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살아있는 권력, 아베 전 일본 총리
  • 박대원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29 15:00
  • 호수 1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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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근들을 총리 후보로 내세워 ‘스가 끌어내리기’ 주도
“벚꽃 스캔들 등으로 스가 못 내칠 것” 분석도

8월22일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서 열린 시장 선거에서 스가 총리가 공개적으로 지원했던 오코노기 후보가 낙선했다. 요코하마는 스가 총리의 정치적 기반이었기에 집권 자민당의 충격은 상당했다. 이에 대해 당의 한 간부가 “요코하마 시장 선거는 지방선거일 뿐이다”는 견해를 밝히며 진화에 급급했으나, 야당은 “스가 정권에 대한 심판”이라며 대대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스가 내각 성립 이후 실시된 중의원과 참의원 보궐선거 및 각종 지방선거에서 자민당의 패배가 이어졌던 만큼, 이번 요코하마 시장 선거 참패에 스가 총리 자진 사퇴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스가는 “매우 아쉬운 결과며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자민당 총재 임기만료(9월30일)에 따른 총재 선거를 통해 총리 연임에 도전한다는 의사는 굽히지 않고 있다. 자민당 간사장을 5년 넘게 역임해 ‘여당 실세’로 불리는 니카이 도시히로는 스가 총리의 재선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꾸준히 밝혀왔으며, 모리야마 히로시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도 8월24일 기자회견에서 스가 연임 지지를 표명했다.

ⓒAP연합
5월4일 당시 일본 총리였던 아베(왼쪽)가 기자회견에서 현 총리인 스가 관방장관을 손짓으로 가리키고 있다.ⓒAP연합

‘킹메이커’ 노리는 아베와 니카이의 대립

여당 내 지분을 갖고 있는 두 중진의 지지 표명으로 스가의 연임은 희망적인 것일까. 변수가 있다. 일본 정계와 언론계에서는 스가의 연임을 둘러싸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최근 움직임에 크게 주목하는 모습이다. 먼저 아베 전 총리는 지난 5월에 극우 성향 매체 ‘월간하나다’와의 인터뷰에서 “스가 총리의 연임을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스가 총리 이후에는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이나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 기시다 후미오 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시모무라 하쿠분 자민당 정조회장 등이 적절하다”고 발언하는 등 차기 총리 후보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까지 밝힌 바 있다.

이후 도쿄올림픽 강행과 코로나19 방역대책 실패 등으로 스가 내각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를 경신한 가운데, 예전 아베 내각에서 총무상으로 임명되는 등 아베의 측근으로 알려진 다카이치 사나에 의원이 총재 선거 출마 의사를 밝혀 화제가 됐다. 다카이치 의원은 출마 의사 표명 직전인 8월3일 아베의 사무실을 방문해 선거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아베가 스가 총리에 대한 대항마를 내세워 ‘스가 끌어내리기’를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자민당의 한 중진의원은 “다카이치의 총재 선거 출마선언은 아베의 허가 없이 이뤄졌을 리가 없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다카이치 의원 외에도 아베 전 총리가 차기 총리 후보로 언급한 바 있는 시모무라 정조회장이 출마를 선언했으며, 기시다 전 정조회장 또한 아베의 최측근인 아소 다로 부총리의 집무실을 방문해 출마 여부를 상담한 것으로 알려져 아베-아소 그룹이 ‘킹메이커’로 나서고 있는 정황이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이 그룹이 차기 총리로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가 주목되고 있다.

이처럼 아베 전 총리가 ‘포스트 스가’를 준비하는 듯한 모습은 니카이 간사장의 변함없는 스가 지지와 대조된다. ‘겐다이비즈니스’에 따르면, 차기 총리 후보 선정을 둘러싸고 자민당 내에는 ‘아베 대 니카이’의 대립구도가 형성돼 킹메이커 자리에 앉는 것이 누구인가를 두고 세력다툼이 발생하고 있다. 니카이 간사장은 스가 옹립을 통해 간사장직을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는 것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정반대의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닛칸겐다이’는 8월24일 보도에서 아베 전 총리가 ‘벚꽃을 보는 모임(桜を見る会)’ 논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며, “아베는 스가 지지를 완전히 내려놓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지난 7월, 일본의 검찰심사회가 총리 재임 시절 ‘벚꽃 모임’을 통해 지역구 유권자들에게 향응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고발된 아베를 불기소한 도쿄지검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판단한 것과 관련해 8월부터 검찰의 재조사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누가 차기 총리가 되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좌우될 수도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감염 폭발 속 스가의 암중모색 계속

따라서 아베는 아베 내각 시절 관방장관으로서 벚꽃 스캔들과 사학 스캔들을 비롯한 다수의 의혹을 함께 은폐해온 스가 총리와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잘 따르는 기시다 전 정조회장 사이에서 여전히 저울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후지TV 계열의 ‘FNN프라임’ 온라인판(8월18일자)도 “아베는 다카이치를 응원하더라도 스가를 완전히 밀어내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며 아베-아소 그룹에 의한 ‘스가 끌어내리기’ 가능성을 부정했다. 단, 코로나19 감염 확산이 멈추지 않아 스가 내각의 붕괴가 확실시되는 경우에는 아베의 재등장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향후 일본 정계의 향방은 코로나19 대응 및 백신 접종에 달려 있다고 전했다.

스가의 연임 가능성 및 아베의 움직임에 대한 상반된 분석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가장 큰 변수가 될 일본의 코로나19 감염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8월19일 이래 사흘 연속 신규 확진자가 2만5000명 이상 발생하고 있으며, 24일에는 감염 폭발을 이유로 긴급사태선언 적용 지역이 홋카이도와 히로시마, 아이치까지 확대됐다. 지난 7월12일의 네 번째 긴급사태선언 이후 긴급사태 연장 및 확대가 수차례 반복되고 있어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긴급사태 해제 선언을 하라”는 불만 섞인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향후 정치 일정 측면에서는 긴급사태 발령 기간인 9월12일까지는 중의원 해산이 곤란하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으며, 자민당 총재 선거 이후의 해산 혹은 중의원 임기만료(10월21일)에 따른 총선거 시나리오가 부상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 정해진 법적 절차에 따른 선거라는 점에서 스가 총리의 책임회피가 가능한 선택지로 간주된다.

, 스가 총리 자신이 긴급사태나 중점조치 기간 중에 중의원 해산 및 총선거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 “헌법상 가능하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어 코로나19 감염 및 정치 상황을 감안해 긴급사태 기간 중 해산 및 총선거가 실시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 역시 임기만료 전에 총선거를 실시함으로써 향후 정치 일정을 명확히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감염 폭발 상황 속에서 궁지에 몰린 스가 총리의 암중모색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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