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그플레이션 시대의 투자법
  • 이승용 시사저널e. 기자 (romancer@sisajournal-e.com)
  • 승인 2021.09.22 14:00
  • 호수 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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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상황 재연 가능성…금․원자재나 금리 인상 따른 은행주 투자 제안 거론

최근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1970년대 오일쇼크(석유파동) 때 처음 나타났다. 당시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0.5%였지만, 물가상승률은 무려 11.05%에 달했다. 이 오일쇼크 이후 50년 만에 스태그플레이션이 재연될 수 있다고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8월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 증가자는 23만5000명으로 7월 105만3000명 대비 4분의 1에 불과했다. 지난 1월 23만3000명 이후 가장 낮은 수치로 다우존스 예상치인 72만 명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주로 대면 서비스를 하는 서비스업 분야에서 고용 감소가 컸다. 반면 미국 근로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30.73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3%나 상승했다. 임금은 오르는데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미국 8월 고용률은 61.7%로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63.3%)을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수치가 발표되자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고하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쏟아졌다. 채권시장 전문가로 유명한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고문은 최근 미 CNBC에 출연해 “미국 8월 고용지표 발표로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더 많은 얘기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델타 변이 확산으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금이나 원자재 등 안전자산 투자가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연합뉴스

확산되는 스태그플레이션 경고음

미국 고용지표가 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로 이어졌을까. 경제학에서 설명하는 ‘필립스 곡선’에 따르면 세로축에 물가상승률, 가로축에 실업률을 놓고 그래프를 그린다면 단기적으로 실업률과 물가 상승은 반비례 관계에 있다. 하지만 임금과 원자재 가격 등이 오르면서 전체 생산이 감소한다면 필립스 곡선은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이전보다 경기상황 및 고용은 부진하고 상품 가격 등 물가는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인 루비니 뉴욕대학교 경영대 교수는 미 경제매체 마켓워치를 통해 “미국과 선진국에서 물가가 상승하고 있는데 성장은 늦어지고 있다”며 “이미 가벼운 스태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전 세계가 코로나19에 적응해 가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고, 러시아중앙은행 역시 글로벌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는 진단을 내놓은 상태다. 예일대 경제학 박사 출신이자 유럽 내 경제 전문가로 꼽히는 마리오 몬티 전 이탈리아 총리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유럽 경제의 최대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델타 변이가 확산하면서 생산시설이 집중된 아시아 신흥국들의 백신 공급이 난항을 겪으면서 코로나19 이전보다 생산, 운송 부문 등 공급지표들이 감소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도 물가는 급등하면서 경제성장률은 낮아지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태다. 성 교수는 “인플레이션은 지표로 증명되고 있다”며 “경제성장률은 올해 4% 수준으로 반등하고 있다는 수치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이는 코로나19에 따른 기저효과로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공급 측면에서 코로나19 확산 이전부터 대면소비가 중심인 자영업이나 중소·중견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커졌는데,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밸류체인이 약화되면서 생산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이중의 충격이 발생했다”며 “현재 상황은 경기회복이 아닌 경기침체로 보는 것이 맞다”고 해석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를 돌이켜볼 때 금이 최고의 투자처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1970년 1차 오일쇼크 이전에 온스당 30달러대였던 금 시세는 1980년에는 800달러에 육박했다. 당시 금 시세가 급등했던 이유는 안전자산으로서 남다른 고유성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최근 금이 차지하고 있던 안전자산의 위상을 대체하고 있는 만큼, 스태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 가상화폐 역시 급등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 밖에 통화로는 일본 엔화가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에 주목받는 안전자산으로 꼽히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에는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기에 현물 상품 역시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개인이 이러한 현물시장에 참여하기에는 접근성이 좋지 않은 편이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한국거래소에 상장돼 주식종목처럼 실시간으로 거래할 수 있는 상장지수증권(ETN)이 대안으로 꼽힌다.

ETN은 증권사가 발행하는 파생상품으로 금, 은, 원유, 천연가스, 원자재, 농산물, 환율, 주가지수 등 기초자산의 가격 변동에 따라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원자재로는 니켈, 아연, 알루미늄, 구리, 철광석 등이 가능하고 콩, 옥수수, 밀 등 농산물 가격 변동에 따라 투자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

서울 한국금거래소에서 직원이 골드바를 정리하고 있다.ⓒ연합뉴스
서울 한국금거래소에서 직원이 골드바를 정리하고 있다.ⓒ연합뉴스

PBR 낮은 ‘자산주’가 주목받을 가능성도

상장기업 주식에 투자한다면 원가 상승에 대한 부담을 가격에 이전시킬 수 있는 업종에 속한 회사들이 추천된다. 특히 구리, 알루미늄 등 비철금속 원재료를 제련·가공해 다시 파는 회사들은 원가에 따라 제품 판매가가 정해지는 사업구조를 보유한 경우가 많다. 이들이 원자재를 살 당시 가격과 가공 이후 판매하는 시점 사이에 가격 차이가 발생하면 그만큼 추가이득이 생긴다. 정유사들도 해외에서 원유를 사온 시점과 정제작업 이후 판매하는 시기가 두 달가량 차이가 나는데 국제유가가 상승하는 시기에는 비슷한 원리로 이익이 늘어난다.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에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이른바 ‘자산주’가 주목받을 가능성도 높다. 화폐의 실질가치는 떨어지는 반면 해당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실물자산의 가치는 상승하기 때문이다.

은행주나 보험주의 투자 매력도 늘어난다.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해법으로는 금리 인상이 꼽히기 때문이다. 금리가 상승하면 은행이나 보험사의 이익이 늘어나면서 주가도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성태윤 교수는 “최근 글로벌 밸류체인 관련 공급 감소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정책적으로 금리를 올려 유동성을 축소시킴으로써 비용 충격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며 “다만 급격한 금리 인상은 경기 악화 부담이 크기에 점진적 조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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