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청약 부어도 탈락인데 공무원은…” 박탈감 안기는 ‘특공’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5.2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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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평원 ‘유령청사’ 이어 곳곳서 제도 허점
악용 사례 늘면서 전면 재검토 필요성 제기
세종시내 아파트 모습 ⓒ 연합뉴스
세종시내 아파트 모습 ⓒ 연합뉴스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을 대상으로 한 세종시 아파트 특별공급(특공)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관세평가분류원(관평원)의 '유령 청사'에 이어 한국전력과 세종시 교육청 등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나며 당초 취지가 변색했다는 비판이다. 세종시 이주를 장려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로또 특공'으로 투기를 조장한다며 제도 폐지 또는 전면 손질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정부는 관련 정책을 재검토 한 뒤 미비점을 보완하고, 꼼수로 특공 아파트를 분양받은 경우 시세차익을 환수할 수 있는지 법적 검토에 착수했다. 

 

커지는 ‘특별공급’ 폐지 목소리

특공 논란이 뜨거워진 건 관세청 산하 관평원의 세종시 유령 청사 존재가 알려지면서다. 세종시 이전 대상이 아니었던 관평원은 171억원의 예산을 따내 무리하게 건물을 올렸고, 결국 이전이 불발되면서 현재 먼지만 수북하게 쌓인 채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관평원은 2018년 2월 행정안전부에 청사 건축을 위한 고시 개정 변경을 요구했지만, 행안부는 이전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통보한 뒤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관평원 세종 관사 신축은 강행됐다. 그 사이 전체 직원 82명 중 49명이 특공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았고,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뒀다. 이 때문에 관평원 직원들이 세종시 특공을 노리고 청사 건축에 제동을 걸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관평원과 상급기관인 관세청은 물론 예산을 승인했던 기획재정부와 세종 청사 관련 사항을 총괄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의 허술한 행정 시스템 역시 도마에 올랐다. 기재부나 행복청에서 유령 청사 건립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번 있었지만 어디에서도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혈세 171억원을 들여 지은 뒤 '유령 청사'가 된 세종시 관세평가분류원 청사 안내판에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5월18일 김부겸 국무총리는 유령 청사가 건축된 경위와 직원들의 특별공급 혜택 등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 연합뉴스
혈세 171억원을 들여 지은 뒤 '유령 청사'가 된 세종시 관세평가분류원 청사 안내판에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5월18일 김부겸 국무총리는 유령 청사가 건축된 경위와 직원들의 특별공급 혜택 등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 연합뉴스

문제는 관평원 뿐만이 아니었다. 새만금개발청과 해경청은 청사가 세종으로 이전했다가 다시 각각 다른 곳으로 이전했지만, 특공으로 아파트를 받은 직원들은 시세차익을 노려 이를 즉시 처분하지 않았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전이 예정된 부처 및 공공기관을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도 곱지 않다. 특히 대전에서 세종으로, 세종 구도심에서 신도심으로 이전하는 경우까지 특공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는 8월까지 세종으로 이전하는 중소벤처기업부를 비롯해 국민건강보험공단 대전본부, 국민연금공단 대전본부, 한국전력공사 중부건설본부 등은 기존 청사와 세종 신청사가 차로 불과 20~30분 안팎의 거리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5년간 특공 자격이 주어지는 등 수도권 지역에서 이전하는 곳과 동등한 혜택이 부여된다. 대전으로 세종으로 옮기는 기관에까지 특공 혜택을 줄 경우, '수도권 기능 분산'이라는 당초 취지와 어긋날 뿐더러 충청권 불균형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세종시 주민 커뮤니티에도 특공이 당초 취지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며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시민은 "20년 간 청약예금을 부어도 내 집 마련은 하늘의 별따기인데, 특공으로 쉽게 집을 받는 공무원들을 보니 박탈감이 든다"며 "부작용이 큰 만큼 폐지하거나 재검토를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5월18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부겸 국무총리가 5월18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칼 빼들었지만…실효성은 미지수

2010년 도입된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 특공 제도는 신규 분양 아파트의 절반을 공무원과 이전기관 종사자들에게 우선 공급하는 제도다. 아파트 입주 때 부과되는 취득세도 감면받는 등 세종시 조기 정착을 장려하기 위한 차원에서 마련됐다.

10년간 세종에 공급된 아파트 9만6746가구 가운데 2만5636가구(26.4%)가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에게 배당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실거주를 하지 않고 특공으로 분양받은 아파트를 전매금지 기간에 매각해 버리거나, 세를 놓는 사례 등이 적발되면서 관리감독이 부실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실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세종시에 공급된 아파트 6만여 가구 가운데 특공을 받은 뒤 내다 판 아파트는 2085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55명은 전매 금지 기간에 불법으로 아파트를 매각해 시세차익을 거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최근 세종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있어 특공 관련 정비에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이전기관 종사자들에게 로또나 다름없는 특공 혜택이 주어지면서 형평성에 문제가 있고 제도 도입 10년이 지난만큼 현 시점에 맞는 기준으로 재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정부는 김부겸 국무총리의 지시로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국무조정실은 20일 관평원 유령 청사와 관련한 첫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국조실은 각종 자료를 분석하고 관련 직원들을 조사한 뒤 수사의뢰 등 법적 조치와 함께 특공 취소 가능 여부 등에 대한 검토도 진행할 방침이다. 

김 총리는 YTN 《뉴스Q》와의 인터뷰에서 특공 논란에 대해 "제도상 허점과 미비점이 분명히 있었다"며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별공급제를 수도권이 있는 공기업 본사가 이전해야만 적용한다거나 공무원들이 장기적으로 집을 한 채 넘게 갖지 못하도록 서약을 받는 등의 조치를 준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특공으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내는 경우 이를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상당한 법적 다툼이 예상돼 섣불리 큰소리를 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다소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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