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가 띄운 CBAM,국제무역 틀 흔든다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22 11:00
  • 호수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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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의 경제 바로 읽기] 무역·환경 통합된 신개념 환경세 시행
무역규제냐? 기후 재앙 해법이냐? 논쟁 이어져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CBAM)가 7월14일 발표됐다. CBAM은 EU로 수입되는 제품에 대해 EU 역내에서 생산할 때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면 초과분에 대해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EU는 6월28일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최소 55%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담은 기후기본법을 승인했다. 탄소 배출 감축과 관련한 개별 법률들을 묶어 발표했는데 여기에 CBAM이 포함된 것이다.

그동안 EU는 배출권 거래제 도입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지도록 함으로써 산업구조 변화와 에너지 이용 효율화를 도모해 왔다. 배출권을 기업별로 할당하고 배출량에 따라 이를 거래하도록 하는 배출권 거래제는 시장의 수요·공급 원칙을 토대로 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킬수록 이익을 보는 구조여서 기업들의 자발적 감축 노력을 이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EU 역내 기업과 사업장에만 적용되는 배출권 거래제는 공간적 한계로 인해 기업의 해외 이전 또는 수입 증가와 같은 부작용을 가져왔다.

또한 배출권 할당량 감소에 따른 지속적인 배출권 가격 상승은 EU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비판이 EU 기업들로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 배출에 제한이 없는 국가에서 저렴하게 생산된 제품의 수입을 차단하거나 차별적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으나 이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정한 비차별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AP 연합
2018년 12월4일(현지시각) 독일 루트비히스하펜에 있는 바스프 화학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나고 있다.ⓒAP 연합

철강·시멘트·전력·알루미늄 등에 우선 적용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19년 12월 EU는 2050년 탄소 중립 목표의 일환으로 CBAM 도입을 예고한 바 있다. CBAM은 특정 제품의 생산·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계산해 이에 상응하는 비용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현재 배출권 거래제 규제를 받고 있는 EU 기업과 제품이 수입품과 동등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EU는 우선 철강·시멘트·전력·알루미늄·비료 등 탄소 배출이 집중된 품목을 대상으로 CBAM을 적용하며 시기적으로는 2023년부터 적용하기 시작해 2026년 1월부터 전면 도입하는 일정을 계획하고 있다. 당초 세금 형태로 부과하는 방식이 검토됐지만 이보다는 해당 기업이 탄소 배출권을 의무 구매하는 형태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EU 이외 지역에서 해당 물품을 수입하는 업체가 해당 인증서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납부하게 되는데 현재 EU에서 거래되는 배출권 가격은 최근 지속적으로 상승해 톤(t)당 54유로(약 7만3000원)에 이르고 있다. 작년 이맘때 28유로(약 3만8000원) 내외였던 것을 고려하면 1년 사이에 2배로 상승한 것이다.

이러한 EU의 움직임에 대해 국제사회는 반발하고 있다. 중국·인도·러시아 등은 환경과 기후를 구실로 한 신규 무역장벽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EU는 국가가 아니라 개별 기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WTO가 정하고 있는 특정 국가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유무역 원칙을 둘러싼 논쟁과 별개로 제품별로 어떻게 배출량을 측정할 것이고 그것에 대한 신뢰도를 누가 보장할 것인지와 같은 현실적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대다수 제품은 다양한 국가와 기업이 엮인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직간접 탄소 배출량을 산정하고 탄소 비용 납부 여부를 추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EU는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더 이상 EU 기업들의 일방적 피해를 감내할 수 없다며 해당 제도 도입을 강행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미국 역시 바이든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 탄소국경세 도입 검토를 언급해 EU의 움직임에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국경조정탄소세 도입은 점차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EU의 국경조정탄소세 도입이 확정될 경우 현재 진행 중인 글로벌 공급망 변화가 가속화될 수 있다. 그동안 생산비 절감을 이유로 중국, 인도 등으로 이전했지만 생산지와 관계없이 탄소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면 EU 역내로 사업체를 이전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국경조정탄소세가 도입될 경우 우리나라의 경우 연간 10억6100만 달러(약 1조1988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됐는데 이는 1.6%의 추가 관세가 부과되는 것과 동일하다. 특히 철강 부문의 경우 2019년 EU에 262만 톤의 철강제품을 수출했는데 이로 인한 탄소 배출량이 404만 톤으로 추산됨에 따라 배출권 시세를 고려했을 때 철강업계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약 299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철강과 더불어 석유화학 부문도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들 업종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EU의 CBAM 도입에 대해 우리나라는 현재 EU와 유사한 배출권 거래제를 국내적으로 실시하고 있음을 들어 CBAM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국내에서 이미 탄소 배출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지불했기 때문에 EU에 다시 국경조정탄소세를 납부할 경우 이중 부담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에 대한 EU의 반응은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전해지고 있지 않다.

ⓒ연합뉴스
2020년 5월13일 화물이 적체된 부산 강서구 부산신항ⓒ연합뉴스

중국·러시아·인도 “환경 핑계 삼는 新무역장벽”

CBAM 도입은 단순한 경제적 부담 증가라기보다는 국제무역 질서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시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 별개로 간주되던 무역과 환경 규범이 하나의 기준으로 통합돼 적용되며, 가격 이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반영되는 시스템으로 전환될 것이기 때문이다. WTO 체제에 복귀한 미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반대하기보다는 오히려 주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에 국제무역 질서는 빠르게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며 우리에게 변화와 적응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와 같은 대응과 예외 적용에 주력하기보다는 산업구조 및 생산방식의 저탄소 전환에 주력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은 먼 미래의 한가한 이상론이 아닌 우리 경제와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실이 되고 있다. 재생 에너지 확대 차원에서 논의되던 저탄소 전환은 이제 산업 전반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 개발과 효율 향상을 넘어선 산업구조 전환과 이로 인한 고용 및 노동 환경 변화까지 전방위적 변화를 준비해야 할 때가 됐다. 1990년대 초반 국정과제로 ‘세계화’를 내걸면서 방향은 제대로 잡았으나 구체적인 변화와 적응에 실패하면서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이했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정 전반에 대해 저탄소에 기반한 근본적 변화를 이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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