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당의 미래, 국가의 미래
  •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04 17:00
  • 호수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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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학생단체의 초청으로 뮌헨대학에서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제목의 강연을 한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판단 둘 다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이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이 세상에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도 불가능한 것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하지 못했을 거라는 말은 전적으로 옳고 모든 역사적 경험에 의해 증명된 사실이다”고 강조했다.

정치는 지도자가 대중과 소통하며 만드는 예술이다. 베버의 말대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정치가 필수적 요소라면, 정치인이 모인 정당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세계의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치인뿐 아니라 정당의 신뢰도가 급락하고 있다. 선거제도가 엘리트 지배에 의해 민주적 성격을 잃었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정부의 보조금에 의존하는 생계형 정치인들이 당권과 공천에만 몰두하는 정당은 민주주의에 해악이 될 뿐이다. 정치인의 가족이 정부 지원금을 교묘하게 빼먹는 수법은 범죄집단과 다를 바 없다.

어떤 비평가는 수십 년 이내에 정당은 공룡처럼 사멸할 것이라 예측한다. 정당 대신 국회 바깥의 신사회운동이 더 신뢰를 얻고, 인터넷을 이용한 포퓰리즘 정치인이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유권자의 요구에 반응하고, 책임성 있는, 효율적인 정당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작동할 수 없다. 정당이 유권자의 지지를 받고 국가를 이끌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정치 이념, 선거 전략, 정책 공약이 필수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로 선출된 송영길 후보와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 최고위원 당선자들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위쪽 사진). 아래는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들이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1차 전당대회 후보자 비전발표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로 선출된 송영길 후보와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 최고위원 당선자들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위쪽 사진). 아래는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들이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1차 전당대회 후보자 비전발표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정당은 무엇보다도 체계적인 정치 이념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이념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많지만, 일관성 있는 이념이 없다면 다양한 사람이 모인 정당이 제대로 운영되기 어렵다. 인맥에 따른 폐쇄적 파벌이 정당을 장악하기 쉽다. 당헌에 정당의 근본적 가치와 정치 이념을 세부적으로 밝히고, 이를 토대로 당원 교육과 정치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정당의 선거 전략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역대 대선처럼 후보 캠프나 측근이 좌우하는 전략이 아니라 중앙당이 선거를 지휘하는 현대적 조직으로 변해야 한다. 정당은 전략 기획, 미디어 센터, 싱크탱크를 지휘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전화 여론조사와 여론조사 전문가에 의존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포커스 그룹 인터뷰, 패널 데이터 조사와 함께 정보분석 전문가(CIO)가 이끄는 빅데이터 조사를 통해 파편화되는 다양한 유권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역별·계층별·연령별 메시지와 마이크로 타기팅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선거 시기에 정책 공약을 생산하는 정당의 역할도 중요하다. 집권 후 국정을 운영할 구체적인 정책 공약을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중앙당 싱크탱크 역할을 강화하고 이념에 따른 선거 공약을 세심하게 준비해야 한다. 대선 캠프와 자문 교수단에 의존한 급조된 공약이 아니라 중앙당에서 수년 전부터 검증된 플랜을 제시해야 한다. 레이건 대통령에게 헤리티지재단이 전달한 ‘리더십을 위한 과제’와 오바마 대통령을 위한 브루킹스 연구소의 ‘해밀턴 프로젝트’에서 볼 수 있듯이 집권 플랜은 일관성이 있는 개혁에 필수적이다.

국가를 이끌 선거 공약을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책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정치인에게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집권 플랜을 만들기 위해서는 학자와 전문가의 역할도 중요하다. 최근 심각한 불평등 심화, 청년 실업, 부동산 폭등에서 볼 수 있듯이 세밀한 집권 플랜이 없다면 무능한 정부가 될 수밖에 없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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