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진화하는 블랙머니·그린머니 ‘사기의 기술’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1.09.16 10:00
  • 호수 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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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정원, 국내에 거점 운영 중인 해외 범죄조직 포착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한 블랙머니·그린머니 사기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최근에는 블랙·그린 머니를 진폐(진짜화폐)로 변환하는 기계를 동원한 신종 사기가 등장하는 등 그 수법이 날로 진화하고 있다. 국정원 국제범죄정보센터는 갈수록 지능화하는 블랙·그린 머니 사기에 국민들의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일러스트 김세중
ⓒ일러스트 김세중

블랙머니 진폐로 변환하는 기계까지 등장

블랙·그린 머니 사기는 검은색(블랙머니)이나 녹색(그린머니)으로 염색한 외화를 특수화공약품 처리를 통해 진폐로 변환시키는 모습을 시연하며 약품 구입비 등의 명목으로 투자금을 편취하는 금융범죄다. 2000년대 중반부터 아프리카계 국제 범죄조직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사기 행각이 이뤄져왔다. 이 사기 피해를 당한 건 우리 국민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정원 국제범죄정보센터는 최근까지 해외 범죄조직이 국내에 거점을 두고 우리 국민들을 대상으로 사기 행각을 벌여온 사실을 파악했다. 이들은 주로 외교관 등을 사칭하며 접근해 투자금을 받은 뒤 잠적하는 식으로 피해자를 양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치밀함을 더하기 위해 한국인과 공모한 사례가 포착되기도 했다.

이들은 피해자에게 접근해 미국 정부나 유엔 등의 비자금을 은밀히 유통하기 위해 검은색이나 녹색으로 염색 처리한 달러를 보유 중이라며 투자를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를 현혹하기 위해 블랙·그린 머니를 진폐로 바꾸는 시연회를 빼놓지 않는다.

기존에는 이 과정에서 그린·블랙 머니를 특수약품 처리하는 방식이 사용됐다. 그린·블랙 머니에 약품을 살포하면 표면의 염색이 지워지면서 진폐가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식이었다. 그러나 실제론 가짜 블랙머니를 세척하는 척하며 미리 준비한 진폐로 바꿔치기하는 수법이 동원됐다. 이후 범죄조직은 약품을 구매하기 위한 비용이나 그린·블랙 머니를 국내로 들여오기 위한 탁송료 등에 투자하면 거액의 수익금을 나눠주겠다며 투자를 유도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염색된 외화를 진폐로 바꿔주는 기계’를 활용한 신종 수법이 등장했다. 기계에 블랙·그린 머니를 투입하면 진폐가 나오는 방식이다. 기계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작동하며 전면의 디지털 화면을 통해 내부에서 블랙·그린 머니가 진폐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범죄조직은 기계 구매 및 운용 비용을 명목으로 투자를 종용한다. 그러나 국정원에 따르면, 이는 단순한 눈속임에 불과하다. 기계에 그린·블랙 머니를 넣으면 사전에 미리 들어가 있던 진폐가 나오는 착시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진화한 수법과 함께 범죄 대상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해외 범죄조직들이 먹잇감 물색 창구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이메일 등을 활용하기 시작하면서다. 이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연락을 취한 뒤 투자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소상공인들과 일반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블랙·그린 머니 사기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 국제범죄정보센터 관계자는 “염색외화를 활용한 국제 범죄조직의 사기 행각은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으며 범죄 대상도 점차 확대해 가는 양상”이라며 “우리 국민들의 주의를 당부한다”고 밝혔다.

블랙·그린 머니 사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정원은 그동안 해외에 거점을 둔 사기조직들에 대한 범죄 증거 확보 및 추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진행해 왔다. 그 결과, 국정원은 지난 2019년 1월 인천경찰청과 공조해 트렁크에 블랙·그린 머니를 들고 다니며 사기 행각을 벌이던 프랑스계 사기조직을 검거했다. 이들은 서울 일대의 호텔에서 진폐 바꿔치기 수법으로 시연회를 열고 투자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7년 12월에는 부산 일대에서 ‘아프리카 구호금’을 빙자해 블랙머니 사기를 시도한 라이베리아인들이 검거됐다. 같은 달 광주에서도 아프리카계 ‘화이트머니’ 사기조직원인 프랑스인들이 적발됐다. 이들은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스위스 국제은행 화폐 제조 기술자’를 사칭하며 피해자들로부터 수억원의 투자금을 가로챈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또 지난 2013년 3월 200만 달러 상당의 블랙머니를 보유하고 있다며 우리 국민들을 상대로 사기를 시도한 아프리카계 프랑스인들의 구체적인 범죄 증거를 수사기관에 제공해 조직을 일망타진하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에도 과테말라 출신들로 구성된 160억원대 화이트머니 사기조직원들을 적발했다.

 

국정원, ‘위벤저스’ 통한 피해 예방활동 나서

이처럼 계속된 단속활동에도 블랙·그린 머니 사기가 끊이지 않자 국정원은 올해부터 피해 예방을 위한 홍보활동에도 나섰다. ‘위폐전문가그룹’이 위폐(위조화폐) 피해 방지 목적으로 개설한 유튜브 채널 ‘위벤저스’를 통해서다. 위폐전문가그룹은 위폐 유통 차단을 위해 지난 2018년 9월 국정원과 한국은행·은행연합회·시중은행 소속 전문가들이 참여해 발족한 민관 합작 조직이다. 위벤저스 채널에서는 블랙·그린 머니 등 염색화폐 사기범죄와 관련한 정보 등 위폐 피해 방지를 위한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확인할 수 있다.

관계자는 “염색화폐 등 우리 국민의 외화 위폐 사기 피해 예방을 위해 국내외 유관기관과 위폐 관련 정보 협력을 강화하고, 첩보가 입수되면 주의문을 제작·배포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이 참여하고 있는 위폐전문가그룹의 유튜브 채널 ‘위벤저스’를 통해 쉽고 유익한 위폐 피해 예방 콘텐츠를 제작해 제공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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