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독자 출마'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서면서 대선 판도도 출렁이게 됐다. 안 대표가 국민의힘과의 합당 최종 결렬을 선언함에 따라, 움츠러들었던 '제3지대' 영역도 한층 확장될 전망이다. 대권 행보에 점차 속도를 내고 있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안 대표가 외곽에서 반경을 넓힌다면 국민의힘도 중도 확장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대권 주자들과 이준석 대표 간 갈등으로 내홍이 격해진 시점에 합당이 물거품되면서 제1야당의 전략 수정도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
김동연과 연대 가능성 열어둔 안철수
안 대표는 16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국민의힘과의 합당 논의가 최종 결렬됐다고 공식 선언했다. 국민의힘이 제시한 합당 안으로는 정권교체 시너지를 낼 수 없다는 것이 안 대표가 밝힌 합당 파기의 표면적 이유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안 대표가 예상대로 독자 출마 수순을 밟는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한 상태에서는 합당 후 자신이 경선에 나서더라도 최종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이란 현실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내 지지기반이 전무하고, 윤 전 총장이 야권 후보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점도 안 대표로서는 불리한 구도다.
안 대표는 이날 회견에서 정권교체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며 독자 출마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또 제3지대에서 대선 출마를 가시화 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의 연대 가능성도 시사했다. 안 대표는 김 전 부총리와 손을 잡게 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지금 어떤 계획이나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다. 다만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고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진 분이라면 어떤 분이라도 만나서 의논할 자세가 돼 있다"고 답했다.
안 대표와 김 전 부총리의 연대가 불발된다 하더라도 제3지대의 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정권교체를 위해선 중도 확장이 필수적인 국민의힘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안 대표의 지지율은 5% 안팎이지만, 그가 본격 대권 준비에 나서고 여야가 최종 후보를 선출한 뒤에도 여전히 '제3지대' 후보로 입지를 다진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야권의 무게 중심이 '제1야당'에서 제3지대로 옮겨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현재 제1야당의 강력한 대권주자인 윤 전 총장이 각종 설화나 논란에 얽혀있고, 가족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점도 이런 위기감을 더욱 높인다.
무당층을 비롯한 부동층과 중도 표심이 흩어질 수 있다는 점도 국민의힘에게는 부담스런 부분이다. 이준석 대표와 국민의힘 대권 주자 간 기싸움이 계파 갈등으로 이어진 데다, 후보 선출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이 갈등은 더 격화할 수 있어서다.
일단 안 대표는 '대선 후보가 되려면 선거 1년 전 당 대표직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국민의당 당헌·당규 개정 작업에 착수하는 등 구체적인 출마 준비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가 2022년 대선에 출마하면 2012년과 2017년에 이어 세번째 도전이다.
국민의힘과 합당을 없던 일로 만든 안 대표는 제3지대에서 세력 확장을 도모하며 대선 막판에 국민의힘과 후보 단일화 협상에 나설 확률이 높다. 안 대표가 시간을 끌며 '캐스팅보트'로서 영향력을 키우는 전략을 구사할 경우, '1대1' 구도를 형성하려 했던 국민의힘도 끝까지 '제3 후보'라는 변수와의 싸움을 벌여야 한다.
'안철수 책임론' 강조하는 국민의힘
일단 국민의힘은 안 대표의 결정을 비판하며 중도층 이탈 등 후폭풍 차단에 나섰다. 합당 번복에 대한 책임론을 안 대표에 지우며 확장성에도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양준우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날 구두논평을 내고 안 대표의 합당 최종 결렬 선언에 대해 "일방적인 결정을 내린 것에 안타까움을 표한다"며 "야권 통합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고 직격했다.
양 대변인은 "(국민의당 측의) 과도한 지분 요구, 심지어 당명 변경과 같은 무리한 요구가 나왔으나 모두 양보하고 양해하는 자세로 임했다"며 "하나의 요구를 수용할 때마다 더 큰 요구들이 추가됐던 게 최종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어느 쪽이 통합에 더 절실했는지, 어느 쪽이 한 줌의 기득권을 더 고수했는지는 협상 과정을 지켜본 국민들께서 아실 것"이라고 국민의당 책임론을 꺼내들었다.
양 대변인은 "서울시장 재보선 때 정치적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달라졌다고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뒤집어버린 (안 대표) 행동에 유감을 표한다"며 "국민의당과의 합당은 재보선 당시 안 대표가 먼저 제안한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정권 교체라는 공통의 목표를 두고 앞으로의 행보에는 함께할 것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