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진의 시론] 이런 판결은 잘못된 것일까?
  • 송혜진 숙명여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09 17:00
  • 호수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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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흠’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조선시대 단어다. ‘공금이나 관청의 물건을 사사로이 써서 생긴 결손’이라는 뜻으로, 공공 재정의 파행적 운영과 이로 인해 피폐해진 민생과 연결돼 쓰인 예가 많다. 관리들이 조세 등 공금을 재량껏 ‘결손’으로 처리한 후, 이를 이리저리 빼돌려 사욕을 챙기거나, 살길이 막막해 관청에서 ‘포흠 빚’을 얻어쓴 백성들이 더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되는 부조리한 얘기들이 모두 이 단어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옛 신문기사를 검색하다가 ‘포흠’과 관련된 음악 일화가 있어 얘기에 집중해봤다. 1938년 지방의 향토문화를 찾아 취재에 나섰던 이상춘이라는 분이 쓴 기사다.

19세기 말엽, 전남 무안에 살던 지방 관리 박지우와 한량 변재문이라는 이가 음악 잘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모두 가야금과 단소, 양금, 피리 등의 기악 연주와 노래에 뛰어났다. 특히 담백한 창법으로 부르는 박지우의 노래와 변재문의 애조 띤 창법은 직업 음악가들까지 감동시킬 정도였다. 여행자가 무안을 찾았을 때는 이미 두 사람 모두 세상을 뜬 지 30년이나 지난 후였지만, 지역 사람들 중 그들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마을을 찾아온 이에게 이들의  음악 일화를 들려주려 앞을 다퉜다. 그중 하나가 무안 공무원 박지우의 얘기다.

어느 날 박지우가 ‘포흠 3000냥’ 죄로 고발됐다. 법적으로 최고 사형이 선고될 수도 있는 중죄였다. 박지우가 조사관이 있는 흥덕으로 이송되던 중 나주를 지나게 되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읍내의 기생과 한량, 광대들이 술과 안주를 가져와 전송을 했다. 죄인 호송 중에 이별주 자리라니. 이런 일이 허용됐다는 게 좀 미심쩍지만, 어쨌든 이들은 이별의 술을 나눴고, 그 자리에 모였던 이들이 ‘옥중 비용’에 보태 쓰라며 즉석 모금을 했다. 한량들이 활과 화살을 전당 잡혀 마련한 돈, 기생들이 패물을 끌러 마련한 돈, 광대들이 주머니째 내놓은 돈이 2000냥쯤 됐다. 이들과 작별한 후 박지우는 흥덕 옥중에 수감됐다.

어느 날 밤, 박지우는 소슬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쓸쓸한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1장, 2장, 3장, 4장…. 계속되는 노랫소리가 바람을 타고 흥덕 수령에게까지 날아갔다. 감동적인 노래 솜씨에 반한 수령은 이내 갈등에 빠졌다. ‘저이가 노래 잘 부른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도 잘 부른단 말인가? 내가 오늘밤 비로소 고풍스러운 옛 곡조를 들었다. 저런 명곡을 옥중에 가둬두기는 참 아까운 일 아닌가?’ 포흠 죄를 물어야 할 수사 테이블에서 고심하던 흥덕 수령은 마침내 그의 죄를 덮고 풀어줬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무안 사람들은 음악 잘하던 지방 공무원 박지우, 무직이었던 한량 변재문의 일화를 통해 ‘노래고을(가향·歌鄕) 무안’을 드러내는 데 관심을 두었을 뿐, 흥덕 수령의 판결에 대해서는 칭찬도, 원망도 덧붙이지 않았다. 물론 수령의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실화였는지는 좀 더 확인해 봐야겠지만, 무안 사람들이 이 사건을 ‘공금 유용한 공무원’을 봐준 무책임한 수령이나 자신의 재량권을 ‘예술적’으로 활용한 풍류 공직자에 관심을 두는 대신, 사지에서 살아 돌아온 무안 예술가의 빼어난 실력 얘기로 정리한 점이 흥미롭다.

오늘. 감동 결핍 시대를 살고 있는 까닭일까? 내 식대로 결말을 덧붙여 그려본다. 흥덕 수령은 박지우의 음악 친구들이 마련해준 2000냥에 사비 1000냥을 익명으로 보태 ‘포흠 3000냥’을 갚게 해주고 인근 주민들이 사랑한 예술가를 그들 품으로 돌려보냈다더라. 풀려난 박지우의 노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더라. 이런 결말 말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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