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주스님 영결식 풍경…마주친 尹-秋 ‘딴곳만 봤다’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1.07.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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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김제 금산사서 영결식·다비식 엄수…“속히 돌아오소서”
도법스님 등 제자들 “오염된 연못서 청명한 삶 가꾸신 분”

대한불교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月珠) 스님 영결식이 26일 오전 10시 전북 김제시 금산사 처영문화기념관에서 엄수됐다. 불교계 인사를 중심으로 내·외빈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태공당 월주 대종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삼귀의례로 시작한 영결식에서는 현대사 한복판에서 불교 사회운동에 헌신하며 자비행을 실천하고, 깨달음을 구했던 고인의 행장과 생전 육성법문이 영상과 함께 소개됐다. 

7월 26일 오전 10시, 전북 김제 금산사 처영문화기념관에서는 월주스님 영결식이 거행됐다. 불교계 인사를 중심으로 내외빈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태공당 월주 대종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조계종
7월 26일 오전 10시 전북 김제 금산사 처영문화기념관에서는 월주스님 영결식이 거행됐다. 불교계 인사를 중심으로 내외빈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태공당 월주 대종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조계종

폭염 속 영결식…“이 시대의 진정한 보현보살”

월주스님의 장례식이 열리는 기간에 전국은 폭염(暴炎)으로 끓어올랐다. 밖에서 5분만 서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였다. 의전을 진행하는 사람들이나, 빈소를 찾은 문상객들이나 모두 땀에 흠뻑 젖었다. 이날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영결식장에 입장하지 못한 스님과 신도들은 무더위 속에도 식장 밖에서 대형 화면을 통해 추도 장면을 지켜봤다. 

영결식 중 중계화면에 월주스님의 생전모습이 비춰지자 일부신도들은 “스님, 우리스님”이라며 울먹였다. 신도들은 영결식이 끝날 때까지 두 손을 모아 월주스님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일부 신도들은 월주스님을 부르며 목놓아 울기도 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거행된 영결식에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등 여야 대선주자도 자리해 대종사의 극락왕생을 바랐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원불교 오우성 교정원장, 손진우 성균관장 등 이웃 종교 지도자들도 함께했다.

7월 26일 오후, 월주 스님의 법구는 영결식 뒤 만장 행렬을 앞세운 채 참나무와 숯으로 만든 전북 김제 금산사 다비장 연화대로 옮겨져 다비식이 거행되고 있다. ⓒ법보신문 제공.
7월 26일 오후, 월주 스님의 법구는 영결식 뒤 만장 행렬을 앞세운 채 참나무와 숯으로 만든 전북 김제 금산사 다비장 연화대로 옮겨져 다비식이 거행되고 있다. ⓒ법보신문 제공.
7월 26일 오후, 월주 스님의 법구는 영결식 뒤 만장 행렬을 앞세운 채 참나무와 숯으로 만든 전북 김제 금산사 다비장 연화대로 옮겨져 다비식이 거행됐다. ⓒ법보신문 제공
7월 26일 오후, 월주 스님의 법구는 영결식 뒤 만장 행렬을 앞세운 채 참나무와 숯으로 만든 전북 김제 금산사 다비장 연화대로 옮겨져 다비식이 거행됐다. ⓒ법보신문 제공

“스님, 우리 스님” 목 놓아 부른 신도들

월주스님 상좌(제자)이자 장의위원장인 원행스님은 영결사에서 “오늘 저는 저의 은사이자 한국 불교의 큰 스승이신 태공당 월주 대종사를 적요의 세계로 보내드려야 한다”며 “출가사문으로 생사와 별리의 경계는 마땅히 넘어서야 하겠지만, 스승을 보내드려야 하는 이 비통한 마음, 가눌 길이 없다”고 애통해했다. 

그는 “대종사는 이 시대의 진정한 보현보살이었다”며 “‘나의 삶은 보살도와 보현행원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제자가 지켜본 대종사의 삶은 실제로 그러하셨다”고 돌아봤다. 원행스님은 영결사 말미에 눈물을 보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태공당 월주 대종사이시여, 속환사바(速還娑婆)하소서”라며 스승이 이 세계로 속히 돌아와 중생 제도에 나서줄 것을 염원했다.

이날 월주스님의 제자들도 하나둘씩 모였다. 실상사 회주 도법스님, 금산사 주지 일원스님, 동국대 이사장 성우스님, 금산사 총무국장 화평스님이다. 도법 스님은 “큰스님은 일생 당신이 서 있던 현장을 떠나신 적이 없다”며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있는 모든 오염물이 모여드는 연못에서도 오염되지 않도록 자기 삶을 청명하게 완성하고자 일생을 살아오신 분”이라고 했다

영결식 뒤 월주 스님의 법구는 만장 행렬을 앞세운 채 참나무와 숯으로 만든 다비장 연화대로 옮겨져 다비식이 거행됐다. 스님들과 신도들은 무더위 속에서도 태공당 월주 대종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월주스님은 자신이 조실(祖室)로 있는 금산사에서 22일 오전 9시 45분께 세수 87세로 입적했다. 고인은 올해 폐렴 등으로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오전 금산사로 자리를 옮겨 세간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오른쪽)과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추미애 후보(왼쪽)가 26일 전북 김제시 금산사를 찾아 대한불교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月珠)스님 영결식에 참석하고 있다. 두 사람은 영결식장에서 의자 1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았으나 별다른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오른쪽)과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추미애 후보(왼쪽)가 26일 전북 김제시 금산사를 찾아 대한불교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月珠)스님 영결식에 참석하고 있다. 두 사람은 영결식장에서 의자 1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았으나 별다른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연합뉴스

尹-秋 의자 1개 두고 한자리에…‘어색한 조우’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야권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6일 대한불교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月珠)스님의 영결식에 참석했다. 이들이 한 공간에 함께한 것은 윤 전 총장이 퇴임한 지난 3월 4일 이후 처음이다. 

추 전 장관과 윤 전 총장은 고인께 예를 갖추면서도 마주치지는 않았다. 이후 영결식장에서 의자 1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았으나 별다른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윤 전 총장은 당초 영결식장 방문 예정 시각인 오전 9시 40분보다 20분 정도 일찍 금산사를 찾았다. 그는 조계종 현 총무원장 원행스님과 금산사 경내에서 차담을 나눈 뒤 영결식이 열리는 금산사 처영문화관으로 들어섰다.

영결식장 안에는 이미 추 전 장관이 도착해 있었다. 추 전 장관도 방문 예정 시각인 오전 10시보다 이른 시각에 영결식장에 도착한 것이다. 월주스님 영장 앞에 헌화하고 삼배를 올렸다. 이날 추 전 장관은 “종단 개혁과 대사회적 운동 중심에 섰던 스승을 잃었다”며 안타까움을 전하고 월주 스님 영정 앞에 헌화와 삼배를 올렸다. 그는 가장 존경하는 이에 성철 스님을 언급할 정도로 독실한 불자로 알려져있다. 지난해 법무부 장관직 사의를 표하면서 자신의 SNS에 불교적 내용이 담긴 시 ‘산산조각’을 공유해 주목 받기도 했다.

7월 26일 오전 10시, 전북 김제 금산사 처영문화기념관에서는 월주스님 영결식이 거행됐다. 불교계 인사를 중심으로 내외빈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태공당 월주 대종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전국 각지 사찰에서 온 스님들이 서너 명 혹은 10여 명씩 짝을 지어 빈소를 찾았다. ⓒ시사저널 정성환
7월 26일 오전 10시, 전북 김제 금산사 처영문화기념관에서는 월주스님 영결식이 거행됐다. 불교계 인사를 중심으로 내외빈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태공당 월주 대종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전국 각지 사찰에서 온 스님들이 서너 명 혹은 10여 명씩 짝을 지어 빈소를 찾았다. ⓒ시사저널 정성환

“불심(佛心) 잡아라” 닷새간 조문행렬 이어진 ‘금산사’

장례기간 동안 현직 대통령은 물론 대선주자와 유력 정치인 등이 참석해 불심을 잡으려는 정치권의 그야말로 ‘조문정치’ 위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정치인 외에 불교신도, 사부대중 등 5000여명이 스님의 이생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처영문화기념관 밖 마당은 전현직 대통령과 각계 인사들이 보낸 화환으로 뒤덮였다. 또한 빈소(분향소)에는 정치인과 각계 인사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정치인들을 제외하면 조문객들 대부분은 불교신도들이었다. 이들은 윗도리에 원적이라는 리본을 달고 서너 명 혹은 10여 명씩 짝을 지어 빈소를 찾았다. 일반 시민들은 빈소가 있는 처영문화관 안에 직접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조의(弔意)를 표했다. 각 사찰에서 온 스님과 신도들을 제외한 순수 일반 시민들의 문상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다. 

월주스님이 입적한 지 나흘째인 25일 전북 김제시 금산사 분향소에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이날 오전 같은 당 이수진, 이용빈 의원과 함께 분향소를 찾았다. 송 대표 등은 월주스님 영정 앞에 국화꽃 한 송이를 놓고 분향하고 나서 40여 분 동안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과 비공개 차담을 나눴다.

송 대표는 “월주스님은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에 타협을 거부하고 역사와 국민 편에 선 불교계 큰 지도자였다”며 “많은 핍박 속에서도 조계종을 개혁하고자 노력했고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으로 국민의 큰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사회를 위해 헌신해온 월주스님의 영면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대권 주자인 김두관 의원도 오후 3시께 분향소를 찾았다. 김 의원은 방명록에 ‘깨달음의 사회화를 통해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펼쳐 보이셨던 큰 스님의 원력에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작성했다. 김 의원은 “이런 큰스님의 뜻을 잘 이어받아 좋은 세상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월주스님을 마지막으로 조문한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는 이낙연 전 대표였다. 영남 일정을   서둘러 마치고 25일 오후 6시께 도착한 이 전 대표는 분향소가 마련된 경내 처영문화기념관을 찾아 삼배한 뒤 상주인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의 안내로 미륵전(彌勒殿)에 들러 참배하고, 원행 스님과 묵전당에서 15여분 간 비공개로 차담을 나눴다. 이 전대표가 묵전당을 나서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월주스님을 마지막으로 조문한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는 이낙연 전 대표였다. 영남 일정을 서둘러 마치고 25일 오후 6시께 도착한 이 전 대표는 분향소가 마련된 경내 처영문화기념관을 찾아 삼배한 뒤 상주인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의 안내로 미륵전(彌勒殿)에 들러 참배하고, 원행 스님과 묵전당에서 15여분 간 비공개로 차담을 나눴다. 이 전 대표가 묵전당을 나서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이날 마지막으로 조문한 민주당 대권주자는 이낙연 전 당 대표였다. 영남 일정 때문에 오후 6시께 서둘러 도착한 이 전 대표는 분향소가 마련된 경내 처영문화기념관을 찾아 삼배한 뒤 상주인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에게 위로를 전했다. 이어 미륵전(彌勒殿)에 들러 참배하고 원행 스님과 30여분 간 비공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전 대표는 방명록에 ‘ 이 필요한 사람에겐 밥을 약이 필요한 사람에겐 약을, 월주 큰스님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고 적었다.

원행 스님과 묵전당에서 15분 동안 차담을 마치고 취재진 앞에 선 이 전 대표는 “저희 세대에는 가장 존경과 사랑을 받은 총무원장이라고 하면 월주 큰스님이다”며 “지난 60여년 동안 사람들의 생활에 늘 가까이 있는 불교가 되도록 노력하셨고 총무원장 마치신 뒤에는 종교 간 화해를 위해 애쓰신 일들이 기억에 새롭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정신은 저희가 본받아야 한다. 그래서 방명록에 대종사님의 가르침 가운데서 인생에 아주 필요한 내용을 방명록에 새긴 이유가 그것이다”고 덧붙였다.

 

찬밥신세가 된 MB·이상직의 조화·근조기…“권력 무상”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해 권력무상을 실감케 했다. 이 전 대통령 측이 보낸 조화는 누군가에 의해 줄곧 처영문화관 앞마당 버스하차장 모퉁이에 놓여 있었다. 더구나 다른 조화에 가려 잘 눈에 띄지도 않았다. 그러자 한 조문객이 25일 “그래도, 전직 대통령이 조의를 표하느라 보낸 것이니 앞으로 내놓는 것이 예의에 맞다”며 화환을 앞줄에 내놓았다. 진열된 지 나흘만이다. 최근 구속된 이상직 전 의원의 조기는 깃발이 사라진 채 받침대만 덩그러니 내팽개쳐져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해 권력무상을 실감케 했다. 이 전 대통령 측이 보낸 조화는 줄곧 처영문화관 앞마당 버스하차장 모퉁이에 놓여 있었다. 더욱이 뒤쪽에 놓여 다른 조화에 가려 눈에 뜨지도 않았다. 나흘만인 25일에야 한 조문객에 의해 앞줄에 놓이게 됐다. ⓒ시사저널 정성환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해 권력무상을 실감케 했다. 이 전 대통령 측이 보낸 조화는 줄곧 처영문화관 앞마당 버스하차장 모퉁이에 놓여 있었다. 더욱이 뒤쪽에 놓여 다른 조화에 가려 눈에 뜨지도 않았다. 나흘만인 25일에야 한 조문객에 의해 앞줄에 놓이게 됐다. ⓒ시사저널 정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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