스템 마련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내년부터 적용될 예정인 가상화폐 투자로 발생한 소득에 세금 부과를 유예하자는 제안도 나오는 등 대선을 앞두고 관련 논의 역시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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