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정치를 삼키나, 정치가 집값을 삼키나
  • 노경은 시사저널e 기자 (nice@sisajournal-e.com)
  • 승인 2021.07.22 10:00
  • 호수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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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더 센 규제”, 야 “규제 완화” 팽팽…대선 후 흐름 완전히 바뀔 듯

내년 대선에 나올 예비후보들이 중앙선관위에 후보 등록을 하면서 부동산 공약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후보들의 부동산 공약은 외교, 안보, 경제 등에 비해 그 어느 때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분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무려 25번의 굵직한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지만 집값은 유례없는 수준으로 여전히 치솟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도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부동산 문제가 아쉽다고 말할 정도로 시장 안정화에 실패했다. 때문에 주택정책은 내년 대선의 최대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부동산 시장을 바라보는 예비후보들의 평가는 대체로 비슷하다. 다만 대처법에서는 여야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일부 정책의 경우 같은 여권 후보라도 결을 달리한다. 관련 업계에선 내년 3월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가 180도 달라질 수 있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당장 각 정당의 대선주자가 확정되는 9월초가 되면 이들이 내건 공약이 시장의 변수로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정권 초기 정부는 공급물량이 부족하다는 전문가들의 우려에 “공급물량은 충분하다”고 잘라 말했다. 오로지 거래 규제, 세제 강화, 대출 강화 등 규제에만 초점을 둘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집값은 쉴 새 없이 오르면서 시장 안정 실패 이유가 공급 부족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부는 정책기조를 바꿔 2018년 12월부터 3기 신도시 조성 등을 비롯해 대규모 주택 공급책을 내놓았다.

ⓒ연합뉴스·시사저널 박은숙·국회사진 취재단
ⓒ연합뉴스·시사저널 박은숙·국회사진 취재단

집값 못 잡아 미안하다면서도 규제 옥죄는 여권

공급물량이 늘어나야 한다는 데는 여야 모두 이견이 없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5년간 주택 280만 호를 공급하겠다며 물량 투하를 약속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공공임대 기본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해야 한다면서 무주택자에게는 누구에게나 30년 이상 거주할 수 있는 장기임대형 기본주택을 제공하고, 공공 토지 위에 건물만 무주택자가 분양받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공급 방안을 제시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수급 안정화를 위한 주택관리매입공사(가칭)를 설립한다는 구상도 밝혔다. 집값이 떨어지면 국가가 주택을 사들여 임대주택으로 활용하고, 집값이 크게 오르면 매입한 주택을 시장에 풀어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취지다.

반대로 야권의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서울과 너무 떨어진 곳에 신도시를 짓는 건 그만하고 서울과 그 주변에 재개발, 재건축을 통해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여야 대선주자들의 정책이 확연히 차이를 보이는 건 공공성 강화·완화 여부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택지소유상한법 제정안, 개발이익환수법 개정안, 종합부동산세법 제·개정안 등 이른바 ‘토지공개념 3법’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택지소유상한법은 개인이 택지를 소유할 경우 서울과 광역시에선 1322㎡(약 400평)로 제한하고, 법인의 택지 소유는 회사·기숙사·공장 목적 외엔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개발이익 환수나 종합부동산세(종부세)는 현행보다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실거주하거나 업무용으로 사용되는 부동산에 대한 세금 부담은 완화하되 그렇지 않은 비(非)필수 부동산에 대해서는 징벌적 세금을 부과하는 국토보유세를 내걸었다. 부동산 불로소득에서 걷는 세금은 기본소득 재원으로 쓴다는 계획이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4년 계약갱신청구권 실행에도 집주인이 들어와서 살 목적이 있다면 세입자는 내쫓기는 현 상황을 개선하겠다며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달 초 열린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이낙연 전 대표는 “걱정을 끼쳐드려 송구스럽다”, 정세균 전 총리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등 여권 후보들은 대체로 규제로 얼룩지며 집값만 높아진 지금의 시장 상황에 대해선 사과하면서도, 현행 규제보다 더 강도 높은 공약을 내걸었다.

반면 야권 후보들은 규제 완화를 앞세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일단 종부세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지난 6월말 “국민들이 예측 가능한 집값 정보를 갖고, 필요할 때 주택을 용이하게 취득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면서 “종부세 (기준을) 상향시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여론이 안 좋으니 ‘최고의 부자만 때릴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건 중요한 게 아니다”며 현 정부의 종부세 강화 기조에 날을 세웠다. 이달 중순 들어선 지난 1년간 서울에서 아파트 값이 가장 많이 오른 곳 중 하나인 서울 도봉구를 찾아 임대차 3법으로 인해 주택가격 상승과 함께 전세난이 심각해진 상황 등을 부동산업계 관계자에게 전해 들으며 임대차 3법 부작용을 넌지시 전하기도 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양도세와 보유세를 모두 없애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는 점을, 홍준표 의원은 부동산 문제의 근본은 자유시장에 맡기고, 재건축은 지금과 같은 규제를 완화하고 원하면 하게 해주자는 입장을 밝혔다.

7월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63스퀘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시사저널 최준필
7월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63스퀘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시사저널 최준필

야권 “종부세 강화 안 된다” 입장

한편 서울 아파트 값은 천장이 뚫린 지 오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서울 75개 단지 11만여 가구의 아파트 시세를 분석한 지난 6월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들어 지난 4년간 3.3㎡당 평균 2061만원에서 3971만원으로 93% 상승했다. 약 100㎡(전용면적 30평) 아파트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2017년 6억2000만원이던 집값이 올해 11억9000만원으로 오른 셈이다.

이달 들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또 기록을 새로 썼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첫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지난주 0.12%에서 0.15%로 오름 폭을 키웠다. 이는 2019년 12월 셋째 주(0.20%) 이후 1년6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아직 후보들의 공약이 시장에 별다른 변수로 작용하는 건 아니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서울은 교통 호재를 비롯해 전세가격 상승 및 매물 감소 등으로 중저가 지역과 신축, 재건축 위주로 집값 상승세가 지속되는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시장 안정화를 위한 대선후보들의 공약이 나오고 있는 만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갈수록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은 작은 정책 변화에도 민감하게 움직인다”며 “대선일이 가까워지고 어느 후보가 가능성이 있는지 윤곽이 드러날수록 매수자들의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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