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만에 법정 선 전두환…역시나 ‘묵묵부답’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1.08.0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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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만에 네번째 광주법정 출석…부인 이순자씨도 동행
“발포명령 인정하느냐, 광주시민에게 사과 용의는” 질문에 침묵
1심, 고(故) 조비오 신부 ‘사자 명예훼손’ 혐의 유죄 판결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군부의 헬기 사격 사실을 부정하며 목격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 전 대통령 전두환(90)씨가 9일 또다시 광주의 법정에 섰다. 이번에도 발포 지시 여부 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전씨는 이날 오후 광주에서 열린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 출석했다. 지난해 11월 1심 재판 이후 9개월 만의 법정 출석이다. 

전씨는 이날 오전 8시 25분 부인 이순자 씨와 함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출발해 낮 12시 43분 광주지법 법정동에 도착했다. 검정색 대형 세단 뒷자리에서 내린 전씨는 회색 정장 차림에 마스크를 착용했으나 이날은 예전 공식석상에 나왔을 때와 다르게 눈에 뜨게 수척해 보였다. 경호 인력의 부축을 받으며 이동해야 할 정도로 노쇠한 모습도 역력했다.

부축 받으며 법정 들어서는 전두환.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군부의 헬기 사격 사실을 부정하며 목격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9일 오후 항소심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경호인력의 부축을 받으며 광주지방법원에 입장하고 있다. 전씨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부축 받으며 법정 들어서는 전두환.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군부의 헬기 사격 사실을 부정하며 목격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9일 오후 항소심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경호인력의 부축을 받으며 광주지방법원에 입장하고 있다. 전씨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지난 1심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를 찾은 것을 포함해 이날은 전씨의 4번째 광주행이다. 전씨는 2018년 8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진행된 1심 재판에서 선고기일 등 참석을 위해 총 3차례 광주를 방문했다.

그간 재판 출석 당시, 취재진의 질문을 번번이 무시해 왔던 전씨가 이날 광주 법정 출정에서는 행여나 어떤 말을 남길지 주목됐다. 하지만 역시나였다. 그는 “발포 명령을 부인하느냐”, “광주시민과 유족에게 사과할 마음이 없느냐”고 취재진이 물었지만 묵묵부답으로 법정으로 들어갔다. 광주 법정에 출석한 전씨가 광주 시민들에게 남긴 말은 “왜 이래”라는 한마디가 유일하다. 

2019년 3월11일 법원에 도착한 전씨를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광주시민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 “5·18발포를 인정하느냐” 등의 질문을 하자 “왜 이래”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시 전씨는 재판 시작 22분 만에 조는 모습을 보였다. 

5월 어머니회 한 회원은 “사람들은 보통 나이가 들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참회하는 게 일반적인데, 전두환씨는 아직까지 광주시민에게 사과의 말, 한 마디가 없다”고 성토했다.   

8월 9일 오후, 광주 5월 어머니회 회원들이 광주고등법원 동쪽 출입구 난관에서 전두환(90)씨가 법정에서 나오기를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한 회원은 “사람들은 보통 나이가 들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데, 전두환씨는 아직까지 광주시민에게 참회의 말, 한 마디가 없다”고 성토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8월 9일 오후, 광주 5월 어머니회 회원들이 광주고등법원 동쪽 출입구 난관에서 전두환(90)씨가 법정에서 나오기를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한 회원은 “사람들은 보통 나이가 들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데, 전두환씨는 아직까지 광주시민에게 참회의 말, 한 마디가 없다”고 성토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군부의 헬기 사격 사실을 부정하며 목격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 전 대통령 전두환(90)씨가 9일 또다시 광주의 법정에 섰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일대 도로와 인도 사이를 차량으로 바리케이드를 치는 등 질서를 유지했으나 별다른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광주지방법원 후문 도로변에 늘어선 경찰 버스. ⓒ시사저널 정성환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군부의 헬기 사격 사실을 부정하며 목격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 전 대통령 전두환(90)씨가 9일 또다시 광주의 법정에 섰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일대 도로와 인도 사이를 차량으로 바리케이드를 치는 등 질서를 유지했으나 별다른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광주지방법원 후문 도로변에 늘어선 경찰 버스. ⓒ시사저널 정성환

전씨는 법정동 2층 내부 증인지원실에서 대기하다 법정에 출석했다. 광주지법 형사1부(김재근 부장판사)는 오후 2시부터 201호 법정에서 전씨를 상대로 한 피고인 본인 확인을 위한 인정신문을 거친 후 전씨 측이 신청한 증거(증인·검증) 채택 여부를 정했다.

전씨의 세차례 출석 때와는 달리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5.18 관련단체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지난 재판 출석 당시에는 전씨가 별다른 입장표명도 없이 광주지법을 빠져나가는 동안 5·18피해자와 광주 시민들은 “전두환을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일부 시민들은 전씨 측 차량에 계란과 밀가루를 던지는 등 크고 작은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이날 경찰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일대 도로와 인도 사이를 차량으로 바리케이드를 치는 등 질서를 유지했다. 광주지법 일대는 지난 2018년부터 진행된 법원별관 신축공사 가림막에 더해 경비를 위해 이중 펜스가 설치됐다. 3m가 넘는 공사 가림막에 골목마다 경찰버스와 경력이 배치돼 이중, 삼중 경비가 이뤄진 것이다.

이처럼 경찰이 대대적으로 경비를 펼치면서 전씨는 일부 5.18단체 회원과 시민들을 따돌리고 광주지법 내부로 진입해 별다른 충돌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에 일부 시민들은 수십 대의 경찰버스와 함께 골목마다 배치된 경찰들의 ‘철통 경비’를 규탄하며 “누구를 위한 경비이냐”며 성토했다.

전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고 조비오 신부의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조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1980년 5월 21일과 27일 500MD·UH-1H 헬기의 광주 도심 사격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전씨에게 명예훼손의 고의성이 있었다고 판단,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전씨는 1심에서는 인정신문과 선고기일 등 총 3차례 법정에 출석했으나, 지난 5월 시작된 항소심 재판에 줄곧 재판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가 피고인 없이 재판할 수 있으나, 불이익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자 전씨 측은 태도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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