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아킬레스건 변수 여전히 살아 있어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18 10:00
  • 호수 16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낙연은 ‘이재명 대세론’ 뒤집을 수 있을까

7월11일 더불어민주당의 예비경선 결과가 발표되기 3시간 전, 이낙연 캠프는 갑작스러운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박광온 캠프 총괄본부장은 이런 얘기를 꺼냈다. “민주당 내에서 ‘1강 1중’이 ‘2강’ 구도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여야) 전체로 보면 현재 2강 1중(윤석열·이재명·이낙연) 구도가 3강 구도로 바뀔 것이다.” 함께 자리한 캠프 핵심들 역시 무척 들뜨고 고무된 표정들이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게다가 그날 컷오프 결과가 발표된 뒤에 후보들의 득표율을 담은 여러 개의 지라시가 돌았다.

민주당은 모두가 허위라고 밝혔지만, 이낙연 전 대표가 이재명 경기지사를 근접하게 추격했음을 짐작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실제로 그다음 날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서 이낙연은 1주 전보다 5.9%포인트 상승한 18.1%를 기록한 반면, 이재명은 3.4%포인트 하락한 26.9%를 기록해 두 사람의 격차가 제법 좁혀졌음이 나타났다.(한국사회여론연구소·TBS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이제 이재명은 하락세, 이낙연은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일까. 물론 몇 개의 여론조사 결과만 가지고 판세의 변화를 말하기는 이르다. 다만 ‘이재명 대세론’ 속에서 싱거운 승부가 될 것 같았던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아직 최종 결과를 속단하기 어려운 변수들이 살아있음을 읽을 수는 있다. 우선 최근 있었던 지지율의 변화에는 예비경선 과정에서 있었던 이재명을 향한 다른 주자들의 집중적인 협공이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 공격의 강도는 예상보다 높았다. “수시로 말을 바꾸는 것 같다”(정세균), “야당이 기다리는 후보로 이길 수 있을까”(이낙연), “말을 바꾸고 신뢰를 얻지 못하면 표리부동한 정치인이고 불안한 정치인이다”(박용진).

ⓒ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오른쪽)가 이재명 경기지사와 7월8일 TV조선, 채널A 공동 주관으로 열 린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가운데는 박용진 후보ⓒ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의 “바지 한 번 더 내릴까요”가 부른 역풍

다른 주자들은 기본소득론에 대한 이재명의 말 바꾸기와 입장 변경을 놓치지 않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런가 하면 “제가 바지 한 번 더 내릴까요”라고 했다가 사과해야 했던 이재명의 대답은 여배우와의 스캔들에 대한 정세균 전 총리의 해명 요구로부터 비롯됐다. 야당도 꺼내기 조심스러워 하던 여배우와의 스캔들 문제를 같은 당 내부에서, 그것도 TV토론에서 꺼내드는 광경이 벌어진 것이다. ‘바지’ 얘기가 세간의 논란거리가 되자, 이낙연은 놓치지 않고 이재명의 ‘품격’ 문제를 공격하기도 했다.

2007년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 대선후보 경선 때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가 선을 넘나드는 네거티브전을 벌였던 광경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이재명의 도덕성과 신뢰, 품격의 문제를 집중 공략하는 민주당 경쟁 후보들의 맹공은 그의 지지율에 민감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읽힌다. “손발 묶인 권투를 하고 있다”는 이재명의 하소연은 아무리 맷집 좋은 선수도 많이 두들겨 맞다 보면 쓰러질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선두주자니까 으레 치르는 통과의례로 생각하기에는 이재명의 아킬레스건이 아직 여러 군데 존재한다.

대통령이 되고 나면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다는 일각의 시선은 자신에 대한 비판에 불같이 대응해온 태도, 여배우와의 스캔들이나 형수에 대한 욕설이 낳은 인성과 품격 논란, 인기에 따라 움직이는 영악한 포퓰리스트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낳은 결과다. 대선후보로서 지속 가능한 신뢰가 아직 강고하게 구축되지 못한 점은 이재명의 확장성을 제약해온 요인이었다. 대통령이 되고 나면 문재인 대통령을 배신할 것이라는 ‘친문’들의 불신도 그 같은 불안한 시선과 맞물려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재명이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기까지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여럿 있어 보인다.

 

이낙연, 文 정부의 계승과 차별화 사이 ‘딜레마’

그렇다고 역전극을 장담하기에는 이낙연 후보가 안고 있는 한계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그는 대중들에게 그리 강한 인상을 주는 정치인이 되지 못한다. 총리직에서 퇴임한 후 그토록 높은 지지율을 갖고 민주당 대표가 됐지만, 막상 그가 무엇을 했는가를 생각하면 별반 떠오르는 것이 없다. ‘엄중 낙연’이라는 말이 풍자했듯이, 지나치게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모습만 기억에 남을 뿐, 무엇 하나 답답한 민심을 뚫어주는 시원한 사이다 같은 정치는 없었다. 박용진이 이재명을 가리켜 “부자 몸조심하다가 김빠진 사이다가 됐다”고 했지만, 이낙연은 반대로 사이다 같은 정치가 필요한 경우다.

전직 총리로서, 그리고 여전히 문재인 정부를 적극 엄호하고 있는 이낙연의 많은 부분이 문 대통령과 오버랩되는 점은 그의 태생적 한계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낙연이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 전략을 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지지 기반도 ‘친문’층이 주축이기에, 그 울타리를 크게 넘어서기 어렵다. 그러니 당원과 지지층이 열쇠를 쥐고 있는 경선에서 승리한다 해도, 민심이 결정짓는 본선에서의 경쟁력이 어떠할지는 아직 알기 어렵다. 유권자들이 문재인 정부 시즌2를 선택하기는 녹록지 않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이낙연에게는 당심과 민심,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의 계승과 차별화 사이에서의 딜레마가 있다.

물론 중도 확장성에 대한 불안함은 이재명 후보도 마찬가지이기에 당 경선에서는 큰 제약 요인이 아닐 수 있다. 그래도 이낙연에게는 친문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다. 민주당 안팎의 친문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이재명은 여전히 믿기 어려운 인물이다. “유죄가 확정된다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도 책임져야 한다”는 그의 말도 친문들에게는 마땅치 않을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이재명이 후보가 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친문의 제3 후보론도 띄워봤지만 대안 부재의 상황을 타개하지 못했다.

이재명 대세론이 거품이라고 판단되는 순간, 친문들은 언제든지 이낙연의 부활을 위해 결집할 가능성이 있다. 일단 이재명 대세론의 영향으로 당내 의원 상당수가 이재명 캠프에 몸을 싣기는 했지만, 선거인단 신청을 해서 실제로 투표에 참여할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만약 이낙연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신호가 읽히는 상황이 된다면 언제든지 반(反)이재명의 중심에 이낙연을 세우는 흐름이 민주당을 주도할 수 있다.

민주당 당원과 지지층은 전통적으로 전략적 투표를 해왔다. 2002년 국민경선에서 ‘노무현 바람’이 불 수 있었던 것도 ‘이인제로는 이회창을 이길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이 낳은 결과였다. 이번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투표자들의 선택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누가 야당 후보를 이길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대선에서 본선 경쟁력이란 결국 중도 확장성과 같은 얘기다. 집토끼의 지지만으로는 이길 수 없고, 산토끼의 지지까지 얻어야 이길 수 있는 것이 대선이다. 이재명과 이낙연 가운데 누가 더 중도 확장성이 있느냐에 대한 판단이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