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장, 피해자 자해 시도하자 가해자에 사과하게 해”
해군 구축함 강감찬함 소속 일병이 군대 내 폭언과 따돌림 등으로 고통을 받다가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 그 배경에 간부들의 방치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방부가 군대 내 가혹 행위를 묘사한 넷플릭스 드라마 《D.P.》와 관련해 “바뀌고 있다”는 입장을 내놓은 지 하루 만이다.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는 7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6월18일 해군 강감찬함에서 선임병 등으로부터 구타, 폭언, 집단따돌림을 겪은 정아무개 일병이 휴가 중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단체에 따르면, 올해 2월1일 강감찬함에 배속된 정 일병이 아버지 간호를 위해 청원 휴가를 다녀온 뒤부터 선임병들은 “꿀을 빤다” “신의 자식”이라며 그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격리로 정 일병은 3월9일 이후 복귀했다.
갑판병이던 정 일병이 3월16일경 근무 중 실수를 하자 선임병 A와 B는 가슴과 머리를 밀쳐 갑판에 넘어뜨렸다고 알려졌다. 정 일병이 일어나자 이들은 그를 다시 밀쳐서 넘어뜨리고 정 일병이 “제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라고 묻자 “뒤져버리라”고 대답했다. 군인권센터는 “선임병들이 정 일병을 앉혀놓고 갈구거나 욕설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다시 밀쳐서 앉히는 등 폭행을 하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정 일병은 3월16일 함장에게 선임병들의 폭행, 폭언을 신고했으나 함장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시키지 않고 승조원실을 이동하고 보직을 변경하기만 했다고 알려졌다. 정 일병은 함내에서 가해자들과 계속해서 마주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정 일병은 3월26일 자해 시도를 하다 함장에게 연락해 구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런데 함장은 정 일병에게 가해자들을 불러 사과 받는 자리를 갖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며 가해자들을 불러 대화하게 했다는 게 군인권센터 측 설명이다.
심리적 고통을 겪던 정 일병은 구토, 과호흡 등 공황장애 증상을 보였고 이후 정신과에 입원했다. 군인권센터는 “6월8일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정 일병은 퇴원 후 7월2일까지 휴가를 받았다”며 “가족들은 당시 정 일병이 눈에 띄게 살이 빠져있었고 살갑던 예전 모습과는 달리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기조차 어려워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군인권센터는 정 일병의 사망 후에도 해군3함대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군인권센터는 “해군 3함대는 함 내 관계자들의 신상을 확보하기는커녕 정 일병 사망으로부터 열흘이 지난 6월 27일 함장, 부장 등을 인사조치 없이 그대로 청해부대로 보내버렸다”며 “이로 인해 함장, 부장 등 주요 수사 대상자들은 아직도 제대로 된 조사를 받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해군은 즉시 정 일병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가해자들의 신상을 확보하고 강감찬함 함장, 부장 등을 소환해 수사하라”며 “지지부진한 수사 역시 해군본부 검찰단으로 이첩해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수사를 촉구했다.
해군은 군인권센터의 폭로에 “현재 사망원인과 유가족이 제기한 병영부조리 등에 대해 군 수사기관에서 수사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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