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거티브 공방 흐르는데 지지율은 ‘순풍’ 아이러니
더불어민주당 경선과정에서 불거진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비방전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문제로 번졌다. 여기에 정세균·김두관 등 다른 후보들까지 가세하면서, 17년 전 노 전 대통령 탄핵 찬반 여부를 둘러싼 후보들 간 진실 공방이 격화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네거티브를 자제해 달라”며 연일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후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재명 지사의 선공으로 촉발한 탄핵 논쟁은 23일 사흘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 지사 측이 먼저 이 전 대표를 향해 탄핵 찬성표를 던진 게 아니냐고 공세를 퍼붓자, 다른 후보들이 저마다 “내가 진짜 ‘적통’이다”라며 가세하는 형국이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이날 “제가 마지막까지 노 전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의장석을 지킨 사람”이라며 탄핵 논쟁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2004년 당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탄핵을 저지했던 경험을 밝히며 논란에 합류한 것이다. 정 전 총리는 MBC라디오에 출연해 “당에 위기가 있을 때 항상 중심에 서 있었다. 어려울 때마다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면서 ‘적통 굳히기’에 나섰다.
또 다른 대선 후보인 김두관 의원도 이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진짜 원조 입장에서 (적통논쟁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 당 (대선 경선) 후보 중에서 영남에 출마해서 이겨 본 경험, 져 본 경험도 한 번도 없다. 유일하게 저 밖에 없다”며 자신이 적통 후보임을 강조했다. 김 의원은 특히 탄핵 진실공방과 관련해 추미애 전 장관과 이 전 대표를 겨냥하며 “야당과 손잡고 노 전 대통령을 탄핵한 정당의 주역”이라고 지적했다.
“유랑하는 친문 표심 잡아라”
민주당 후보들이 탄핵 논쟁을 꺼내든 것은 당 주류인 친문(親文) 지지자들의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친문적자’로 불리던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댓글조작 사건으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으면서 친문의 구심점이 사라진 상황이다. 친문 세력이 김 전 지사 대신 특정 후보를 밀어주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 같은 친문 지지세를 확보하기 위해 후보들이 비방전에 열을 올리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지사가 공격수를 자처한 것도 다른 후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친문과의 접점이 적어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경쟁자인 이 전 대표의 적통 프레임에 흠집을 내면서, 친문 지지세가 이 전 대표 쪽으로 몰리지 않도록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급기야 이 지사는 “탄핵에 반대했다”는 이 전 대표의 주장을 거짓말로 규정했다. 이 지사는 전날 “과거 자료를 보니 이 전 대표가 스크럼까지 짜가면서 탄핵 표결을 강행하려고 하더라. 반대표를 던졌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고 공세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이에 이 전 대표도 “딱하기 그지없다”고 맞섰다. 이낙연 캠프 수석대변인인 오영훈 의원은 “이재명 캠프는 이 후보의 탄핵 표결을 놓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글과 사진 등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며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 문재인 대통령이 초대 총리로 이낙연을 선택했다. 이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라고 되물었다.
네거티브 거세질수록 지지율은 높아져
이처럼 탄핵 논쟁이 격화하자, 민주당 지도부는 재차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다시 못 볼 사람처럼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며 경고를 보냈다. 송 대표는 “대선은 과거에 대한 논쟁이 아닌 미래로 가기 위한 선택”이라며 “모두 원팀이라는 생각으로, 금도 있는 논쟁과 존중하는 공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후보들 간 네거티브 경쟁이 과열될수록 모순적이게도 민주당 지지율은 상승하고 있다. 이날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20~22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3명)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2%포인트 오른 33%를 기록했다. 2주째 국민의힘(28%)을 앞섰다.
이 지사와 이 전 대표의 지지율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개 여론조사업체가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전국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전국지표조사를 진행한 결과, 가상 양자대결에서 두 후보 모두 야권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제쳤다. (이재명 46%-윤석열 33%, 이낙연 42%-윤석열 34%) 후보들의 싸움이 민주당 대선 지형에 대한 주목도를 끌어올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자세한 여론조사 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