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사회적 ‘공포팔이’의 진상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1.05.25 11:4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포의 문화》ㅣ배리 글래스너 지음ㅣ윤영삼 옮김ㅣ라이스메이커 펴냄ㅣ512쪽ㅣ1만8000원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사장의 신년인사 때 ‘올해는 특별히 위기의 해’라는 말이 빠진 적이 없다는 것을. 뻔한 말이지만 빠지지 않는 이유는 그게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위기의 강조가 결과적으로 파산의 공포, 감원의 공포, 해고의 공포로 이어지면서 사원들의 적당한 긴장과 분발, 상호경쟁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필요할 때 해고의 명분이 돼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공포는 사람의 이성을 흐리게 하고, 격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은 선동에 쉽게 이용 당한다. 독일 나치 선전장관 파울 요세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는 ‘공포팔이 대중선동’의 대명사다. 어둠이 깔리는 해질녘에 고주파 스피커의 날 선 음향을 이용한 선동으로 대중의 공포심을 극대화시켰던 그는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때 흉흉한 민심을 통제하기 위해 일본제국주의 정부가 이 전략을 이용했다.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들이 혁명을 기도하며 우물에 독을 풀고 있다’는 가짜 뉴스(유언비어)를 퍼뜨려 공포와 증오를 조장함으로써 대학살을 유도했다.

또 괴벨스는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99% 거짓과 1% 진실의 배합이 100% 거짓보다 효과적”이라고도 했다. 이 전략은 2021년 현재 ‘공포팔이 미디어와 권력자’들이 한 치 오차 없는 이중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공포팔이는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악당을 만든 후 그 악당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막대한 돈을 쏟아 붓게 하는 것이 일반적 패턴이다. 그 돈의 최종 종착지는 공포를 조장하는 자들의 호주머니다. 청소년 범죄, 암, 특정 직업인의 성폭력 등에 대한 왜곡된 인식으로 창조된 ‘악당’의 예는 수없이 많고, 이로 인해 조성된 공포로 인해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과 대가 역시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2006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아동 성범죄와 관련된 왜곡된 공포로 ‘제시카법’이 통과됐다. 2년 후 캘리포니아는 420억 달러의 재정적자에 휘청이는 와중에 이 법에 기대 연간 100만 달러를 부수입으로 챙겨가는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들이 수두룩했다. 손해보험사의 홍보물은 ‘매년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유괴되는 아동이 58,000명이나 된다’는 사법부 연구결과를 인용해 부모들의 공포를 조장한다. 보험사는 그들 중 진짜 유괴는 115명뿐이라는 사실은 숨긴다. ‘특정 코로나 백신의 부작용이 2명 생겼다’고만 하지 ‘10만 명 중 2명’이라는 것은 숨겨 백신공포를 조장하듯이.

지나친 공포심은 막대한 사회적 대처 비용을 넘어 진짜 중대한 문제를 놓치게 한다. 극심한 불평등과 빈곤이 아동학대, 강력범죄, 마약범죄, 무장조직 등으로 번지는 것을 방치하게 한다. 미국에서 개인의 총기 소유로 인해 연간 수만 명이 목숨을 잃지만 유력자나 언론은 “문제는 총이 아니라 살인자, 총은 아무 죄가 없다”고 강변하게 한다.

뉴스는 공포를 만들기도 하고, 막기도 하면서 공포심을 먹고 자란다. 어떤 범죄사건이 하나 발생하면 뉴스 앵커는 “오늘밤 《데이트라인》을 절대 놓치지 마세요. 당신이 바로 다음 희생자일지도 모릅니다”라고 프로그램을 선전한다. 그러나 결국 화성인은 지구를 침공하지 않았고, 지구 종말도 오지 않았다. ‘공포팔이’로 돈벌이를 하거나 권력을 갖고 싶다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