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만큼 위대한 창업 인사이트는 없다 [이형석의 미러링과 모델링]
  •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KB국민은행 경영자문역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19 12:00
  • 호수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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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버·그루펀·IDNID 등 생활 속 불편 개선하려 창업해 대박

지난 2014년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일본인 나카니시는 외출 중에 대변이 급해졌다. 잘 참지 못하는 체질이라 화장실을 찾다가 그만 ‘실례’를 해 버렸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그는 밖에 나가는 걸 극도로 꺼리게 됐다. 고민 끝에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보고자 결심하고 연구에 몰입한다. 그 결과 만들어진 상품이 바로 대변 알리미 ‘디프리(Dfree)’다.

우버 창업자 트레비스 칼라닉은 2008년 파리에서 열린 IT 컨퍼런스에 참석했다가 우버 창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EPA 연합
우버 창업자 트레비스 칼라닉은 2008년 파리에서 열린 IT 컨퍼런스에 참석했다가 우버 창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EPA 연합

대변 알리미 ‘디프리(Dfree)’의 탄생 비화

디프리는 배에 붙이고 있으면 초음파 센서가 장을 관찰한다. 그리고 대변이 나오기 10분 전에 연동된 스마트폰을 통해 알람을 보낸다. 나카니시는 처음에 자신을 위해 만들었으나 막상 만들어 놓고 보니 의외로 필요한 사람이 많았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 치매 노인 등.

그래서 본격적으로 상품화에 도전한다. 일본 요양시설 세 곳에서 임상시험을 해 본 결과 치매환자와 간호사 모두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치매환자는 자존감을 지킬 수 있었고, 간호사는 업무 부담을 현저하게 줄이면서 위생적으로 처리할 수 있어서였다. 서로가 힘들어했던 문제를 디프리가 해결해 줌으로써 병원 환경도 한결 밝아졌다. 

2007년 뉴욕에서 창업한 ‘IDNID(I Do Now I Don’t)’는 소유하고 있는 보석, 주로 다이아몬드 약혼반지나 신부 들러리 드레스 등을 고정 가격이나 경매를 통해 판매하는 전자상거래 기업이다. 창업자 조슈아 오페르만(Joshua Opperman)은 약혼 3개월 만에 파혼한 후 약혼반지를 샀던 보석상에 되팔려고 갔다가 3분의 1 가격을 제시하는 것에 실망하게 된다.

조슈아는 소매상을 거치지 않고 직거래를 하면 상품의 가치가 유지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여동생과 함께 창업하게 된다. 때마침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경기가 침체되고, 이로 인해 공유경제가 태동하는 시기여서 중고를 팔거나 공유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사세가 급성장했다. 이 사이트는 매년 170만 개에 달하는 약혼 및 결혼예물이 거래되고 있고, 그 금액만도 42억 달러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사회문제에 기반해 창업 인사이트를 얻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언급한 사례처럼 자신의 불편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창업한 사례들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미국의 차량공유 서비스 ‘우버(Uber)’의 창업가 트레비스 칼라닉이 대표적이다. 그는 2008년 친구와 함께 파리에서 열린 IT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이곳에서 택시를 잡기 위해 30여 분을 기다리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콜택시처럼 전화로 부른 후에 기다리게 할 게 아니라 앱(App) 클릭 한 번으로 택시를 호출하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소셜커머스의 효시인 ‘그루폰(Grou-pon)’의 아이디어도 공동 창업자인 앤드루 메이슨(Andrew Mason)의 구매 경험에서 나왔다. 휴대폰을 샀다가 취소하려 했지만 거부당한 후 ‘더포인트(The Point)’라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론칭했다. 더포인트를 피봇한 비즈니스 모델이 그루폰이다. 처음 시도한 방법은 그의 아내와 친구들이 사던 지갑이 턱없이 비싸다고 판단하고, 20명이 함께 살 테니 할인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그루폰이 그룹(group)과 쿠폰(coupon)의 합성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른바 공동구매의 시작이었다.

평판 방어 플랫폼 ‘레퓨테이션 디펜더(Reputation Defender)’는 기업이나 개인의 평판을 관리해 주는 전문기업이다. 잘못된 기사나 위험한 정보를 사전에 서치해 수정을 요구하거나 삭제하는 일을 한다. 이 아이디어는 켄터키주 연방판사로 재직하던 마이클 페르틱(Michael Fertik)의 경험에서 시작됐다. 그는 법원에서 일하는 동안 온라인에 떠도는 개인정보를 제때 보호하지 못해 발생한 여러 문제를 접하게 된다.

마이스페이스(MySpace)나 페이스북(Facebook)과 같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소개한 개인정보가 무작위로 유포되고 도용되면서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은 점에 착안했다. 특히 어린이들의 피해가 커서 창업 초기에는 부모가 자녀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가 대상을 점차 확장해 오늘에 이른다.

영화 《비밀캠프》로 데뷔한 후 《굿바이 초콜릿(Meet Bill)》 등으로 유명해진 여배우 제시카 알바(Jessica Marie Alba)도 ‘불편러 창업가’다. 2008년 출산한 첫아이가 유아용 세탁세제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충격을 받고, 화학물질이 없는 저자극성 제품을 직접 만들기로 결심한다. 이러한 뜻에 동조한 한국계 미국인 브라이언 리, 환경운동가 크리스토퍼 개비건과 함께 ‘어니스트컴퍼니’를 공동 창업했다. 이 회사는 윤리적 소비를 기치로 친환경 유아 및 가정용 소비재를 판매하는 업체로 나스닥에 상장될 예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해 성공했거나 도전하는 사례는 많다.  ‘보그앤보야지’ 오아름 대표는 다니던 직장에서 해외영업을 하면서 여러 나라에 출장 다니며 상황에 따라 다양한 크기의 가방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대체로 출국 때보다 귀국할 때 짐이 더 늘어나는 경우가 많아 3단으로 사이즈 변형이 가능한 여행가방을 개발해 인기리에 판매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관련 스타트업 잇달아 등장

‘오토하우머치’의 강지훈 대표도 자신의 경험으로 스타트업에 도전했다. 리스 자동차를 사용하다가 해지하려 했으나 위약금이 1500만원이나 됐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리스차를 개인 간 거래로 해결하려는 플랫폼으로 투자자를 찾고 있다.

폐원단을 활용한 의류와 교구를 개발해 사회적기업에 도전하고 있는 양슬기 ‘플러비뉴’ 대표도 어머니의 일을 돕다가 아이디어를 얻었다. 봉제업을 하는 어머니는 늘 버려지는 폐원단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마침 코로나19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폐원단을 재료로 교구를 만들면 유아에게 안전하고 환경교육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이 적중해 그는 환경분야 사회적기업 육성사업 대상자로 선정됐다.

이렇듯 경험을 단계적 아이데이션을 거쳐 창업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는 의외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경험학습 이론을 최초로 모형화한 학자인 콜브(Kolb, D. A.)는 경험학습 과정을 네 단계로 설명한다. 구체적 경험→내성적 관찰→추상적 개념화→능동적 실험 등의 과정을 거쳐 실용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칫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경험이지만 그 경험에서 인사이트를 얻어 개념화하고, 이를 토대로 창업에 도전하면 남보다 빠른 성공의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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