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걸음마 뗀 韓 기업 위에 훨훨 나는 아마존·테슬라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1.09.01 10:00
  • 호수 1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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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조스·머스크·브랜슨 등 맞붙는 ‘스타워즈’
한화·현대차 등 국내 기업은 발만 ‘동동’

민간 우주개발 시대가 열릴 날이 머지않았다. 시작은 지난 7월11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민간항공사 버진그룹 창업자 겸 회장인 리처드 브랜슨이 계열사 버진갤럭틱이 만든 우주비행선 ‘VSS 유니티’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면서부터다. AP통신에 따르면 500여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VSS 유니티는 모선(母船)인 ‘VMS 이브’에 매달려 미국 뉴멕시코주 스페이스포트 우주센터에서 날아올랐다가 1시간 뒤 무사히 귀환했다. 이날 비행에는 브랜슨과 버진갤럭틱 소속 조종사 2명, 임원 3명이 참여했다. 고도 55마일(88.5km)까지 도달해 약 4분간 중력이 거의 없는 상태만 체험한 뒤 귀환했기에 브랜슨의 이날 우주여행은 국제적으로 공인받지 못한다. 하지만 개발 초기부터 우주여행을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실천한 만큼 민간 우주산업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우주산업은 최근 세계 부호들이 앞다퉈 선점하려는 분야다. 현대판 스타워즈로 불리는 이 시장에서 영국의 괴짜 경영자 브랜슨이 포문을 열자마자 9일 뒤인 7월20일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도 보란 듯이 우주여행에 성공했다. 베이조스를 태운 뉴셰퍼드는 이날 미국 텍사스 서부 사막지대에 마련된 발사장을 출발해 10분간 초고도 하늘을 난 뒤 지구로 귀환했다. 베이조스를 포함해 4명의 민간인을 태운 비행캡슐은 모선인 뉴셰퍼드에서 떨어져 나와 지구와 우주의 경계인 카르만라인(Karman Line·고도 100km)을 넘어섰다. 로이터통신 등은 이날 속보를 통해 “베이조스가 민간 우주여행 시대를 여는 역사적인 비행을 했다”고 보도했다.

아마존 설립자 제프 베이조스(왼쪽 두 번째)가 7월20일 (현지시간) ‘블루오리진’의 ‘뉴셰퍼드’ 로켓을 타고 우주 여행을 마친 뒤 탑승자들과 함께 자축하고 있다.ⓒAFP 연합

리처드 브랜슨, 최초의 민간 우주비행 성공

항공운송업이 주력인 버진그룹이 우주여행을 한 명당 25만 달러(약 2억8000만원) 상당의 럭셔리 관광상품으로 만들 심산이라면, 제프 베이조스와 일론 머스크(테슬라 창업주)는 우주산업을 하나의 기술산업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베이조스와 머스크는 그룹 내에 각각 블루오리진과 스페이스X라는 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머스크와 스페이스X는 오는 9월 중 일반인 4명을 태우고 지구를 도는 궤도비행을 준비 중이다.

내연기관 회사들의 진출도 발 빠르다. 독일 자동차기업 포르쉐 지주사인 포르쉐SE는 지난 7월28일 저비용 위성발사 스타트업인 이자르(ISAR)에 총 7500만 달러(약 867억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독일 최대 자동차 메이커 폭스바겐의 지분 53.3%를 보유한 포르쉐는 이를 위해 벤처캐피털인 HV캐피털, 사모펀드인 롬바드오디에와 손잡았다. 포르쉐가 선택한 이자르는 2018년 설립된 유럽 스타트업으로 올해 5월 유럽우주국(ESA)으로부터 인공위성 발사계약을 따내 화제를 모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유럽 언론들은 이자르가 스페이스X·블루오리진 등 미국 우주기업과 경쟁하는 최초의 유럽 기업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포르쉐SE는 보도자료를 통해 “우주에 좀 더 저렴하고 유연하게 접근하는 기술력은 전통 산업을 혁신하는 핵심요소”라고 투자 이유를 설명했다. 자동차산업과 로켓을 기반으로 한 항공우주산업의 연계성을 높이 평가했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도 괴짜 경영자 호리에 다카후미(堀江貴文)가 우주기술 벤처기업 인터스텔라 테크놀로지(IST)를 세우는 등 관련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라이브도어 CEO(최고경영자) 출신인 호리에는 《가진 돈을 모두 써라》 《모든 교육은 세뇌다》라는 파격적인 제목의 책을 펴내면서 일본 내에서 화제를 모았다. IST가 자체 개발한 모모 5호(MOMO5)는 작년 6월 추진체를 띄웠지만 발사 1분 만에 엔진이 멈추면서 곧장 바다로 추락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일본 내 실망감도 상당했지만 IST와 호리에는 민간 우주시장에 필요한 기술력을 충분히 얻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이르면 올가을에 또다시 로켓을 쏘아올린다는 계획이다.

지금까지 우주산업은 정부 주도형 산업이었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이들 산업에 각국 정부가 조금씩 손을 떼고 있는 틈을 민간이 채우는 모습이다. 글로벌 투자업계에선 정부 주도형 항공우주산업을 ‘올드 스페이스’, 민간 주도형은 ‘뉴 스페이스’라고 부른다. 그중 뉴 스페이스의 경우 민간 자본을 바탕으로 자율경쟁하기 때문에 혁신적이고 개발 속도가 빠르다. 정의훈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지난 7월21일 펴낸 보고서(‘민간 우주여행 시대의 개막’)에서 “지금까지는 저궤도 위성통신 등 무인 우주사업이 활발히 진행됐으나, 이제 그 영역이 유인으로까지 확장되고 있기 때문에 우주산업의 발전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우주산업 스타트업인 애스트로스케일은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고장난 위성 등 일명 우주 쓰레기 등을 청소하겠다는 사업계획서를 들고나와 성공적인 투자를 이끌어내고 있다. 각종 우주 폐기물을 처리하는 우주 청소부 기술로 지난해까지 약 1억9100만 달러(약 22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미국·유럽 기술기업들은 저궤도 위성을 통해 우주에 신개념 통신망을 깐다는 계획이다. 실패 가능성이 크지만, 성공 시 선점효과 또한 엄청나게 크다. 글로벌 투자기업 아크 인베스트(ARK Invest)는 올해 발간한 《빅 아이디어(Big Idea) 2021》에서 15가지를 유망산업으로 꼽았는데 그중 하나가 ‘궤도 위성(Orbital Aerospace)’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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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5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우주전략보고회에서 신현우 한화 에어로스페이스 대 표가 ‘스페이스 허브를 통한 민간우주사업 확대 방향’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한·미 미사일 지침 등 제한 이제 막 풀려

반면 이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의 실적은 눈에 띄지 않는다. 관련 분야에 뛰어든 스타트업, 벤처기업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위성 개발 기술이 10위권에 있다는 것을 위안 삼아야 할 상황이다. 무엇보다 대기업들의 투자가 지지부진하다. 한화가 인공위성 제조회사인 쎄트렉아이 지분을 인수한 것이 사실상 유일하다. 이 밖에도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시스템은 8월13일 영국 저궤도 위성통신기업 원웹의 지분 8.81%를 3억 달러(약 3465억원)에 인수했다. 현대차·한화·대한항공 등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도심항공교통(UAM)은 민간 항공우주산업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우리가 이 분야에서 제대로 된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한·미 미사일지침과 같은 거대한 장벽이 자리 잡고 있어서였다. 1979년 미국에서 미사일 기술을 이전받는 대신 사거리와 탄두 중량을 제한한 한·미 미사일지침은 최근에야 완전 폐기됐다. 정부는 관련 지침이 폐지되면서 장거리 미사일, 군사위성 발사용 로켓 등 다양한 발사체를 만드는 게 가능해졌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한·미 미사일지침만을 핑계 삼기에는 관련 산업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이 분야에서 사실상 민간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가 최근 국가우주위원회를 상시 지원하는 사무기구를 설치하는 등 우주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키로 결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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