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추락의 공포, 중산층 위기 시대
  •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27 17:00
  • 호수 1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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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중산층인가? 2012년 인터넷에 ‘중산층 별곡’이 등장했는데, 중산층이 되려면 아파트 30평, 연봉 5000만원, 중형 승용차를 가져야 한다고 봤다. 공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자들은 직업, 자산, 소득, 교육 수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사회학자는 중간계급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사업가나 의사, 변호사, 교사, 공무원, 기업 사무원을 가리킨다. 경제학자들은 주로 소득 수준으로 중산층을 구분한다.

2019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보고서 ‘압박 아래서: 쥐어짜인 중간계급’을 보면,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중산층이 줄어들고 있다. 한국의 중산층은 약 61%로 OECD 평균 수준이다. 하지만 이 중 15% 정도가 과도한 채무에 허덕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의 중산층이 약 70%로 가장 높고 미국은 약 51%로 가장 낮다. 레이건 정부 이래 낙수 경제학이 득세하면서 부자는 더 부유해졌지만 중산층은 몰락했다. 미국의 저명한 투자자 워런 버핏은 “미국에서 계급전쟁이 벌어지는데 내가 속한 부자계급이 빈곤계급을 이기고 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선 경선 후보가 20일 국회 소통관에서 중산층 경제성장 전략과 관련한 정책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선 경선 후보가 20일 국회 소통관에서 중산층 경제성장 전략과 관련한 정책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주목할 점은 주관적 계층의식이 소득 수준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은 1990년대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체 인구 중 약 75%였는데, 현재는 50% 이하로 급감했다. 유럽에서는 60~70% 정도이고, 북유럽 국가에서는 80% 수준이다. 미국에서는 45% 안팎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주관적 중산층이 급감하는 이유는 ‘추락의 공포’ 때문이다. 언제 회사에서 해고될지, 자영업자의 경우 언제 가게를 닫을지 무섭다. 사교육비와 집값 부담이 너무 커 삶이 팍팍하다. 노후에 빈곤층으로 전락할까 두렵다. 중산층의 불안은 사회의 최대 질병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속하게 경제 세계화와 공장 자동화가 이뤄지면서 숙련 노동자가 감소했다. 정보통신기술과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이제 사무관리직 일자리도 사라지고 있다. 대신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증했다. 하지만 산별노조가 무력화되고 기업별 단체교섭만 가능하기에 상위 10% 대기업에서만 높은 임금이 가능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 격차가 2배 정도다. 불평등과 빈곤이 증가하면서 중산층이 무너졌다.

중산층이 하위층으로 추락하는 이유는 일자리와 소득 이외에도 교육비, 의료비, 주거비가 큰 영향을 미친다. 공공보건, 실업보험, 국민연금 등 복지제도가 취약해 중산층의 기반이 쉽게 흔들린다. 특히 연금 사각지대와 낮은 소득대체율이 노후 생활을 어렵게 만든다. 노인 빈곤율이 약 50%로 세계 최고다. 노인 자살률도 세계 최고다. 그러나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지출 비율은 약 10%로 OECD 최하위권이다. 미국의 2분의 1, 북유럽의 3분의 1 수준이다. 조세와 사회정책은 국회에서 결정하는데 정치권은 소수의 부자와 대기업의 입장에 기울어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중산층이 사라진다.

중산층이 몰락하면 경제성장률도 낮아지고 행복감이 줄어드는 반면 사회 양극화가 커지고 정치적 갈등도 격화될 수 있다. 미국에서 중산층을 가장 많이 확대한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6년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소수의 부자의) 경제적 독재에 맞서 국민이 의지할 것은 조직적 힘을 갖춘 정부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산층이 되는 데는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정부 정책이 더 중요하다. 말만 내세우고 아무런 성과가 없는 정부가 교체되는 시점이다. 이제라도 경제 개혁, 노동 개혁, 재벌 개혁, 교육 개혁을 통해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중산층은 경제성장에 의해 저절로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제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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