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성 장군 출신이 손자병법 대중서나 쓰는 한심한 한국군”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1.08.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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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스테디셀러 《태평양전쟁의 지상전》 펴낸 일본군 전문가 최종호 변호사
“우리군, 지금 심각한 지적 태만에 빠져 있다”
‘태평양전쟁의 지상전’을 번역한 최종호 변호사가 7월26일 서울 용산 시사저널 사무실에서 책 내용과 한국군 실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태평양전쟁의 지상전》을 번역한 최종호 변호사가 7월26일 서울 용산 시사저널 사무실에서 책 내용과 한국군 실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일본군의 태평양전쟁 패전은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전사(戰史)로 기록된다. 일본군은 왜 참담하게 무너졌을까. 일본 내에선 아직도 이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일본군 실패는 단순히 군사학에서만 다루는 주제가 아니다. 조직경영학에서도 연구가 한창이다. 일본 히토쓰바시(一橋)대 대학원에서 국제기업전략연구과 교수를 지낸 경영사상가 노나카 이쿠지로(野中 郁次郎) 박사를 비롯한 6인의 학자가 쓴 《왜 일본제국은 실패하였는가》는 지난 15년 동안 일본에서 지난 100쇄 넘게 팔린 스테디셀러다. 국내에서도 이 책은 경영학 서적은 물론 대중서로 꽤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일본군 분석 역작인 《태평양전쟁의 지상전》이 출간돼 화제다. 저자인 하야시 사부로(林三郞)는 종전 시 육군 대좌(한국군 대령)를 지냈기에 당시 일본군의 실상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 책 역시 1951년 출간 이래 일본 내에서 38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올해 발간된 지 딱 70주년 된다.

‘일본군의 패인’ 등 3권 번역한 일본군 전문가

책을 번역한 이는 국내 일본군 연구 권위자로 꼽히는 최종호 조이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다. 이 책은 《일본군의 패인》 《참모본부와 육군대학교》에 이어 최 변호사의 일본군 시리즈 제3탄이다. 이중 《일본군의 패인》은 지난 2019년 국회도서관이 선정한 ‘세상의 변화를 읽는 101권의 책’에 꼽히기도 했다. 최 변호사의 책은 전문서적이면서 대중성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연세대 법대를 졸업한 최 변호사(연수원 44기)는 현재 병무청‧방위산업공제조합 고문변호사, 국방전직교육원 비상임감사로 활동하고 있다.

미드웨이‧알루샨‧과달카날섬 전투로 대표되는 태평양전쟁을 우리는 해전으로 많이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은 태평양전쟁의 지상전이다. 태평양이라는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해군, 공군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지만, 결국 전쟁의 승패는 해전이 아닌 지상전에서 갈렸다는 게 책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본 육군의 전략, 작전, 전술이 어떠했는지 조목조목 분석했다.

“정보 경시하는 한국군 작전 제일주의 우려돼”

다른 일본군 분석 서적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기업 경영의 정수가 곳곳에 숨어 있다. 저자는 “당시 일본군은 구체적이고 명료한 전략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상대에 대한 적확한 인식 결여로 이어졌고, 그러다보니 무형적 요소인 정신에 과도하게 집착했다”고 설명했다. 현대 기업 경영에 적용해도 손색없는 분석이다. 극단적인 비효율과 육군과 해군의 대립이라는 조직 내 갈등은 패전이라는 쓰디쓴 결과를 얻어야 했다. 그 반성에서 출발하는 게 저자의 집필 동기다.

1945년 9월2일 일본 도쿄만 앞 미 해군 항공모함 미주리호에서 열린 항복 문서 조인식에 참석한 시게미쓰 마모루 외무상(가운데) 등 일본 정부(각의) 수뇌부. ⓒ연합뉴스
1945년 9월2일 일본 도쿄만 앞 미 해군 전함 미주리호에서 열린 항복 문서 조인식에 참석한 시게미쓰 마모루 외무상(가운데) 등 일본 정부(각의) 수뇌부. ⓒ연합뉴스

최 변호사는 7월26일 시사저널 본사에서 만난 자리에서 “정보를 경시하고 작전만을 중시한 당시 일본군의 모습과 지금 우리군 문화는 판박이”라면서 “장성급 인사 중에 제대로 된 전문서적을 펴내지 조차 못하는 우리군의 지적 태만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전쟁은 전략-작전-전술-전투 순으로 진행된다. 작전의 범위는 1만~2만 명이다. 지적 능력이 중요하며, 일부 전략가들은 그렇기에 작전‧전략을 ‘학문과 예술’이라고 칭한다. 근대 가장 위대한 장군인 독일의 헬무트 몰트케는 한 번도 부대를 지휘해본 적이 없다. 참모본부에서 전략‧작전만 연구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4성 장군 출신이 전역 후 손자병법 해설서 같은 대중서나 내는 수준이다. 현역 군인 중 전문적인 군사학 책을 낸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일본통인 최 변호사에 따르면, 일본만 해도 꽤 많은 엘리트 군인들이 전역 후에도 논문을 쓰고 책도 낸다. 이 책의 저자가 그 중 하나다.

왜 이런 일이 있는 걸까. 그는 “지적 성취가 진급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것이 우리 군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토론과 연구 대신 “까라면 까라”는 식의 상명하복만 강조되는 게 오늘날 한국군의 현실이라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상명하복, 일심동체를 중시하는 군의 현 주소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다.

“작전‧전략 연구 없고 ‘까라면 까’ 문화만 남아”

저자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육군에서 정보통으로 불렸다. 각지에서 다양한 정보들을 수집해 윗선에 보고했지만, 이는 대본영(태평양전쟁 때, 일본 천황의 직속으로 군대를 통솔하던 최고 통수부)의 ‘작전 우선 정책’ 아래 자주 묵살됐다. 이는 현재 우리 군이 처한 현실과 똑같다. 왜 이럴까. 최 변호사는 “독자적인 작전수립이 어렵다보니 독자적인 정보 수집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것”이라면서 “주한미군에 정보를 전적으로 의존한 결과 우리 군의 정보 경시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그 단적인 예가 정보 병과 출신 장성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육군에서 정보 병과 출신으로 대장에 오는 이는 2009년과 2010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황의돈 대장이 거의 유일하다.

책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최종호 변호사 ⓒ시사저널 박정훈
《태평양전쟁의 지상전》을 번역한 최종호 변호사가 7월26일 서울 용산 시사저널 사무실에서 책 내용과 한국군 실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그는 “당시 일본 군 내 태평양전쟁에 대한 비관론도 상당했다”면서 “전쟁을 하지 않을 상황까지 국가가 몰고 간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청일, 러일 전쟁에서 연달아 승리한 일본제국주의가 승리에 취돼 있는 사이 국가의 미래비전은 송두리째 사라졌고, 남은 자리에는 침략과 정복에 대한 야욕만 남았던 것이다. 국가든 기업이던 간에 정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에 걸맞은 비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시사 하는 바가 많다.

최근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역설적으로 이 책이 일본에서 오랜 기간 꾸준히 팔리고 있는 것은 ‘반성하지 않는 일본 사회’에 대한 반작용이다. 특정집단이 본인들의 목표 달성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일본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 변호사가 세권씩이나 일본군 관련 서적을 번역한 데는 “한국군은 절대 일본군의 실패를 답습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여전히 우리는 태평양전쟁의 의미를 모르고 있다. 태평양전쟁하면 해전부터 떠올린다. 태평양전쟁은 1942년 일본 각의(閣議)에서 결정된 대동화전쟁으로 엄밀히 말하면 ‘아시아 태평양전쟁’이라고 봐야한다. 그 시작은 중일전쟁으로부터 비롯됐다, 전쟁의 승패는 해전이 아닌 지상전에서 결정 났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일본 치하에 살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태평양전쟁을 분석하는 것은 역사학, 경영학 등 여러 분야에서 의미있는 작업이다.”

《태평양전쟁의 지상전》/ 하야시 사부로 지음/ 최종호 옮김/ 논형 /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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