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탄압 5적’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쓴소리 곧은소리]
  • 최진녕 변호사 (jnchoi@kakao.com)
  • 승인 2021.09.06 07:30
  • 호수 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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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절벽에 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는 반헌법적이고 비민주적인 언론중재법 개정안 때문이다. 여당은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 신설과 언론사 매출액을 반영한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 규정을 핵심으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을 통해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폭주하고 있다. 이대로 통과하면 일제강점기나 유신시대처럼 언론이 폐간되고 기사가 백지로 나가게 될 수 있게 된다.

여당은 가짜뉴스를 방지하고 언론과 국민 사이의 힘의 균형을 맞춘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하지만 언론출판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언론의 본령인 권력 비판을 사전에 억제하기에 위헌적 언론검열 수단으로 악용될 반민주 악법이라는 목소리가 국내외 언론계, 학계, 법조계 등 사회 전반에 넘쳐 난다. 언론주권이 권력자에게 넘어갈 수 있는 민주주의 위기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오른쪽)와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가 8월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위한 협의체 구성, 9월27일 본회의 상정 등의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가운데는 박병석 국회의장ⓒ연합뉴스

5배 징벌적 배상, 기사 열람 차단은 “위헌”

먼저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을 보자. 여당이 문화체육관광위에서 강행 처리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을 신설하면서 “언론 보도가 개인의 사생활 핵심 영역을 침해하거나 인격권을 계속해서 침해하는 경우 언론과 포털 등에 기사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다. 포털은 기사 열람 차단이 청구된 보도에 대해 ‘이 기사는 열람 차단이 청구된 상태입니다’와 같은 표시를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여당은 법에서 규제하는 대상이 허위·조작 보도에 국한된다고 하지만, 어떤 주장이 사실인지 허위인지 여부를 가리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정권 실세와 기업가들은 자신들과 관련된 대부분의 기사에 대해 ‘허위정보 프레임’을 씌워 기사를 차단할 핵무기를 손에 쥐게 된다. 한국 언론사들이 자발적인 ‘백지’신문을 낸 적이 있다. 1974년 12월 유신독재정권이 정권에 비판적이던 동아일보를 탄압하기 위해 광고주들에게 압력을 넣었고, 광고주들은 광고를 해약했다. 동아일보는 그 지면을 백지로 내보냈다. 이를 메운 것이 국민들의 ‘격려광고’였다. 최초의 격려광고는 1975년 1월1일자의 ‘언론의 자유를 지키려는 한 시민’이었다. 그 ‘시민’은 당시 가택연금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 31년 만인 2006년에야 밝혀졌다. 여당은 김대중 정신을 계승한다는 말을 할 자격이 없다.

허위나 조작 보도에 대한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 규정과 입증 책임 전환 조항도 헌법재판소로 가면 위헌 결정이 나올 개연성이 매우 크다. 개정안에서 고위 공직자와 대기업 관계자 등은 제외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정권 관계자, 퇴직자, 비선실세 등이 언론통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정권 퇴직자 보호법이란 소리가 빈말이 아니다.

여당은 외국에는 언론의 허위 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리는 반면, 우리나라는 언론에 대한 법적 책임이 약하다며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여당의 이러한 논리는 가짜뉴스에 가깝다. 미국은 일부 주에서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규정하고 있으나 수정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실제로 배상 책임을 인정한 사례를 보기 드물다고 한다.

본질적으로 미국은 언론보도와 관련해 형사처벌 규정이 없다. 반면 한국은 명예훼손과 관련해 형사 책임과 함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 나아가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로서 반론보도권, 정정보도권 등을 규정하고 있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관해 영미법은 형사처벌은 아니하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징벌적으로 강화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반면, 한국법은 형사처벌과 함께 민사상 손해배상과 정정보도권 등을 인정하는 시스템을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전체적인 언론의 사회적 책임의 총량은 영미법과 한국의 언론 규제법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사이버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실형까지 선고되는 한국의 형사사법 실무에 비춰, 영미법상 형사적 징벌에 갈음하는 민사상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까지 도입하는 것은 비교법상 규제 총량적 관점에서 지나친 과잉 규제라고밖에 볼 수 없다.

나아가 징벌적 손해배상은 문구와 같이 사실상 돈 폭탄을 때려 언론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겠다는 것이다. 헌법상 형사 책임은 법원에서 유죄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로 추정되고, 처벌을 하려면 검사나 피해자 측이 가해자의 행위가 고의나 과실에 의한 것임을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개정안은 고의나 과실에 대한 입증 책임을 전환하고 있다는 점에서 형사 책임 내지 징벌적 손해배상 취지에 어긋난다는 점에서도 위헌적이다.

 

권력자에게 ‘언론의 자유’ 넘겨준 사람들

입법 절차도 큰 문제다.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정의당도 반대하고, 대다수 언론인과 대한변협 등 각종 사회단체도 한목소리로 비판한다.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까지 심각한 우려를 전달해 한국의 언론자유가 국제 문제화되었다. 여당에서 발의한 법안 내용도 문화체육관광위를 거쳐 법사위를 통과하면서 지속적으로 변경돼 무엇이 본회의에서 통과될지 국민은 파악하기도 힘들다. 이번 정권이 그렇게도 중요히 여기던 공론화 절차 내지 숙의 민주주의도 언론중재법 앞에서는 실종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국제언론인협회와 세계신문협회, 국제기자연맹에 이어 ‘국경 없는 기자회’도 비판 성명을 내자, ‘국경 없는 기자회’에 대해 “뭣도 모른다”고 깔아뭉개 버렸다. 언론중재법 개정을 주도하고 있는 원내사령탑 윤호중 원내대표는 여야 합의와 관련해 다가오는 9월27일에 “합의안이 있어야 상정하는 것은 아니고, 어떤 조건도 없이 상정해 처리하는 것”이라며 ‘합의 처리’가 아니라고도 못 박았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고 당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법안 논의를 이끌어온 초선 김용민 최고위원은 “(법안을) 원점으로 돌리려는 정략적 시도는 허용될 수 없을 것”이라며 국회의장을 압박했다. 미디어특위 부위원장을 맡아 언론중재법 개정 선봉에 선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법안 처리가 미뤄지자 박병석 국회의장을 향해 “역사에 남을 겁니다. GSGG”라는 글을 올렸다. 상식적으로 ‘GSGG’는 ‘개XX’의 영문 이니셜로 읽힌다. 열린민주당의 김의겸 의원은 문회체육관광위 안건조정위원회에 ‘야당 의원’으로 참석해 법안 통과의 첨병 역할을 했다. 문체위 전체회의에서 여당이 기립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때, 함께 일어선 9명 중 한 명이 바로 김 의원이었다.

가짜뉴스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이지만, 현실은 권력자들이 미디어 주권을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탈취해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법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이다. 이를 여당이 그대로 통과시킨다면, 역사는 이들을 ‘언론탄압 5적’으로 기록할 것이다. 여기서 멈추시라.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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