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선호씨 아버지 “대통령님, 얼마나 더 죽어야 합니까?”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1.05.14 16:00
  • 호수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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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평택항 사고로 숨진 선호씨의 아버지 이재훈씨
아들 잃은 아버지의 분노, 정치권 향해

“선호야, 아버지 절대 용서하지 말고 가라. 미안하다.”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 부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고로 숨진 23세 대학생 이선호씨의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다. 선호씨는 학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지난해 1월부터 아버지가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하는 현장에 함께 나와 일하다 사고를 당했다.

동식물 검역 관련 일을 맡았던 선호씨는 지난 4월22일 원청 물류업체인 ‘동방’의 지시로 개방형 컨테이너(FRC)의 양쪽 날개를 닫는 현장에 투입됐다. 어떠한 안전교육도, 안전장비도 없었다. 선호씨는 한쪽 컨테이너 날개 아래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이를 보지 못한 지게차 기사가 반대쪽 컨테이너 날개를 닫았다. 그 진동으로 선호씨 쪽 300kg의 컨테이너 날개가 떨어지며 선호씨를 덮쳤다. 사고 당시 현장엔 반드시 있어야 할 안전관리자도, 지게차 신호수도 없었다. 안전수칙이 단 몇 개라도 지켜졌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다.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분명 무리하게 인원을 감축하고 안전규칙 등 각종 법을 무시한 원청업체에 있다. 그러나 5월10일 평택 안중백병원에 마련된 선호씨 빈소에서 만난 아버지 이재훈씨는 국가와 정치권을 향해 상당한 분노를 표했다. “대체 이게 말이나 됩니까? 왜 내 아들이 죽어야 합니까.” 이와 같은 아버지의 분노는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

故 이선호씨(작은 사진)의 아버지 이재훈씨가 5월10일 평택 안중백병원에 마련된 선호씨 빈소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故 이선호씨 유족 제공 

“무른 법이 만든 참사…자기 죽을 법은 안 만드는 정치인들”

선호씨 사고는 발생 일주일이 넘도록 무관심 속에 있었다. 최근에야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자 정치권도 반응했다. 다수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 정부 관계자들이 빈소를 찾았다. 그나마 뒤늦은 관심이라도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이씨의 속은 쓰라렸다. 선호씨 사고에서 국가는 보이지 않았다.

올해 1월 안전조치 부실 등의 사유로 노동자가 숨지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징역 1년 이상, 벌금 10억원 이하의 직접 처벌을 받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내년부터 적용되기에 선호씨 사고엔 적용되지 않는다. 정치권이 더 빠르게 논의하고, 더 빠르게 기업들이 안전수칙을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장치를 마련했다면 우리 아들들이 이런 사고를 당했을까. 게다가 1월 통과된 법 내용조차 정치권의 협상을 거치며 핵심 내용이 빠진 ‘누더기’가 됐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중대재해처벌)법이 왜 누더기가 됐겠습니까. 당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죠. 그 법을 정하는 국회의원, 정치인들이, 자기 형제자매들이 다 그런 기업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것 아닙니까. 기업 눈치만 봐서 그런 것 아닙니까. 최소 징역 3년, 5년부터 하한선 두고, 정확히 회사 사장이 처벌을 받게 하면 아마 하루아침에 본인이 안전관리·감독자를 하려고 할 겁니다. 근데 왜? 법이 물러서 그렇죠. 정치인들이 자기 죽을 법을 안 만드니까 그렇죠. 노동자를 위하는 정치인이 어디 있습니까. 정치판에만 들어가면 다 이상하게 변하지 않습니까.” 아버지 이씨는 말하는 동안 책상을 여러 번 내리쳤다.

지난 5월9일엔 김제남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조문했다. 이씨는 현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고, 세상이 점차 바뀌고 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는 김 수석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요, 정말로 문재인 대통령님 팬이었습니다. 지지했고, 믿었습니다. 뉴스 보니 문재인 정부 출범이 4년이라고 하더라고요. 좀 전해 주십시오. 대통령님, 4년 동안 뭐 하셨습니까? 정부 출범할 때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아침에 출근한 근로자가 저녁에 집으로 못 돌아오는 일, 두 번 다시 만들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비정규직 없는 사회 만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뭐가 달라졌습니까. 도대체 얼마나 더 죽어야 합니까?”

더군다나 사고가 발생한 평택항은 국가기간시설로 해양수산부에 관리·감독 책임이 있다. 정부가 직접적으로도 이번 사고에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거기에 더해 사고 이후 정부의 대처는 더욱 분노를 유발한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평택지방해양수산청은 선호씨 사고 직후 상급기관에 ‘바람에 철제 컨테이너 측면이 접혔다’고 보고했다. 이씨는 “왜 그렇게 보고했냐고 물었더니 회사(원청업체 ‘동방’) 관계자가 말해 준 걸 그대로 보고했다고 하더라. 사람이 죽는 일이 발생했으면 현장에 나와서 한번 확인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 공무원이 이렇다”고 격분했다.

심지어 문성혁 해수부 장관은 선호씨 사고 이후인 지난 4월28일 ‘방역 실태 관련 조치 이행사항 점검’을 위해 평택항을 찾았으나 선호씨 사고에 대해 인지조차 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재훈씨는 “보고를 안 받은 건지 받고도 얘길 안 한 건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죽었는데 장관이 그곳을 방문해 한다는 말이 ‘관리가 잘되고 있다. 관계자 노고에 감사드린다’라니 말이 되나. 밑의 놈이나 위의 놈이나 다 똑같다. 사람이 죽은 곳을 찾아가서 무슨 말장난인가”라고 비난했다. 선호씨 사고에서 국가는 보이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13일 경기도 평택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선호씨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연합뉴스

“진상 규명돼야 아들 보내…피눈물 삼키며 싸울 것”

한편 원청업체 동방은 어느 정도 본인들 책임을 인정하고 있으나 안전관리자 부재, 업무 지시 여부 등 핵심적 내용들에 대해선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동방은 5월12일 뒤늦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인터뷰 당시 이 계획을 미리 전해 들은 이씨는 매우 격분했다. “회사가 계속 제 가슴에 비수를 꽂습니다. 대국민 사과를 할 거라고 하는데 유족한테 먼저 진정한 사과를 해야하는 것 아닙니까?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 아닙니까?”

사고가 발생한 지 23일(5월14일 기준)째, 선호씨 장례는 아직 다 치러지지 못하고 있다. 유족은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선호씨를 보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선호씨가 떠난 이후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은 많이 지쳐 보였다. 이씨는 “그래도 피눈물 삼키며 싸울 것”이라며 목소리에 힘을 줬다. 그러나 아버지의 가슴 한쪽엔 아들에 대한 미안함도 크게 자리했다. 같은 현장에 있었지만 지켜주지 못했다. 진정한 사과와 철저한 진상 규명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죄책감과 고통이 얼마나 클까.

“사고 일주일쯤 지났나, 선호가 매일 같은 자리에서 밥 먹던 구내식당에 갔습니다. 매일 한 손엔 휴대폰을 잡고 뭘 하는지 불러도 쳐다도 안 봐요. 식당 주인이 우리 아들내미 착하다고 냉장고에서 항상 분홍색 캔음료수를 줘요. 그게 내 뇌리에서 안 없어지는 거예요. 분홍색 캔을 선호가 늘 앉던 자리에 올려놓고, 무릎을 꿇고 빌었어요. 선호야, 아버지 절대 용서하지 말고 가라. 미안하다. 돈 벌라고 데려간 게 아니라 돈의 소중함 가르치고 강하게 키우려고 그랬던 건데, 결국엔 내가 널 사지로 몰아넣었구나. 미안하다 선호야.”

한편 문 대통령은 5월13일 선호씨 빈소를 조문했다. 문 대통령은 유족에게 “국가시설 안에서 일어난 사고인데 사전에 안전관리가 부족했을 뿐 아니라 사후 조치들도 미흡한 점들이 많았다”며 “노동자들이 안전에 대한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드렸는데,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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