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 작업 지지부진한 롯데·한화·CJ家의 ‘동상이몽’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1.07.13 10:00
  • 호수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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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구도 밑그림 그렸지만 지분 승계는 ‘안갯속’
후계자 정통성 확보와 이미지 개선도 숙제

재계 총수들의 나이가 젊어지고 있다. 삼성과 LG, 현대차, 효성 등 주요 그룹의 세대교체가 최근 가속화되면서 4050 총수들이 잇달아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올해로 30대인 1980년대생이 재계의 ‘新리더그룹’으로 주목받고 있다. 롯데와 한화, CJ, LS, 현대중공업 등의 후계자들이 경영수업을 받고 경영 전면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지분 증여나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핵심 계열사 지분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로 떠오르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자녀인 선호씨(CJ제일제당 부장)와 경후씨(CJ ENM 부사장)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CJ그룹의 자산은 34조6760억원, 매출은 24조320억원을 기록했다. 재계 순위는 13위로, 지주회사인 CJ(주)가 주요 계열사인 CJ제일제당과 CJ ENM, CJ대한통운 등을 거느리고 있다. 선호·경후 남매가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서는 이 지주회사 지분율을 높여야 한다.

CJ그룹의 유력 후계자로 꼽히는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사진)의 지분 승계 방식을 두고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시사저널 포토·뉴시스

2세 승계에 CJ올리브영의 막후 역할 주목

CJ그룹의 고민도 여기서 시작된다. CJ(주)의 최대주주는 이재현 회장(42.1%)이다. 선호씨와 경후씨는 각각 2.75%와 1.19%의 지분만을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CJ가(家) 승계를 둘러싼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무엇보다 이 회장은 2014년부터 그룹 내 계열사의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았다. 현재는 회장직만 유지하고 있고, 실질적 경영은 외삼촌인 손경식 회장이 하고 있다. 그만큼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타 그룹보다 빠르게 승계구도를 완성해야 하는데, 현실은 만만치 않다.

CJ그룹은 그동안 신형 우선주(CJ4우)를 적극 활용해왔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보통주 전환이 가능한 데다, 가격도 시세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2019년 말 자신이 보유한 신형 우선주를 각각 92만668주씩 두 자녀에게 증여했다. 한 명당 602억원씩 총 1204억원 규모였다. 2029년 이 신형 우선주가 보통주로 전환되면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룹 안팎에서는 CJ올리브영의 역할에도 주목하고 있다. CJ올리브영은 현재 국내 헬스앤뷰티(H&B) 시장 점유율 50%대인 압도적 1위 사업자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지난해 매출은 1조8739억원, 영업이익은 1001억원을 기록했다. 최대주주는 CJ(주)(55.24%)지만, 선호씨와 경후씨도 각각 17.97%와 6.9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CJ올리브영 매각설이 그동안 적지 않게 나왔다. 회사를 매각해 승계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CJ그룹은 ‘기업공개(IPO)’라는 정공법을 택했다. CJ그룹은 2022년까지 CJ올리브영을 상장할 계획이다. 지난해 프리 IPO 당시 CJ올리브영의 기업 가치는 1조8361억원으로 평가됐다. 선호·경후 남매는 상장된 회사 지분을 활용해 지주회사 지분 매입을 위한 총알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남매가 사실상 거느리고 있는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이하 타임와이즈)에도 CJ 계열사의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CJ제일제당 405억원, CJ ENM 280억원, CJ올리브영 50억원, CJ올리브네트웍스 40억원 등 지금까지 투자한 돈만 800억원이 넘는다. 타임와이즈는 이렇게 모인 돈으로 펀드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타임와이즈는 씨앤아이레저산업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씨앤아이레저산업의 지분 대부분을 이선호 부장(51%)과 이경후 부사장(24%)이 보유한 만큼, 타임와이즈 역시 오너 2세들의 ‘백기사’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일각에서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거론되는 회사들이 대부분 일감 몰아주기나 편법적인 지분 승계 의혹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오너 2세들이 이들 회사를 통해 승계구도를 완성해도 정통성이나 공정성 논란이 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 회장은 2019년 말 신형 우선주를 증여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이듬해 4월 돌연 증여를 취소하고 재증여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회사 주가가 급락하면서 증여 가액 역시 크게 감소했다. 그러자 이 회장은 세금을 줄이기 위해 증여 시점을 변경하면서 세인들의 눈총을 받았다. 당시 증여 번복으로 줄인 세금만 수백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력 후계자인 선호씨의 이미지 개선도 시급하다. 선호씨는 2019년 9월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는 과정에서 변종 대마를 밀반입하다 적발돼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지난해 2월 열린 항소심에서도 선호씨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이후 CJ제일제당 글로벌비즈니스 담당 부장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하지만 세간의 시선이 여전히 곱지 않다는 점이 부담이 되고 있다.

삼형제가 모두 1980년대생인 한화가(家)도 상황이 만만치 않다. 김승연 회장이 지난 3월 경영에 공식 복귀하면서 승계 작업 역시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3남인 김동선 상무가 최근 한화에너지에서 한화호텔앤드리조트로 소속을 옮기면서 핵심 계열사인 태양광과 화학, 방산, 우주사업은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이, 금융 계열사는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전무가, 레저 및 건설사업은 삼남인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가 책임지는 밑그림이 그려진 것이다.

하지만 지분 승계 과정은 순탄치 않다. 한화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은 (주)한화로, 최대주주는 김승연 회장(22.7%)이다. 세 아들의 지분율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김동관 사장이 4.4%, 김동원 전무와 김동선 상무가 각각 1.7%의 지분만을 보유하고 있다. 김승연 회장이 아직 활발한 경영활동을 하고 있지만, 향후 있을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는 동관·동원·동선 형제의 지주회사 지분 확보가 관건이 되고 있다.

ⓒ연합뉴스·뉴스뱅크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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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종합화학 상장 철회가 승계에 미칠 영향은?

CJ그룹과 마찬가지로 재계에서는 오너 2세들의 개인회사인 에이치솔루션(옛 한화S&C)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에이치솔루션은 시스템통합(SI) 및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로 2001년 설립됐다. 설립 초기만 해도 한화 계열사들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을 이어갔다.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일자 한화그룹은 이들 회사를 물적분할했다. 이때가 2017년 10월이었다. 1년 후 사업법인은 한화시스템에 합병됐다. 현재는 투자회사 성격의 에이치솔루션만 남아있다. 최대주주는 지분 50%를 보유한 김동관 사장이다. 김동원 전무와 김동선 상무도 각각 25%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오너 2세의 개인회사인 것이다.

주목되는 사실은 이 회사의 면면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에이치솔루션은 현재 한화에너지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를 통해 한화종합화학과 한화토털 등을 거느리고 있다. 연결 기준으로 자산만 5조3000억원대에 이르는 알짜 회사다. 지주회사 격인 (주)한화와 한화시스템 지분도 각각 5.2%와 13.4%를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승계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이 회사를 활용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에이치솔루션의 손자 회사인 한화종합화학(옛 삼성종합화학)의 상장 역시 연장선상에서 해석됐다. 한화종합화학은 그동안 한국거래소에 코스피 상장 예비심사신청서를 제출하는 등 상장 준비에 속도를 냈다. 하지만 최근 삼성물산(20.05%)과 삼성SDI(4.05%)가 보유한 지분을 9868억원에 인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상장 철회 수순으로 보고 있다. 그룹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지난 2015년 삼성으로부터 삼성종합화학을 인수할 당시 풋옵션 조항이 있었다. 2022년 4월까지 상장을 못 할 경우 지분을 사주는 조건이었다”면서 “한화가 삼성그룹 보유지분을 매입한 것은 상장 철회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그룹이 추진해왔던 승계 작업도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한화그룹 측은 “한화종합화학 상장 연기를 2세 승계와 연결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한화종합화학의 상장 목적 중 하나가 삼성그룹이 보유한 지분의 엑시트였다. 이번에 삼성이 보유한 지분을 인수하면서 이 의무가 사라졌다”면서 “향후 신사업 진출을 통해 기업 가치를 키운 뒤 상장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것으로 내부에서는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 순위 5위인 롯데그룹의 경우 아직 승계의 윤곽조차 잡히지 않았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최측근이던 황각규 부회장을 경질했다. 대신 젊은 CEO나 임원을 대거 경영 일선에 배치했다. 이 과정에서 아들인 신유열씨를 일본 롯데에 입사시켰다. 일본 롯데 영업본부 유통기획부 리테일 담당 부장으로, 직위는 시니어 매니저로 알려졌다. 이번 인사는 그룹 내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을 정도로 은밀하게 진행됐다. 유열씨는 최근 일본 롯데의 영업전략부로 자리를 옮겼다. 그룹의 작은 부동산 관리회의 등기이사로도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인사들은 “과거 신동빈 회장의 행보를 감안할 때 유열씨가 한국 롯데로 옮기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한다. 신 회장은 1988년 노무라증권을 퇴사한 후 일본 롯데상사 이사로 입사했다. 이때 신 회장의 나이가 34세였다. 이후 신 회장은 한국 롯데로 넘어오며 경영 보폭을 넓혔다. 유열씨의 나이가 과거 신 회장이 경영에 참여했던 때와 비슷한 만큼 아버지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얘기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오른쪽)이 2016년 3월3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롯데면세점 긴자 매장 개점식에서 참가자와 대화하고 있다. 가운데 붉은 원이 신 회장 아들 유열씨와 며느리ⓒ연합뉴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오른쪽)이 2016년 3월3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롯데면세점 긴자 매장 개점식에서 참가자와 대화하고 있다. 가운데 붉은 원이 신 회장 아들 유열씨와 며느리ⓒ연합뉴스

롯데 신유열, 승계까지 넘어야 할 산 많아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국적과 병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첫 번째 숙제다. 유열씨는 현재 일본 국적자다. 앞서 한국 국적을 상실했거나 포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병역의무도 지지 않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도 당시 병역의무 면제 시점인 만 41세(1996년)에 일본 국적을 포기했다”며 “지금은 병역의무 면제 시점이 만 38세다. 아버지처럼 2025년 이후 한국 국적을 취득해 경영 일선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유열씨가 우선 일본 롯데홀딩스 주요 주주인 종업원지주회를 장악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관측하기도 한다. 제과 사업을 영위하는 일본 롯데의 어려운 업황, 종업원지주회의 복잡한 성격, 큰아버지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여전한 견제 등을 고려할 때 30대인 신씨가 당장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아버지 신동빈 회장이 이끄는 한국 롯데의 상황이 현재 좋지 않다. 지배구조 개편도 신사업 추진도 지지부진하다. 지배구조 개편 문제를 이미 해소했거나, 해소 중인 다른 대기업과 달리 롯데그룹은 전혀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야심 차게 추진한 ‘롯데온’ 사업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최근 매물로 나온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 경쟁사인 신세계그룹에 패하기도 했다. 재벌그룹의 경영권 승계와 이사회 기능 등의 문제에 대한 국내 여론도 갈수록 따가워지는 중이다. 만약 지금 당장 3세 승계 문제를 꺼냈다면 누구에게도 지지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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