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도시의 역습…발암물질이 넘친다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1.07.25 15:00
  • 호수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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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단 지역 내 직업성 암환자 증가…울산 암 발병률, 전국 평균 웃돌아

발암물질은 역치(閾値)가 없다. 독성물질은 신진대사를 통해 해독·희석되기 때문에 인체에 많은 양이 존재할 때 독성을 발현한다. 양적인 기준이 역치다. 발암물질은 아주 적은 양이라도 세포의 유전체에 돌연변이를 유발하고 DNA에 손상을 입힌다. 이렇게 손상된 세포가 쌓이면 암이 된다. 그래서 발암물질에는 역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역치는 생물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 세기다.

발암물질의 진원지는 석유화학·조선업체, 진앙지는 대규모 공단이다.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119’와 민주노총은 6월3일부터 '직업성 암환자 찾기‘에 나섰다. 석유화학단지와 제철소가 있는 울산·포항·광양·여수·서산 지역 등이 조사 대상이다. 지금까지 78명이 직업성 암환자 산재를 신청했다. 폐암 33명(42%), 유방암 13명(17%), 백혈병 12명(15%), 갑상선암 5명(6%), 방광암·위암·대장암 각각 2명으로 나타났다.

울산석유화학공단에서 뿜어내는 배기가스에는 각종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다.ⓒ울산시 제공

질병판정위, 포스코 암환자에 “업무상 질병” 

포스코에 대한 ‘직업성 질병’ 집단역학조사가 진행 중이다. 철강업계 최초다. 산업안전공단은 포스코 현장 작업환경의 유해성과 직업성 질병 여부 조사를 2021년 6월부터 2024년까지 실시한다. 암환자가 계속 발생하는 데 따른 조치다. 현재까지 포스코에서 직업성 질병을 신청한 근로자 28명 중 3명이 산재 승인을 받은 상태다. A씨는 38년 동안 코크스와 용광로 가스, 석면 보온재 분진 등에 노출된 현장에서 일하다 ‘악성 중피성’으로 지난 4월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았다. B씨는 분진에 노출돼 폐암에 걸린 사례다. 35년 동안 석탄 수송부터 코크스 오븐 공장에서 결정형 유리 규산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사실이 인정됐다. C씨는 발암물질과 유해가스가 나오는 포항 코크스 공장에서 27년 동안 일하다 ‘특발성 폐섬유화증’에 걸렸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제철소에서 나오는 COE 가스(코크스 오븐 배출물질), 석면, 콜타르 피치 등은 암 발생과 관련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포스코는 “작업환경 측정 결과 법적 기준치보다 낮고, 이들은 기저질환이 있어 근무환경으로 인한 발병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질병판정위원회는 포스코 암 발병에 대해 “업무상 질병이 맞다”고 판정했다. 

발암물질에 노출돼도 암이 단기간에 발생하지 않는다. 세포의 돌연변이가 생기고, 이 세포가 면역체계를 넘어 증식해 진단이 되기까지는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린다. 직업성 암에 걸려도 산재로 인정받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1년 이상의 잠재기를 거쳐야 하고, 발암물질이 몸속에 얼마나 많이 들어왔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는 신의 영역에 가깝다. 그래서 ‘포스코 직업병’은 3건만 인정됐지만, 실제로 근로자들의 암 발병률은 상당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은 최근 10년간 포스코 원·하청 종사자 2만5000여 명을 대상으로 특정 질환을 조사한 결과 전국 직장가입자보다 남성은 악성중피종암 2.1배, 갑상선암 1.5배, 피부암 1.3배 등 5개 암 발병률이 높았다. 여성은 혈액암 15.5배, 중피연조직암 4.7배, 폐암 3.4배 등 17개  암 발병률이 훨씬 높게 나타났다.

포스코에서 암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용광로에 철광석과 유연탄 덩어리를 넣고 섭씨 1000도의 열을 가하면 철광석은 쇳물로 녹아 나온다. 이 과정에서 ‘코크스 오븐 배출물질’이 발생하는데, 벤젠과 벤조피렌 같은 수십 종의 유해 성분이 들어있다. 미국환경보호청과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 등은 ‘코크스 오븐 배출물질’을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환경관리공단에 따르면 2020년 포스코 포항과 광양제철소에서 배출한 대기오염물질은 3만4000여 톤. 전국에서 오염물질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업체 1, 2위다. 우리나라 사업장 총배출량의 16%가 포스코에서 나왔다. 한대정 금속노조 포스코지회 수석부지부장은 “제철소 직원들은 발암물질에 노출된 작업장에서 일한다. 산재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가 열악한 작업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직업성 암환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울산석유화학공단 야경ⓒ울산 남구청 제공

“공단 인근 주민들이 암에 많이 걸린다” 입증

“공단 인근 주민들이 암에 많이 걸린다”는 말은 통계로 입증된다. 하지만 정부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애매한 입장을 보여왔다. 그런데 환경부가 공단과 암 발생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최초로 인정했다. 울산 국가산단 대기오염물질이 시민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최근 1년 동안 조사한 결과다. 환경부가 지난 3월 작성한 비공개 자료에 따르면, 발암물질 농도는 울산석유화학단지 인근 남구 야음·장생포동에서 가장 높았다. 이어 조선소 인근 동구 방어동이 두 번째였다. 벤젠 농도도 화학공단과 연접한 선암동에서 가장 높게 검출됐다. 독성 중금속은 온산공단 비철금속단지에서 가장 많이 배출됐다. 조사를 주도한 최성득 유니스트(UNIST) 교수는 “공단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들이 주택지로 이동하고 있는 건 명확하다”고 설명했다. 

김양호 울산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울산공단에서 나오는 중금속·유기용제·미세먼지 등은 발암성 물질로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들어오면 암을 유발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분석 결과 울산 지역 암 발생률은 전국 평균과 비교해 남자는 1.61배, 여자는 1.33배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폐암 사망률도 울산이 전국에서 최고치다. 산단 지역 주민들의 피와 소변의 중금속(카드뮴·납 등) 농도 역시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420조에서 규정한 발암성 물질은 벤젠·크롬·니켈·1, 3-부타디엔·사염화탄소·포름알데히드·안티몬·카드뮴·산화에틸렌 등이다. 울산에는 이런 발암물질을 뿜어내는 기업들이 밀집해 있다. 울산공단에서 배출하는 발암물질은 연간 1400톤, 10년 새 2배 이상 늘어 전국 배출량의 9%를 차지하고 있다. 발암물질은 한화케미칼과 SKC, SK종합에너지 등 대부분 석유화학업체에서 나온다. 유해화학물질은 현대중공업에서 가장 많이 배출한다. 그런데 공장별 ‘배출농도 규제’는 있지만, ‘총량 규제’가 없다. 김석택 울산대 산업공학부 교수는 “사업장별로 기준치 이하로 내보내도 울산은 공장이 너무 많아 그것이 다 모이면 전체 오염 농도는 매우 높다. 그래서 울산의 암환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기업별 배출량을 제한해 규제하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전국 최대 공단도시 울산은 한국 경제를 견인한다. 포스코는 포항과 광양시를 먹여 살린다고 할 정도다. 그런 울산과 포항, 광양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고 있다. ‘경제적 풍요’ 속에 ‘환경적 빈곤’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산단 지역에서는 직업성 암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공장에서 뿜어내는 발암물질과 분진, 유해화학물질은 주택가까지 날아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산효과' 피해를 더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산효과는 대기의 영향으로 배출원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오염농도가 더 높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나오는 고로 가스로 인해 인근 여수·순천보다, 경남 남해 지역의 오염도가 더 높다. 울산에서는 폐암환자가 전 지역에서 비슷한 분포로 발생하고 있다. 발암물질의 역습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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