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사태로 안갯속에 빠져든 中 일대일로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28 10:00
  • 호수 1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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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핵심
美 철수·탈레반 점령으로 사업 ‘급제동’ 우려

2021년 8월15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하면서 세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붕괴와 미군 철수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힘의 공백과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주변 국가들은 사태의 영향을 예의 주시하면서 자국에 미칠 혼란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가장 많은 관심은 중국에 쏠리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이 향후 탈레반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대처할 것인지에 따라 변화 크기와 속도는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일단 카불에 대사관을 유지하기로 하고 탈레반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탈레반 대표들과 지난 7월말 톈진 회동에서 다양한 사항을 논의했다. 당시 탈레반은 중국 신장 자치구의 안정을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했으며, 중국 역시 아프가니스탄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EPA 연합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 탄을 탈출하려는 아프간인들이 8월23일(현지 시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공항 주변 에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EPA 연합

中-탈레반, 겉으로는 우호적 관계 유지

하지만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역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일대일로 사업은 최근 관련 국가의 부채 급증과 이를 둘러싼 정치적 혼란, 반중 정서 확산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정세 급변이 일대일로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서아시아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은 중앙아시아를 대상으로 하는 중국의 일대일로(BRI) 프로젝트의 핵심 입지라 할 수 있다. 정치 상황이 안정되고 필요한 기반 시설이 단계적으로 갖춰지면 아프가니스탄은 중앙아시아 내부의 무역 허브로 발전할 수 있으며, 중국은 이러한 이점을 활용하기에 제일 유리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대상으로 한 일대일로 사업을 조심스럽게 추진해 왔다. 2016년 아프가니스탄과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과 관련한 양국 정부 간 최초의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디지털 실크로드, 특수 철도운송 프로젝트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기도 했다. 중국의 아프가니스탄 접근은 크게 지하자원을 비롯한 아프가니스탄 자체에 대한 투자와 더불어 인접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 및 에너지망의 다양화 측면에서 이뤄지고 있다. 중국은 이미 탈레반 측과 기반시설 투자와 관련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중국과의 협력에 모호한 태도를 보였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가운데 최대 핵심은 중국의 최대 우방인 파키스탄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620억 달러 규모의 경제회랑(CPEC) 사업이다. CPEC 사업은 파키스탄 서남단의 과다르항과 중국의 카슈가르를 도로와 파이프라인으로 연결하며, 이 경로를 따라 경제자유구역을 비롯한 산업단지 등 경제 발전의 거점과 기반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사업의 시작점인 과다르항은 말라카해협을 통과하지 않고 중동의 원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거점인 동시에 중국 서부 및 중앙아시아 지역의 자원과 상품들이 외부로 이동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중국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만들어진 항구가 역할을 하면서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중앙아시아에서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이곳에 이르는 천연가스 터미널 역할을 해야 하는데 현재까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것은 아프가니스탄의 정세 불안 때문이었다. 만약 탈레반 측이 초기의 혼란을 제압하고 안정을 달성한다면 중국과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을 통해 중앙아시아와 과다르를 연결하는 다양한 노선을 활용할 수 있다. 중국에 아프가니스탄의 안전은 일대일로 사업의 핵심인 CPEC의 성공을 위한 전제조건인 것이다.

중국과 아프가니스탄은 좁은 와칸회랑을 통해 국경을 접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 및 지형적 조건을 고려할 때 일각에서 생각하는 것과 같이 와칸회랑을 가로지르는 철도 및 도로망 개설, 이를 통한 교역 확대와 지하자원 반출 같은 가시적 변화를 이끌어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2019년 와칸회랑 서쪽에서 중국 국경으로 향하는 도로 건설공사가 시작됐지만 최소 10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으로서는 일단 아프가니스탄 카불과 파키스탄의 페샤와르 및 이슬라마바드를 연결하는 기존 도로망을 확충하고 이를 카람코라 하이웨이와 연결하는 방안을 우선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통해 아프가니스탄 광물자원과 시장에 대한 접근과 이용이 가능하게 될 경우 와칸회랑과 인접 지역을 통한 도로 및 철도 건설 등 좀 더 직접적인 연결에 나설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안정은 중국에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많은 장점을 제공해 준다. 기존의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연결되는 가스관 이외에 아프가니스탄을 경유하는 새로운 가스관을 설치할 수 있으며, 이란으로부터 아프가니스탄을 지나 중국으로 향하는 송유관도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추진되다 중단된 투르크메니스탄-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인도 가스관 건설사업이 중국의 투자로 재개돼 가동에 들어갈 경우 중국은 경쟁국인 인도의 에너지 안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해상을 통한 원유 및 가스 수송 비중을 낮춤으로써 긴장관계가 높아지는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아프칸 안정 위해 넘어야 할 산 많아

이러한 장밋빛 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도 아프가니스탄이 안정되는 것이 중요하다.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했지만 내전이 촉발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는 극심한 혼란으로 연결될 것이다. 설령 탈레반이 반군을 제압하고 안정을 유지하더라도 중국이 투자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신뢰성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탈레반은 과거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러한 수준의 변화가 과연 가능할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탈레반의 가시적 변화 없이는 중국의 진출은 매우 신중하고 느리게 이뤄질 것이며, 변화보다는 안정에 주안점을 둘 것이다.

중국은 일단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 접근할 것이며, 필요할 경우 파키스탄 등 탈레반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국가들을 통해 의견을 전달하는 방식을 선호할 것이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의 계속적인 혼란은 결국 파키스탄의 혼란으로 연결되며 이는 CPEC 프로젝트의 위기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조기 안정을 위해 직접 개입과 영향력 확대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오랫동안 제국의 무덤으로 유명했으며 최근 미군의 철수는 다시 한번 이를 증명했다. 중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제국의 무덤이 아닌 아프가니스탄 정상화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시간이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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