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때리는 그녀들》, 진정성이 통했다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14 17:00
  • 호수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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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 없는 드라마 선보이며 시청률 고공행진

최근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지상파에서 여성 축구를 소재로 한 예능이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이다. 여성 축구 자체가 비인기 종목인데, 그걸 일류 선수도 아닌 여성 연예인들이 했을 때 과연 흥미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종목을 떠나 여성이 하는 스포츠 예능 자체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은 달랐다. 올 초 설 연휴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편성됐는데 놀랍게도 전국 가구 시청률 1회 8.4%, 2회 10.2%라는 성적을 올렸다. 요즘 시청률 두 자릿수 돌파는 매우 보기 드문 성과다. 파일럿의 대박은 자연스럽게 정규편성으로 이어졌는데, 6월말에야 정식으로 출범했다. 이 부분도 특이하다.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하는 법인데, 프로그램 성공으로 한창 화제성이 커진 시점을 다 놓치고 뒤늦게 정규편성된 것이다. 

정규편성될 때도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했다. 파일럿 방영 당시는 희귀한 볼거리였기 때문에 신선했고, 명절 연휴라는 특수성이 맞물려 성공했을 뿐이라며 여성 축구 예능의 흥행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저 JTBC 《뭉쳐야 찬다》의 아류작 정도로 평가됐고, 시청률도 정규 첫 방송이 2.6%에 불과해 대중의 시선이 파일럿 때와는 달라졌음을 실감케 했다. 

하지만 바로 상승세를 탔고 3주 연속 뉴스를 제외한 동 시간대 프로그램 시청률 1위, 지상파 수요 예능 1위에 등극하면서 7.5% 선까지 치고 올라갔다. 별로 기대하지 않던 시청자들까지 몰입시킨 강력한 힘이 프로그램에 있었던 것이다.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골 때리는 그녀들》 예능 캡처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골 때리는 그녀들》 예능 캡처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골 때리는 그녀들》 예능 캡처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골 때리는 그녀들》 예능 캡처

각본 없는 드라마 

앞에서 이 작품이 파일럿 종영 직후에 시작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냈다고 했는데, 사실은 그게 성공의 원동력이 됐다. 시간을 그냥 보낸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알차게 보강했다. 파일럿 당시엔 여성 축구팀 4팀이 각축을 벌였다. 정규편성 땐 6팀으로 확장해 프로그램 내용을 훨씬 풍부하게 만들었다. 

파일럿 당시 우승팀인 FC 불나방을 비롯해 국가대표 출신이거나 그 가족들로 구성된 FC 국대패밀리, 희극인들의 FC 개벤져스, 모델로 구성된 FC 구척장신이 기존팀인데, 여기에 주한 외국인들로 구성된 FC 월드클라쓰와 운동신경이 뛰어난 여배우들로 구성된 FC 액셔니스타가 새롭게 가세한 것이다. 거기에 기존 팀에도 신규 선수들을 수혈해 업그레이드했다. 

이 프로그램 멤버들이 가장 알차게 시간을 보낸 것은 바로 훈련이었다. 단순히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 축구리그를 준비하는 선수들처럼 몸을 끌어올렸다. 황선홍(개벤져스), 이천수(불나방), 김병지(국대패밀리), 최용수(구척장신), 최진철(구척장신→월드클라쓰), 이영표(액셔니스타) 등 축구스타들이 감독으로 가세해 축구 기술을 전수했다. 

이에 본방송이 시작됐을 때 시청자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새로운 모습들이 나타났다. 파일럿 때의 수준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시청하지 않았던 시청자들이 입소문을 내며 다시 모일 정도로 선수들은 괄목상대했다. 

특히 모델들로 구성된 FC 구척장신팀의 변화가 눈부셨다. 파일럿 때는 힘을 쓰지 못했는데 정규편성 땐 FC 국대패밀리에 밀리지 않는 저력을 과시했다. FC 국대패밀리는 국가대표 및 그 가족들로 구성된 팀이어서 운동능력이 상당했는데도 모델팀이 밀리지 않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모델은 평소 다이어트를 많이 하기에 힘이 약할 거라고 여겨지는데 《골때녀》가 그 선입견을 깼다. 이렇게 의외의 모습이 나타나니 신선함이 살아났다. 

승부도 흥미진진했다. FC 구척장신에 밀리던 FC 국대패밀리가 종료 직전에 거짓말처럼 동점 골을 넣고, 승부차기까지 가서 마침내 승리했을 때 그야말로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프로그램 PD는 “드라마를 쓰라고 해도 이렇게 못 쓸 것 같다”고 했다. 마지막 승부차기 때 순간시청률이 9.5%까지 치솟았다. 

정식 축구장이 아니라 작은 풋살 경기장을 쓰기 때문에 박진감도 살아났다. 만약 정식 축구장이었으면 아무리 훈련을 열심히 했어도 여성 연예인들이 강렬한 경기를 전개하는 데 체력적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작은 경기장에서 의외로 박진감 넘치는 경기와 더불어 각본 없는 드라마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데다 승부의 순간순간 감동까지 더해지니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골 때리는 그녀들》 예능 캡처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골 때리는 그녀들》 예능 캡처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골 때리는 그녀들》 예능 캡처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의 한 장면ⓒ《골 때리는 그녀들》 예능 캡처

진심의 승리 

이 프로그램은 무엇보다 시청자에게 진정성을 느끼게 했다. 만약 연예인들이 재미 위주로 대충 경기를 했으면 본편성 1회 시청률 2%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앞에서 출연자들을 ‘선수’라고 표현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들은 예능에 출연한 연예인이 아니라 정말 축구에 열정을 다하는 선수처럼 경기에 임했다. 그게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모델팀인 FC 구척장신의 변화가 그런 열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이어트로 몸매 관리에 열중하던 모델들이 축구 기량을 높인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이들은 그걸 해냈다. 이들의 몸놀림이 이들이 평소에 얼마나 열정적으로 훈련했는지를 웅변했다. 경기할 때의 표정도 이들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다른 팀 선수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모두가 진심이었고, 그러다 보니 눈물도 자주 터졌다. 여성 예능에 대해 몸을 사린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골때녀》의 선수들은 집념과 투혼으로 그런 선입견을 불식시켰다. 이천수는 “0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엄청 진지하다. 정말 축구를 못 하는데 진지하고 프로 같다. 프로페셔널해서 너무 멋있다”고 했다. 

훈련하러 가다가 훈련장 대관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터뜨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연예인들이 축구에 몰입했고, 그 땀의 흔적이 프로그램 속에 여실히 나타나니 시청자가 빠져든 것이다. 그리고 한 명 한 명이 성장하는 모습에 시청자도 함께 감동한다. 

다만 잦은 방송 끊기가 옥에 티다. 중요한 골 장면에 너무 많이 끊으면서 반복 재생을 이어가니 시청자의 몰입이 깨진다. 스포츠의 특성을 간과하고 너무 예능의 작법을 고수한 데서 발생한 문제다. 이런 소소한 문제는 있지만 어쨌든 희귀하게 등장한 여성 스포츠 인기 예능으로서 그 의미는 상당하다. 이 선수들이 펼치는 ‘피, 땀, 눈물’ 열정 리그에 당분간 시청자의 관심이 모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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