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변종 ‘생활형 숙박시설’, 디벨로퍼의 노다지 되나
  • 노경은 시사저널e. 기자 (nice@sisajournal-e.com)
  • 승인 2021.09.02 07:30
  • 호수 1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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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수·청약통장·가점 ‘3無’에 대출도 수월
틈새상품으로 실거주·투자 수요 쏠림 심화

정부의 주택시장 규제 강화로 부동산 시장의 뭉칫돈이 새로운 상품으로 향하고 있다. 생소하기만 했던 도시형 생활주택, 지식산업센터, 생활형 숙박시설, 아파텔이라는 명칭은 각각 도생, 지산, 생숙 같은 줄임말로 귀에 익숙해질 정도로 시장 규모가 커졌다. 이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끄는 건 생활형 숙박시설이다. 이달 초 비수도권인 충북 청주시에서 현대엔지니어링이 분양한 한 생활형 숙박시설에는 전국 각지에서 청약자들이 몰리며 평균 청약경쟁률 862대 1을 기록했다. 160호 실 모집에 13만8000여 건의 청약접수가 이뤄진 것이다.

애초엔 아파트 변종에 불과한 듯 존재감이 미미했지만 갈 곳 잃은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강렬해지며 부동산 시장의 대표적 틈새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생활형 숙박시설에 수요 쏠리는 배경 생활형 숙박시설이 최근 만들어진 상품은 아니다. 호텔과 오피스텔을 결합한 주거 형태로 일명 레지던스로 알려져 있다.

8월4일 서울 송파구 장지동 신규택지지구인 성남 복정1지구 사전청약 접수처에서 시민들이 청약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8월4일 서울 송파구 장지동 신규택지지구인 성남 복정1지구 사전청약 접수처에서 시민들이 청약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주택법이 아닌 건축법 적용 받아 대출 수월

생활형 숙박시설이 최근 들어 갑자기 부상한 것은 주택법이 아닌 건축법의 제한을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당연히 주택이 아니기 때문에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는다. 비주택으로 간주되면서 정부의 강력한 주택담보대출 규제에서도 자유로워 매입 시 분양금액의 60~70%가량 대출이 가능하다. 청약통장이 없어도, 거주지가 아니어도 전국 각지에서 청약이 가능하다. 심지어 계약금을 낸 이후부터는 전매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취사는 가능한 주택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 모든 게 아파트에서는 막혀 있다. 주택 수로 산정될 때마다 취득세,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등 각종 세율이 오르며 큰 부담을 져야 한다. 사업장 위치 및 총 분양가에 따라 상이하지만 서울 내 아파트를 분양받을 땐 대출이 아예 안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청약가점은 지나치게 높아 3040세대가 당첨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전매도 할 수 없다.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이 아니면 청약 순위에서 밀리거나 청약이 아예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현재 서울의 주택 공급량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니 내 몸 하나 뉘일 곳 찾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주택 형태를 띠면서도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생활형 숙박시설에 투자 수요가 몰리는 것이다. 그 덕에 올 들어 분양했던 생활형 숙박시설들은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올해 3월 롯데건설이 부산시 동구에 분양한 롯데캐슬 드메르는 1221가구 모집에 43만여 건의 청약이 접수돼 평균 35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서울 여의도에서 분양한 라포르테 블랑 여의도 역시 최고 경쟁률 140대 1로 청약을 마감했다.

문제는 수요가 쏠리다 보니 분양가도 터무니없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생활형 숙박시설은 주택이 아니어서 정부의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는다. 시행 사업자가 정하는 게 곧 가격이 된다. 최근 롯데건설이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서 청약을 마친 르웨스트의 분양가는 전용 111㎡ 기준 최고 20억9400만원에 달한다. 국민평형인 전용 84~88㎡는 14억~17억원대, 소형 평수인 49~63㎡도 8억~9억원대다.

지난해 마곡지구에서 분양한 마곡9단지 84㎡ 아파트 최고분양가가 7억원을 넘지 않았던 점에 견주어보면 두 배 이상 비싸다. 마곡지구 최고가 아파트인 마곡13단지 힐스테이트마스터 84㎡의 최고 실거래가인 15억1000만원보다 2억원 이상 높고 웬만한 강남권 아파트 분양가와 맞먹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청약가점이 낮아 아파트 청약 문턱이 높게 느껴지는 젊은 층이나 내 집 마련이 절실하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이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자자들이 생활형 숙박시설 청약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다.

정부는 생활형 숙박시설에 실수요뿐 아니라 가수요가 너나 할 것 없이 몰리며 불타오르는데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이다. 최근의 극심한 전세난을 달래줄 유력한 상품이어서 규제를 강하게 하자니 전세 시세가 안정될 가능성을 스스로 없애는 꼴이 될 수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생활형 숙박시설 광풍이 부는 것은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낳은 결과라고 지적한다. 주택 수요는 많은데 정부가 대출, 세제, 청약제도 등 주택 부문에 대한 극단적 규제로 수요자들의 손발을 묶자 부동산 생태계가 망가지고 아파트의 다양한 변종이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를 짓기 위한 건설업계와 매수하기 위한 수요층들의 움직임도 급박해지고 있다.

 

규제가 낳은 결과…시행사만 잔칫집 

물론 시행업계는 잔칫집 분위기다. 한 시행업계 관계자는 “요새 디벨로퍼들 사이에서 정부의 규제나 대출 제한은 돌파해야 할 바리케이드 정도라는 말이 돌 정도”라며 “분양만 하면 구름 인파가 몰리다 보니 대출이 끊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뿐, 완판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부담은 없다”고 말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는 아파트를 분양할 때 분양가를 주변 아파트 시세에 맞추라고 하는데 주변에 오래된 구축 아파트밖에 없으면 분양가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결국 건설사는 분양가를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유사주택 유형으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고 신규 아파트 공급은 감소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앞서 언급한 청주의 도시형 생활주택의 경우 청약 당첨자가 발표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웃돈이 8000만원까지 붙어 거래됐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수요자들에게 주택 경기가 침체에 빠지면 생활형 숙박시설은 가격 방어력이 아파트에 비해 낮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규제 허점을 파고들었지만 결국 소비자들이 고가분양이라는 결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생활형 숙박시설의 경우 원칙상 주거용으로는 사용이 불가능하고 장·단기 투숙만 가능하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분양받은 사람은 반드시 숙박업 신고를 해야 하는데 기대와 달리 숙박 임대가 잘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고, 용도 외 목적으로 사용하다 적발되면 징역이나 벌금 등의 제재가 가해지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전문업체가 위탁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운영능력이 검증된 회사인지 따져보는 것도 필요하다. 또 지금은 생활형 숙박시설이 아파트 대비 규제를 덜 받지만 투기 수요가 몰리면 정부가 규제를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정부가 규제 강화 기조에 있는 만큼 투자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면서 “주거형이 아니고 숙박시설이니만큼 오피스텔이나 도시형 생활주택에 투자하듯이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단기 투자일 경우 매도 시 잘 팔리지 않을 리스크까지 유념할 필요가 있어 옥석 가리기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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