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과외의 역설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12 08:00
  • 호수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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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9일을 향한 대선 트랙이 활짝 펼쳐졌다. 나올 만한 선수들은 이제 거 의 다 경기장 안에 들어서 있다. 정당 내 인사들과 달리 일부 중량급 후보는 아직 당 밖에 머무르며 몸 풀기에 한창이지만, 그들 또한 이미 대선 참여 의사를 밝힌 만큼 언젠가는 정식 레이스에 발을 들여놓을 것이 분명하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예비후보들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첫 합동 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용진, 이낙연, 추미애, 김두관, 이광재, 최문순, 정세균, 이재명, 양승조 후보. ⓒ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예비후보들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첫 합동 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용진, 이낙연, 추미애, 김두관, 이광재, 최문순, 정세균, 이재명, 양승조 후보. ⓒ 연합뉴스

몸 풀기에 나선 주자들은 장외에서 ‘정치 과외’ 혹은 ‘민심 투어’라는 이름으로 ‘대통령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각계 전문가와 만나 그들의 의견을 듣고 대통령이 되는 데 필요한 식견과 학식을 쌓기 위해 공을 들인다. 그들이 특히 힘을 쏟는 공 부 과목은 대개 경제나 외교 부문이다. 경제·경영학 등을 전공한 학자들이 그들 주위에 몰려 여러 과외 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두고 다른 경쟁자들은 “대통령 공부가 벼락치기 학습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며 그들의 대선 행보가 섣 부르다고 몰아붙이기도 한다.

경쟁자들이 어떤 시각을 갖든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자신에게 부 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공부(열공)하는 것 자체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 다. 아는 것이 모자라면서도 공부는 게을리한 채 엉뚱한 데에 정신이 팔려있는 것 보다는 몇십, 몇백 배 낫다. 이처럼 많이 배우고 익히려는 노력은 비판이 아니라 권장 또는 칭송을 받아야 마땅한 행위다. 굳이 공자가 말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를 인용할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공부에서는 무엇을 배우느냐 못지않게 무엇을 위해 배우느냐도 중요하 다. 세상에는 배워서 익히는 것만으로 다 해결되지 않는 분야도 틀림없이 있다. 벼 락치기 공부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 또한 적지 않다. 오히려 어줍지 않은 공부로 인해 괜한 자신감만 커져 함부로 우쭐해진 채로 큰일을 망치는 사례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대통령이 담당해야 하는 국정은 단순한 공부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과목 단위를 뛰어넘는’ 무한 통섭의 영역에 가깝다.

그런 만큼 대통령 공부는 대선 시기에 맞추어 갑작스레 ‘열공’한다고 해서 완성 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대통령을 꿈꾸는 이라면 과외를 통해 벼락치기로 학습 하기 이전에 일찌감치 국민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어야 한다. 국민에게 정말 필요 한 것이 무엇인지를 실생활에서 배웠어야 마땅하다는 얘기다. 공부해서 얻는 지 혜나 지식은 삶을 통해 터득한 지혜나 지식을 결코 이길 수 없다. 게다가 대통령에 게 필요한 능력은 경제 또는 외교 지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단순 지 식보다는 시대정신과 국민 삶에 대한 공감능력이 더 중요하고, 경제를 읽는 시야 를 넓히기 전에 국민과 국가의 현실을 읽는 시야를 넓히는 것이 더 절실한 시대이 기도 하다. 지식을 앞세우고 학습된 것에만 의존한다면 오히려 세상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과외뿐 아니라 민심 투어도 마찬가지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기 위해 하는 투어는 ‘무늬만 민심 투어’인 정치 쇼나 다름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열심히 배우고 듣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다만 이왕에 무언 가를 배울 요량이라면 시대정신과 사회 변화 트렌드를 꿰뚫는 혜안, 그리고 공감 능력을 익히는 데 더 많은 힘과 시간을 쏟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사회에는 지식보 다 상식의 결핍이 더 문제인 경우가 훨씬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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