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절규 뒤로 하고…차량 4대에 현금 싣고 도망친 아프간 대통령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8.1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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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니 대통령, 탈레반 진격해오자 재빨리 국외로 도피
현금 들고 빠져나간 뒤 페이스북으로 성명 발표해 빈축
8월16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미군 C-17 수송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따라 이동하자 아프간 시민들이 수송기를 따라가거나 기체에 매달려 있다. 현지 언론은 이날 비행기 바퀴 근처에 숨어 탑승했다가 2명이 추락사하는 일도 빚어졌다고 전했다. ⓒ AP 연합
8월16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미군 C-17 수송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따라 이동하자 아프간 시민들이 수송기를 따라가거나 기체에 매달려 있다. 현지 언론은 이날 비행기 바퀴 근처에 숨어 탑승했다가 2명이 추락사하는 일도 빚어졌다고 전했다. ⓒ AP 연합

탈레반이 사실상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가운데 아슈라프 가니(72)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차량 4대 분에 달하는 다량의 현금을 갖고 도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니 대통령은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향해 빠른 속도로 진격해오자, 엄청난 양의 현금을 갖고 아프간을 빠져나갔다고 16일(현지 시각) 스푸트니크 통신이 주아프간 러시아대사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대사관 대변인인 니키타 이센코는 "(전날) 정부가 붕괴할 때 가니 대통령은 돈으로 가득한 차 4대와 함께 탈출했다"고 전했다. 그는 "돈을 (탈출용) 헬기에 실으려 했는데 모두 들어가지 않아 일부는 활주로에 남겨둬야 했다"고 덧붙였다.

가니 대통령은 지난 15일 탈레반이 카불을 포위한 뒤 진입을 시도하자 부인과 참모진 등을 데리고 급히 도피했다. 가니 대통령의 정확한 행선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알자지라 방송은 가니 대통령이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를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은 아프간 당국과 가까운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그가 현재 오만에 있다고 전했다. 이란 메흐르 통신은 가니 대통령의 현재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최종적으로 미국을 향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아슈라프 가니(72)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에 의해 수도 카불이 함락되기 직전 엄청난 양의 현금을 갖고 국외로 도피했다고 스푸트니크 통신이 8월16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그의 도피 행선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25일 미국을 방문한 가니 대통령의 모습 ⓒ AP 연합
아슈라프 가니(72)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에 의해 수도 카불이 함락되기 직전 엄청난 양의 현금을 갖고 국외로 도피했다고 스푸트니크 통신이 8월16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그의 도피 행선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25일 미국을 방문한 가니 대통령의 모습 ⓒ AP 연합

탈레반 재집권을 앞두고 재빨리 외국으로 달아난 가니 대통령은 뒤늦게 페이스북을 통해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전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탈레반은 카불을 공격해 나를 타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며 "학살을 막기 위해 떠나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만약 자신이 아프간에 머물렀다면 수많은 애국자가 순국하고 카불이 망가졌을 것이라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가니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아프간 국민은 물론 정부 내에서도 비판이 터져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미 그를 '전 대통령'이라고 칭하며, 대혼란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가니 대통령은 문화인류학 학자 출신으로 세계은행 등에서 근무했다. 그는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자 아프간에 귀국해 재무부 장관을 맡았다. 이후 조세 체계 확립 등 아프간 정부의 개혁을 주도했다. 카불대 총장을 역임한 뒤 2006년에는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2014년 대선에 출마, 승리한 가니 대통령은 2019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불법 선거 논란이 일었고, 이 때문에 선거 결과에 불복한 경쟁자와 권력을 일부 나눠 갖기도 했다.

가니 대통령이 국민을 버리고 빛의 속도로 국외로 빠져나가면서 그가 과거에 했던 발언도 주목받고 있다. 그는 2005년 지식 컨퍼런스(TED) 강연에서 "아프간 남성의 91%가 하루에 라디오 채널 3개 이상을 듣는데 그들에게 세계(의 이슈)가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그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세계로부터) 버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로부터 16년 후 아프간 국민들을 뒤로 하고 홀로 나라를 떠난 대통령으로 남게 됐다.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 조직원들이 15일(현지 시각) 수도 카불에 위치한 대통령궁을 장악한 모습.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은 이날 대통령궁도 수중에 넣은 뒤 "전쟁은 끝났다"며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앞서 이날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한 직후 국외로 도피했다. ⓒ AP 연합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 조직원들이 8월15일(현지 시각) 수도 카불에 위치한 대통령궁을 장악한 모습.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은 이날 대통령궁도 수중에 넣은 뒤 "전쟁은 끝났다"며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앞서 이날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한 직후 국외로 도피했다. ⓒ 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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