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절박한 한국 기업들, 美 ‘코로나 대출금’에도 손 벌렸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1.08.04 10:00
  • 호수 16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공공회계 정보 사이트 전수조사 결과
두산·대한항공·롯데·SPC 등 수백만 달러 끌어 써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기업에는 국적 구분이 없다. 미국에 있는 한국 기업도 마찬가지다. 해외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자처했던 이들 기업은 소리소문 없이 미국 정부에 손을 내밀었다. 미국 중소기업청(SBA)이 작년부터 시행중인 급여보호 프로그램(PPP)을 통해서다. 우리나라 중소벤처기업부의 긴급대출과 비슷한 이 프로그램은 요구 조건 충족 시 상환 의무가 없다. 그래서 일정 규모 이하의 중소기업만 신청이 가능한데, 한국 대기업들도 다수 신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사저널은 미국 공공회계 정보사이트 페더럴페이 등을 통해 PPP의 수혜자 목록을 살펴봤다. 이 가운데 코트라의 ‘해외진출 한국기업 디렉토리’에 등록돼 있는 한국 70대 그룹 및 200대 기업(매출액 기준)의 자회사∙계열사에 주목했다. 그 결과 롯데, 두산, SPC 등 한국 주요 그룹의 미국 자회사·계열사가 포함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2013년 10월 파리바게뜨가 미국 뉴욕 중심가인 타임스스퀘어에 빵집을 냈다. 3층짜리 이 빵집은 한인교포나 한국인 관광객이 아닌 미국인 등 외국인을 상대로 한 파리바게뜨의 첫 외국 점포다.ⓒ연합뉴스

SPC 美 법인 3곳, 최고액인 137억원 조달

가장 많은 대출금을 끌어쓴 기업은 SPC 그룹의 파리바게뜨였다. 뉴저지주에 있는 파리바게뜨 미주법인(PARIS BAGUETTE AMERICA INC)은 2번에 걸쳐 총 966만 달러(111억원)를 PPP를 통해 조달했다. 작년 4월에 766만 달러, 올 3월에 200만 달러를 각각 지원받았다. 해당 대출금 규모는 PPP를 신청한 동종업계 2만7000여개 기업과 비교해도 제일 크다.

SPC 그룹은 미주법인 외에도 뉴저지주에 냉동식품 도매 회사 ‘파리바게뜨 USA(PARIS BAGUETTE USA)’와 매장 관리 회사 ‘파리바게뜨 본두(PARIS BAGUETTE Bon Doux)’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이들 회사도 지난해 4월 PPP로 각각 114만 달러, 111만 달러를 받았다. 모두 합하면 파리바게뜨 미국 지사의 PPP 대출금은 총 1191만 달러(137억원)에 이른다.

PPP 대출금은 직원 급여로 75% 이상을 사용할 경우 갚지 않아도 된다. PPP 제도 자체가 중소기업의 고용 안정을 위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현지에서는 ‘묻지마 대출’이란 지적도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바게뜨 미주법인의 경우 대출금 전액을 인건비로 지출하겠다고 당국에 보고했다. 이에 따라 작년 4월 지원받은 766만 달러는 ‘전액 탕감 또는 상환(Paid in Full or Forgiven)’된 것으로 나타났다.

파리바게뜨는 2005년 미국에 진출했다. 현재 뉴욕,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등 주요 도시에 90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미국 내 법인은 파리바게뜨 미주법인과 USA∙본두를 포함해 총 6개다. SPC 그룹에 따르면, 이들 법인의 매출액은 2017년 1087억원, 2018년 1551억원, 2019년 1675억원으로 점차 늘었다. 코로나19가 퍼진 2020년 매출액은 1164억원으로 급감했다. SPC 그룹 관계자는 “뉴욕 맨해튼의 경우 쇼핑몰 전체가 폐쇄돼 입점해 있는 가게가 아예 영업을 못 했다”고 설명했다.

파리바게뜨 다음으로 PPP 대출금을 많이 받은 기업은 대한항공이다. LA에 지사를 둔 대한항공은 작년 4월 610만 달러(70억원)의 대출금을 받았다. 회사 측은 이 역시 파리바게뜨와 마찬가지로 전액 인건비에 쓰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대출금을 용처대로 사용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미국 정부 당국이 해당 대출금에 대해 ‘진행 중인 대출(Ongoing Loan)’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3월 사업보고서를 통해 610만 달러를 지원받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상황의 회복이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거나 항공 수요의 회복 속도∙정도에 따라 자산과 부채를 정상적인 영업 활동을 통해 장부금액으로 회수하거나 상환하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70억원 수혈 대한항공 “상환 못 할 수도”

철강업계 거물이자 국내 40위권 안에 드는 세아그룹도 PPP에 손을 빌렸다. 그룹 산하 세아제강지주의 미국 법인 세아스틸USA(Seah Steel USA)는 작년 6월에 386만 달러, 올 1월에 200만 달러를 당겨왔다. 총 586만 달러(67억원)로 파리바게뜨와 대한항공에 이어 3번째로 큰 규모다.

세아스틸USA는 2016년 세아제강이 미국 휴스턴의 철관 제조업체를 인수해 만든 생산기지다. 세아제강은 이 회사에 약 280억원을 들여 유정용 철관 제조라인을 지었고, 지난해 초 생산에 돌입했다. 그런데 곧 코로나19 사태와 맞닥뜨리며 불확실성이 커졌다.

그 밖에 롯데호텔 괌(Lotte Hotel Guam∙283만 달러), 롯데면세점 괌(Lotte Duty Free Guam∙172만 달러), 두산중공업 DTS(Doosan Turbomachinery Services∙221만 달러), 두산공작기계 아메리카(Doosan Machine Tools America∙203만 달러) 등 롯데∙두산그룹의 미국 계열사도 PPP 수혜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중 두산공작기계는 2016년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에 인수된 이후 영업이익이 2년 사이 1900억원 정도 치솟았다. 그러다 2018년 미∙중 무역분쟁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며 하락세로 돌아섰다. 지금은 새로운 인수자를 찾는 중이다.

호텔롯데가 운영하는 롯데호텔∙롯데면세점 괌은 지역 특성상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관광업은 괌의 경제 기반을 받치는 주축이다. 괌 대학교(UOG)는 지난해 입도객이 2019년에 비해 76% 급감했다고 분석했다. 그 영향으로 호텔롯데의 전체 매출도 2019년에 비해 반토막났다. 영업손실은 4976억원을 기록했다.

 

◎ PPP 대출이란?

미국 내 중소기업만 신청 가능…일각에서는 “묻지마 대출” 지적도

지난해 3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 치료와 안정 및 경제안보 법률안(CARES ACT)’에 서명했다.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해 대규모 경기 부양책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그 규모는 2조2000억 달러(2510조원). 그해 미국 연방정부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액수로, 역대 미국 경기 부양책 중 최대 규모다. 그 일환으로 시작된 게 PPP다.

미국 기업은 PPP를 통해 2년 간 최대 1000만 달러의 무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용처는 인건비와 부동산 담보대출 이자, 월세, 공공요금 등으로 제한돼 있다. 용처대로 전액 사용하면 대출금을 갚지 않아도 된다. 다 쓰지 못한 대출금은 갚아야 하지만 상환이율이 1%로 낮다. 말이 대출금이지 세부 조건을 따져보면 지원금 성격이 더 강하다.

PPP는 관계사 등을 포함해 직원 수가 500명 이하인 소규모 사업체만 신청할 수 있다. 또 신청일 이전 2년 동안 순이익이 500만 달러(57억원)를 넘으면 안 된다. 사업장은 미국에 있어야 한다. 삼성과 같은 글로벌 대기업의 미국 지사는 혜택을 받기 힘든 구조다. 지난해 4~5월 1차 PPP가 진행됐고, 2차는 올해 3~4월 이뤄졌다. 지금까지 약 1180만 건의 대출이 승인됐다. 지급된 대출 금액은 총 7990억 달러(911조원)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