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탈레반 사이에 흐르는 ‘훈풍’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29 12:00
  • 호수 1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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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정부 자극하던 ETIM, 이미 실체 없는 조직으로 전락
탈레반도 “다신 지원 않을 것”

8월18일 중국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왕위(王愚) 주아프가니스탄 중국대사와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왕 대사는 “대사관은 네트워크 신호가 불안정하고 가끔씩 정전된다. 밖에서는 총소리도 들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외부와 연결을 유지하고 있다”며 “탈레반이 안전을 보장하기로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왕 대사는 “서구 국가의 대사관 직원들은 모두 카불공항으로 탈출했지만 중국은 정상적으로 대사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구시보’는 왕 대사가 보내왔다며 대사관 옥상에서 휘날리는 중국 국기 사진을 게재했다.

이런 중국대사관의 모습은 미국대사관과는 천양지차였다. 주아프간 미국대사관은 8월16일까지 대형 헬리콥터를 동원해 수천 명을 카불공항으로 실어 날랐다. 대사관 건물 위에서 이륙하는 CH-47 치누크의 사진과 영상은 외신으로 보도됐다. 그야말로 1975년 베트남 사이공(지금의 호찌민)에서 일어났던 헬기 탈출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해당 사진과 영상은 중국 SNS에서도 퍼져 나갔다. 한 동영상은 ‘46년 전처럼 또 헬기로 도망치는 미국’이라는 설명과 1975년 사이공에서의 사진이 덧붙여져 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지난 7월28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오른쪽)이 톈진에서 자국을 방문한 탈레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회담을 가졌다.ⓒXinhua

중국이 미국에 이어 아프간에 뛰어든다?

그러나 일부 외신과 한국 언론에서는 “중국이 ‘제국의 무덤’인 아프간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 근거로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의 존재와 아프간의 광물자원 개발 문제를 꼽았다. 먼저 탈레반이 20년 전처럼 ETIM을 지원하고, 이에 맞서 중국이 군사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ETIM은 위구르족 독립운동단체 중 조직력과 활동력이 가장 강력했다. 1990년대 ETIM은 중국과 다른 나라에서 중국 정부기관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공격을 감행했다.

1998년부터 1999년 말까지 중국 공안 당국은 신장(新疆)위구르족자치구에서 색출작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수백 명의 ETIM 조직원과 교육생, 5000여 점의 총기류와 폭탄 등을 적발했다. 또한 ETIM이 1997년부터 아프간에서 탈레반의 지원 아래 아지트와 훈련캠프를 두고 있는 걸 파악했다. 그 실체는 2001년 알카에다가 일으킨 9·11 테러로 드러났다. 미국은 알카에다를 엄호하던 탈레반 정권을 공격해 무너뜨렸다. 또한 전투에 참가했거나 캠프에서 훈련 중이던 일단의 위구르족을 체포했다. 이듬해 그들을 쿠바의 관타나모 기지로 압송해 장기간 조사했다.

그 조사로 아프간에 있던 ETIM 아지트와 훈련캠프가 속속들이 드러났다. ETIM이 아프간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1998년까지 국경 수비가 허술했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중국과 아프간이 맞댄 국경선은 와칸(瓦罕)회랑의 동쪽 끝자락이다. 와칸회랑은 위로는 타지키스탄, 아래로는 파키스탄 사이에 좁고 길쭉하게 뻗어있다. 평균 해발이 4000m 이상인 파미르고원의 일부다. 따라서 전체 길이 400km인 와칸회랑에 사는 주민은 1만2000여 명에 불과할 만큼 인적이 드물다.

과거 중국은 이런 열악한 자연환경을 고려해 와칸회랑에 국경수비대를 많이 배치하지 않았다. ETIM은 그 점을 역이용해 신장자치구 곳곳에서 교육생을 모집해 아프간으로 보냈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 이런 충원 방식은 사라졌다. 미군에 의해 아지트와 훈련캠프가 탄로 났고, 대다수의 조직원이 죽거나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미군의 추격을 피한 일부 조직원은 다시 중국으로 넘어갔거나 중동으로 향했다. 즉, 2001년 미-아프간 전쟁 이래 ETIM은 아프간에서 완전히 무너졌고 종적을 거의 감췄다.

중국으로 되돌아온 ETIM은 오랫동안 조직력을 다진 뒤 활동했다. 특히 과거와 달리 민간인 대상 테러까지 벌였다. 실제로 2008년 12월 신장자치구 카슈가르, 2009년 7~10월 카슈가르·호탄(和田)·악쑤(阿克蘇) 등지, 2013년 6월 산산() 등지에서 파출소와 관공서를 공격했다. 그 뒤 방식이 바뀌었다. 2013년 10월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앞에서 기름이 가득 담긴 지프를 몰아 2명을 죽이고 40여 명을 다치게 한 뒤 자폭했다. 2014년 4월 우루무치역 앞에서 2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폭탄을 던져 3명이 죽고 79명이 부상당했다.

그러나 이런 무차별적인 테러는 역효과를 불러왔다. 중국은 신장자치구 지역의 일반인들 속에 침투한 ETIM 조직원을 뿌리 뽑는다는 명목으로 2016년부터 재교육수용소를 설치해 운영했다. 지금까지 재교육수용소에서는 위구르족에 대한 심각한 인권 침해가 자행되고 있다. 중동으로 건너갔던 ETIM 조직원도 이슬람국가(IS)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대부분 사살당했다. 따라서 ETIM은 미-아프간 전쟁 이후에도 계속 탈레반과 함께 움직였던 조직원 몇 명을 제외하고 현재는 실체 없는 조직으로 전락했다.

아프간의 광물자원 개발 문제는 어떨까. 현재 아프간에는 철 4209억 달러, 구리 2740억 달러, 니오븀 812억 달러, 코발트 812억 달러 등 엄청난 가치의 광물이 매장돼 있다. 이와 관련해 탈레반은 “아프간에는 손대지 않은 광물자원이 풍부하다”며 한국에도 협력의 손길을 내밀었다. 사실 중국은 다른 나라보다 앞서 아프간에 진출했다. 2009년에 아이낙 구리광산의 30년 개발권을 획득했던 것이다. 아이낙 광산의 구리 매장량은 세계 2위다. 2011년에는 파르야브 유전의 25년간 시추권을 4억 달러에 낙찰받았다.

하지만 두 곳은 지금까지 개발되지 못했다. 현지 사정이 너무나 열악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광물을 중국으로 가져오기가 어렵다. 2001년 이래 중국과 아프간의 국경은 폐쇄된 상태다. 중국은 ETIM과 아편의 유입을 막기 위해 와칸회랑을 요새화했다. 게다가 지난 수년 동안 중국의 관심은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에 쏠려 있다. CPEC는 파키스탄 남부의 과다르항에서 카슈가르까지 3000km에 도로·철도·에너지망 등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다. 중국은 2015년부터 사업을 시작해 2030년까지 450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과거처럼 탈레반이 다시 ETIM을 지원한다면 단시일 내에 조직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이미 7월부터 탈레반과 접촉해 왔다. 7월28일에는 탈레반의 실질적 지도자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중국에 초청해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회담을 가졌다. 바라다르는 왕 부장에게 “어떤 세력도 아프간의 영토를 이용해 중국에 해를 끼치는 일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탈레반이 ETIM을 다시 후원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 뒤 중국은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8월16일 외교부는 탈레반의 카불 함락을 “아프간 인민의 염원과 선택으로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19일과 20일 왕 부장은 서유럽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압력을 가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방향으로 격려해야 한다”며 탈레반을 포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외신과 한국 언론의 ‘희망 섞인 바람’처럼 중국이 아프간에 군대를 파병하거나 광물자원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 당장 나설 가능성은 없다. 다만 탈레반의 변심에 대비해 주변국들과 함께 대테러 훈련은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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