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남창원농협 조합장의 말로만 ‘사과’
  • 이상욱 영남본부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21.08.2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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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원농협, 창원시 행정처분·구상권 청구에 법적 대응 준비…소송 비용 책정
남창원농협 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 전경 ©시사저널 이상욱
남창원농협 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 전경 ©시사저널 이상욱

세계보건기구는 지난해 3월 코로나19에 대해 세계적 대유행을 뜻하는 ‘팬데믹’을 선언했다. 사람들이 면역력을 갖고 있지 않은 새로운 질병이 예상 이상으로 전 세계에 퍼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종교시설·직장·마트·기숙학원·음식점·노래방 등 일상 곳곳에서 감염에 노출됐고, 그때마다 당국은 “방역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다짐해 왔다. 그러나 누적 확진자 70명을 훌쩍 넘긴 경남 창원의 남창원농협 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마트) 집단감염 사태는 우리가 여전히 안전불감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대변하고 있다.

남창원농협 마트의 집단감염은 델타 변이바이러스가 원인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남창원농협은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6명(가족 1명 확진 별도) 등 매장 안에서만 13명의 확진자가 쏟아진 뒤인 4일 오후 6시쯤이 돼서야 마트 영업 중단을 결정했다. 심지어 남창원농협은 첫 확진자 발생 후 마트 영업 중단 전까지 사흘 동안 확진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영업을 강행했다. 가벼운 접촉자로부터 전파될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결국 남창원농협의 판단 착오로 인한 인재(人災)였던 셈이다.

2주가 지났지만, 폭염 속에서 진단검사를 받느라 기다려야 했던 시민 2만여 명의 분노는 아직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마트 전 사업장을 폐쇄하면 농업인과 납품업체, 임대매장 등 소상공인이 겪을 피해를 감안했다는 변명만 늘어놨다. 남창원농협이 최초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그 요인을 밝혀내 마트 폐점 등 대비책을 강구했다면, 얼마든지 집단감염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백승조 남창원농협 조합장이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파장이 잦아들지 않는 모습이다. 백 조합장은 지난 19일 남창원농협 대의원 59명에게 보낸 사과문에서 “이러한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조합장으로서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으며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금번 사태를 최대한 빨리 정상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앞서 백 조합장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도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조합장으로 큰 책임을 느끼며 방역 당국과 협의해 시민들께 죄송한 마음이 전달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며 ‘남창원농협 책임론’을 폈다. 백 조합장이 평소 누구보다 ‘농협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그의 이런 발언에 신뢰감을 느끼는 시민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창원농협을 향한 비판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은 백 조합장의 사과에 진정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17일 허성무 창원시장은 남창원농협 마트에 행정·사법적 대응 방침을 발표했는데, 다음날인 18일 곧장 남창원농협은 이사회를 소집해 창원시의 행정처분과 구상권 청구에 대비한 소송 비용을 책정했다. 겉으로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내부적으로 법적 대응 방안을 검토한 것이다. 백 조합장이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는 ‘법정 싸움’을 택한 셈이다. ‘남창원농협 책임론’을 강조하며 언급한 “최대한 빨리 정상화시키기 위해”라고 했던 사과 발표가 무색할 정도다. 

이 행위를 감안하면 도무지 사과를 하겠다는 마음이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게다가 잘못했다고 하지만 그게 무엇이고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도 적시하지 않았다. 그저 ‘큰 책임감’ ‘죄송한 마음’ 등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사과 문구로 일관된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문제가 되니 사과를 하지만, 실제 마음은 없다는 오만함마저 엿보인다.

진정성이 없는 사과는 더는 사과라고 할 수 없다. 당장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고 보자는 사과는 사태를 되레 악화시킬 뿐이다. 농협의 사회적 책무를 망각한 이른바 정치인의 ‘사과 정치’와 다를 바 없다. 영혼 없는 입에 발린 사과는 시민을 무시하는 행위이고, 피해 확진자에게 가혹한 2차 피해다. 이번 사태가 농협의 공적 기능과 사과의 진정성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8월11일 백승조 남창원농협 조합장이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이를 숨긴 채 사흘간 마트 영업을 강행한 것과 관련해 큰절로 대시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8월11일 백승조 남창원농협 조합장이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이를 숨긴 채 사흘간 마트 영업을 강행한 것과 관련해 큰절로 대시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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