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역사 ‘다승왕’ 향해 나아가는 류현진의 도전
  • 이창섭 야구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28 11:00
  • 호수 1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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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다승 부문 선두권에서 4명과 경쟁 중
역대 최고 성적은 2000년 박찬호의 다승 5위

지난해 류현진(34)은 토론토 이적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뒤늦게 열린 단축 시즌에 임시 홈구장을 쓰는 등 난항이 있었지만, 12경기에 선발 등판해 5승2패 평균자책점 2.69를 기록했다(67이닝 72삼진). 2019년 사이영상 2위에 올랐던 류현진은 2년 연속 사이영상 최종 후보에 들었다(2020년 사이영상 3위). 사이영상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영예다.

ⓒ연합뉴스
8월14일(현지시간) 열린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한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류현진이 1회 말 역투하고 있다.ⓒAP연합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정조준

올해도 류현진은 준수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지난 8월22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는 7이닝 무실점으로 이전 두 경기에서의 부진을 씻었다. 팀의 연패를 끊어준 류현진은 상대팀의 A J 힌치 감독까지 매료시켰다. 힌치는 류현진에 대해 “투수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다”는 찬사를 보냈다.

류현진은 이날 승리로 시즌 12승 고지를 밟았다. 그러면서 게릿 콜(뉴욕 양키스), 크리스 배싯(오클랜드 어슬레틱스)과 함께 아메리칸리그 다승 공동 선두에 나섰다. 2019년 평균자책점 1위에 올랐던 류현진은 올해는 다승왕 타이틀을 노린다. 아직 시즌이 한 달 넘게 남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페이스라면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 투수 부문 3대 타이틀(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 중에서도 다승왕은 에이스의 상징이다.

만약 류현진이 다승왕을 차지하면 또 하나의 역사를 쓰게 된다. 지금까지 한국 투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다승왕을 차지한 적은 없었다. 2000년 박찬호가 시즌 18승을 따냈지만, 내셔널리그 다승 순위에서는 5위였다(1위 톰 글래빈 21승). 사실, 한국 투수는 두 자리 승수 시즌도 11차례뿐이었다. 박찬호가 6회, 류현진이 4회 그리고 2007년 김병현이 한 차례 만든 적이 있다. 다승왕에 오를 수 있는 기회조차 흔치 않았던 것이다.

다승왕은 일본 투수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던 영역이다. 지난해 시카고 컵스에서 뛰었던 다르빗슈 유가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많은 8승을 따냈지만, 단축 시즌인 점을 감안하면 의미가 크지 않았다. 2008년 마쓰자카 다이스케는 일본 투수 한 시즌 최다승인 18승을 올렸는데, 아메리칸리그 다승왕 순위에서는 4위였다(1위 클리프 리 22승). 162경기의 정상적인 시즌에서 다승왕을 차지한 아시아 투수는 대만 출신 왕첸밍이 유일하다. 왕첸밍은 2006년 19승을 쓸어담고 다승왕에 올랐다.

류현진이 다승왕으로 향하려면 일단 한 시즌 개인 최다승을 먼저 넘어서야 한다. 류현진은 2013년과 2014년, 2019년 모두 14승에서 멈췄다. 메이저리그 진출 첫해인 2013년은 9월 4경기에서 1승만을 추가했다. 2014년에는 8월까지 14승을 채웠는데, 9월 들어 어깨 부상으로 두 경기만 나왔다. 2019년은 마지막 두 경기를 모두 승리했지만, 이전 5경기 3패 평균자책점 7.27로 부진한 것이 뼈아팠다. 이번 시즌 약 7~8번의 남은 등판을 고려하면 한 시즌 개인 최다승 기록은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

메이저리그에서 다승의 가치가 예전만은 못한 게 사실이다. 각종 통계 분석 시스템이 구축된 메이저리그는 온전히 선수의 능력만을 평가하는 추세다. 이에 반해 다승은 투구 내용뿐만 아니라 타선과 불펜진의 활약에 따라 좌우된다. 바뀐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기록이다. 그렇다 보니 최고의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 투표에서도 다승의 입지는 좁아졌다. 과거에는 많은 승수를 따낸 투수가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지금은 승수가 부족해도 투표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통계 전문가들이 다승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올해 류현진은 상황이 다르다. 소속팀 토론토가 2년 연속 포스트시즌을 조준하고 있다. 1선발 류현진이 최대한 많은 승리를 챙겨야 한다.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4위에 머물러 있는 토론토로선 와일드카드 한 장을 확보하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 특히 9월에는 함께 순위 경쟁을 하고 있는 뉴욕 양키스(7경기)와 탬파베이 레이스(6경기), 오클랜드 어슬레틱스(3경기)를 만난다. 이 팀들과의 맞대결에서 토론토는 시즌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또한 류현진의 다승왕 여부도 판가름 날 예정이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치열해지는 아메리칸리그 다승왕 경쟁에는 변수가 발생했다. 류현진과 더불어 다승 공동 선두에 있는 배싯이 타구에 얼굴을 가격당하는 비운의 부상을 입었다. 수술대에 오른 배싯은 정규시즌 내 복귀가 불투명하다. 배싯이 이탈하면서 다승왕 경쟁자는 콜과 잭 그레인키(휴스턴 애스트로스), 네이선 이볼디(보스턴 레드삭스), 크리스 플렉센(시애틀 매리너스) 등으로 압축됐다. 류현진을 비롯한 5명의 투수 모두 첫 번째 다승왕 도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투수의 승리는 타선과 불펜의 뒷받침도 따라줘야 한다. 올해 류현진은 이전보다 훨씬 넉넉한 득점 지원을 받고 있다. 9이닝당 득점 지원이 7.26점에 달한다. 이는 류현진이 9회까지 마운드에서 버틴다고 가정했을 때 타선이 7점 이상 안겨준다는 뜻이다. 현재 아메리칸리그 9이닝당 득점 지원 최다 1위다. 그만큼 올해는 타선과의 궁합이 리그 어떤 투수들보다 좋았다. 남은 등판에서도 지금처럼 타선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되면 한결 부담을 덜 수 있고, 승수도 쉽게 챙길 수 있다. 다승왕을 노리는 입장에서는 대단히 고무적이다.

4년 연속 7할대 승률 기록에도 바짝

류현진은 승리하는 법을 아는 투수다. 2013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뒤 높은 승률을 자랑하고 있다. 2018년 이후 70경기 이상 선발로 나온 69명 중 7할대 승률을 기록한 투수는 류현진을 포함해 4명이 전부다(워커 뷸러 0.766, 찰리 모튼 0.750, 게릿 콜 0.740, 류현진 0.704). 류현진은 남은 경기 결과에 따라 4년 연속 7할대 승률을 이어갈 수 있다.

류현진은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지난해 토론토 이적 후 처음 나온 포스트시즌 등판을 크게 망쳤다.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만루 홈런을 허용하는 등 1.2이닝 7실점(3자책)으로 조기 강판됐다. 결국 토론토는 경기를 패했고, 와일드카드 시리즈에서 탈락했다. 에이스의 역할을 해내지 못한 상처가 남아있기 때문에 올해는 명예 회복을 해야만 한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려면 우선 남은 시즌에서 호투가 이뤄져야 한다.

다승의 가치는 분명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다승의 가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승부의 세계에서 다승의 가치는 완전히 사라질 수도 없다. 류현진의 다승왕은 단순히 개인 기록에만 그치지 않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다. 류현진이 많은 승리를 거둘수록, 토론토도 포스트시즌에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류현진과 토론토 모두에게 중요한 9월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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