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완성車 노사 갈등, 왜?
  • 이창원 시사저널e. 기자 (won23@sisajournal-e.com)
  • 승인 2021.05.20 10:00
  • 호수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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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삼성·한국GM 등 ‘노조 리스크’ 심각…일부에선 ‘충격요법’ 필요성 제기

국내 완성차 기업의 노사 갈등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지만, 경영난 속 노사의 극심한 대치 상황으로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국내 외국계 완성차 기업의 최근 판매량이 지속적인 감소 추이를 보이고 있다. 생산에 차질을 빚으며 생산량도 줄어드는 모습이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여파나 전 세계적인 수급 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등의 영향도 있을 수 있지만 ‘노조 리스크’가 직간접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르노삼성차 노조가 5월4일 전면파업에 돌입하자 회사는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사진은 르노삼성차 부산공장 모습ⓒ연합뉴스
르노삼성차 노조가 5월4일 전면파업에 돌입하자 회사는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사진은 르노삼성차 부산공장 모습ⓒ연합뉴스

경쟁력 하락한 외국계 완성車

이미 시장에서는 외국계 완성차 기업들이 국내 공장을 철수하고, 해외 공장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여론은 이른바 노조의 ‘떼쓰기’, 막대한 세금 지원 등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강한 분위기다. 국내 외국계 완성차 기업은 일자리, 고용 등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노사가 자체적으로 상생의 길을 찾아갈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 1분기 국내 외국계 완성차 3사의 생산량은 12만5964대로 전년 동기 대비 10.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수 판매량 또한 4만3109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8% 감소하며 1998년 이후 가장 적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지난해 임단협(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는 르노삼성차의 지난 4월 내수와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2.6%, 6.8% 감소했다. 올 1~4월 누적 기준 내수와 수출도 각각 40%, 24.3% 줄었다. 8년 만에 적자를 기록한 르노삼성의 지난해 생산량은 11만 대로 전년 대비 이미 31.5% 감소한 상태였다. 매우 심각한 상황이지만, 노사 갈등은 더욱 심화돼 향후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도 매우 낮다.

앞서 르노삼성차 노사는 지난 4월29일 임단협 9차 본교섭에서 기본급·성과급 등 쟁점 사항에 대한 접점을 찾지 못했다. 노조는 기본급 7만1687원 인상, 격려금 700만원 지급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의가 불발되면서 노조와 사측은 각각 전면파업과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다만 사측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근로희망서를 작성한 후 근무할 수 있도록 해 공장 생산라인은 부분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노조는 사측의 조치가 노조의 결속력을 악화시키려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입장이지만, 사측은 지난해 8년 만에 790억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한 상황에서 막대한 손실이 지속되고 있다고 토로한다. 또 지난해 노조의 195시간 파업으로 161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던 만큼, 직장폐쇄·근로희망서 작성 등은 불가피한 선제적 조치라고 강조한다.

 

업계 “정부, 적극적 중재자 역할 고민해야”

현 대치 상황이 지속될 경우 르노삼성차의 생산량은 장·단기적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르노그룹이 XM3(유럽명 아르카나) 부산공장 물량을 다른 국가 공장으로 재배정할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앞서 호세 비센트 드 로스 모조스 르노그룹 부회장은 올해 초 부산공장의 생산 경쟁력을 지적한 바 있고, 도미닉 시뇨라 르노삼성차 사장도 노조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왔다.

한국GM도 올 1분기와 지난달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9%, 25.4% 감소하는 등 경영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 아울러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로 부평2공장, 창원공장은 절반만 가동되고 있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경영난 속에서도 노조는 월 기본급 9만9000원 인상, 통상임금 150% 성과급 등 임금 요구안(1인당 연봉 1000만원 인상)을 확정해 올해 임단협 과정에서도 노사의 정면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사측은 노사관계를 재정립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앞서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은 올해 초 “지속되는 갈등적 노사관계, 단기 사이클의 노사 협상, 불확실성 및 비용 상승, 투자를 저해하는 불확실한 노동정책 등 풀어야 할 과제들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최근 카젬 사장이 출국정지 조치를 받으면서, 임단협 협상은 더욱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한국GM이 2018년 군산공장 폐쇄를 단행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는 생산기지 해외 이전 등 단계적 철수를 결정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완성차 기업의 노사 갈등에 대해 업계·학계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완성차 기업은 물론,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도 전기차 개발·판매에 열을 올리는 등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시점”이라며 “노사가 머리를 맞대도 생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각자의 주장만 고집하는 모습이 지속되면 기업들의 이탈은 불가피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특히 경영 여건이 좋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노조의 요구는 무리한 수준”이라며 “국내 외국계 완성차 기업의 이탈은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여서 정부도 ‘노조 프렌들리’ 입장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른바 ‘충격요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노사 갈등을 정부가 매번 세금 지원을 통해 해결해 주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임단협도 최소 2년 단위 이상으로 변경해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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